김형중(교법사·문학박사·평론가)
새해 벽두에 전한 큰스님의 부음(訃音)은 불자들에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아직도 스님께서 하셔야 할 일들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홀연히 저희 곁을 떠나십니까. 하늘은 빛을 잃었고, 경국사 문수원 스님 처소에서 큰스님의 쾌차를 기다리고 있던 강아지는 억장이 무너지듯 슬피 울더이다.
세상 사람들은 큰스님을 한국 최고의 학승(學僧) 또는 선지식이라 부릅니다. 공부 잘하고 잘 생긴 동국대학교 총장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라 부릅니다. 김용옥 교수는 TV논어강의를 하면서 큰스님께서 연로함에도 몸을 돌보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는 세상 사람들과 젊은 학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나라의 보배라고 찬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혜화동 우당기념관 내 가산불교문화원에서 스님으로부터 금석문을 배울 때였는데, 한국의 최고 석학을 모시고 공부한다는 것에 한없는 긍지를 가졌습니다.
스님은 평생 동안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불교경전을 공부하시고 후학에게 가르치신 거룩하신 성승(聖僧)입니다. 스님은 이 세상에서 불교대장경을 가장 많이 보고 공부하신 분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믿고 의지하며 신앙해야 할 삼보(三寶) 가운데 승보(僧寶)의 지중함을 일깨워주신 참으로 좋으신 스님이셨습니다.
큰스님의 법구(法柩)가 경국사를 떠날 때 이명박 대통령과 전직 두 국무총리(한명숙, 이해찬)가 오셔서 문상하고 애도하였습니다. 운구 행렬을 따르는 불자들은 일주문을 지날 때까지 한없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슬퍼하는 모습이었는데, 육십이 넘어 보이는 장애가 있는 남자 분이 어찌나 슬피 울든지 모두가 따라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분을 통해서 큰스님의 자애로운 덕화를 보았습니다. 문화관광체육부장관도 고려대학교를 다닐 때 스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은 제자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80세가 지난 노구인 무진장 스님도 큰스님 가시는 길을 배웅한다며 아침 일찍부터 오셔서 안타까워했습니다. 한국에서 설법 제일인 부루나 스님이 경전 제일인 아난존자 지관스님을 존경하고 아끼는 우정이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연세인 80세를 사시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15세에 동진출가하여, 당대의 계율 제일인 자운(慈雲) 대율사로부터 계율을 공부하고 계맥(戒脈)을 계승하셨습니다, 운허(雲虛) 대강백을 만나 대장경을 섭렵하여 28세에 해인사 강주가 되어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43세에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54세에 동국대학교 제11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본래가 총명하고 성실하고 학문을 사랑하여 용맹정진 하였으므로 학업의 성취가 배가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양성하신 스님이 되셨습니다.
큰스님의 학문적 성과는 《가산불교대사림》의 출간입니다. 현재 12권이 나왔지만 앞으로 10권 정도 더 나와야 완간이 됩니다. 이 책은 한국불교사에서 기념비적인 대작불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앞으로 누가 스님의 뒤를 이어 이 사업을 완성할 것인가에 대하여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한국고승비문총집》, 《역대고승비문 역주》입니다. 이 또한 스님의 학문과 열정이 아니면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과업입니다. 저희가 금석문을 배울 때 “어찌하여 어려운 금석문을 공부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하자 스님께서는 “고승의 비문 속에는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와 내용이 나타나 있는데 비문의 해독이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므로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호학(好學)의 정신은 공부하는 사람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님께서 강의할 내용을 모두 원고에 완성하신 후에 강의를 하는 준비성과 성실성에서 학문하는 자세와 정신을 배웠습니다. 백과사전처럼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유불선 사상과 역사에 통달하였습니다. 스님은 추사 김정희 이후 금석문 연구에서 가장 많은 연구를 하신 분입니다. 저희는 목요일 강의하시기 위해 해인사에서 사천 비행장을 통해 상경하시는 열정에도 감동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학문에만 밝으신 것이 아니라 이사(理事)를 겸비하신 분이셨습니다. 해인사 주지, 동국대학교 총장, 종회 부의장, 총무원장의 소임을 맡아서도 능수능란하게 일을 해냈습니다. 불교교단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교단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총무원장의 대임을 맡아 위법망구(爲法忘軀)하시느라 몸을 돌보지 않고, 진을 다 빼서 이렇게 일찍 돌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교단과 불법을 중흥시키기 위해서 기꺼이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신 분입니다. 학불(學佛) 연구와 종단 발전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정진에 과로한 탓으로 도고마성(道高魔盛)의 병마지훈(病魔之訓)을 남기고 마침내 입적(入寂)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MB정권의 촛불시위 자제 성명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과단성을 보여주셨고, 종교 편향에 대한 범불교도대회를 주도하는 호법 의지와 불교교단의 자주성 정립에 대한 역사의식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가장 사랑하고, 불교 교단을 가장 사랑하고, 우리 불자들을 가장 사랑하셨던 큰스님께서 저희 곁을 떠나 극락정토로 가셨습니다. 큰스님, 창졸지간에 아버지를 잃은 저희들은 이제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큰스님께서 살다가신 80생애의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그곳 세상일은 그곳 보살님께 맡기시고, 중생구제의 원력을 타고 출현하는 원력수생(願力隨生)으로 다시 저희들 곁으로 오셔서 중생의 성불과 정토의 건설을 이끌어 주옵소서. 미련하고 몽매한 제자는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애도의 글을 올립니다.
십오 세에 동진출가하여
좋은 스승 자운 운허화상 만나
계행청정하고 경전에 통달하니
나라의 스승이 돠었으니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웠네.
총무원장 퇴임식에서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내릴 뿐이다.”
담담하게 인사하니
사부대중이 과연 천하의 대선지식이라고 칭송하네.
팔십 세에 이 세상 옷 갈아입으며
세상을 떠나는 노래를 부르니
“팔십 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http://www.bulgyonews.co.kr/news/2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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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견 (총 1건)
어떤 무식한 목사가 불교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기에 진실을 바르게 가르쳐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