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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3/20 14:49:08  이한규
이송곤 박사의 '불교교육학' 강좌(12)
11. 불교교육의 기초

지난 호에서는 불교교육의 존재론적 기초와 인식론적 기초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불교에서의 교육행위란 인간에 대한 교육적 탐구와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적 실천이므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 인식론적 탐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 인식론적 탐구는 5(五蘊)12(十二處), 18(十八界) 등에서 찾아볼 수 있고, 5온설(五蘊說)12처설(十二處說), 18계설(十八界說)은 불교교육에서 전개하는 교육행위의 기초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5온설과 12처설, 18계설은 지금부터 살펴보는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에서 바탕이 된다. 왜냐하면 불교교육의 존재론인 5온설과 불교교육의 인식론인 12처설, 18계설 등은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인 사성제에서 종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어서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불교교육의 현장에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The Philosophical Foundation in Buddhist Education)  

서양학문의 시작은 철학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학이 학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러한 점은 교육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겠다. 교육학이라는 학문도 처음에는 철학에서 비롯하여 정립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교육학에는 교육철학(Philosophy of Education)이라는 분과학문이 있는데, 교육적 현상의 기저(基底)에는 교육철학과 관련된 특성이 있으므로 그 중요성이 있다. 교육철학을 학문적으로 정의하면, “교육의 문제를 철학적 수준에서 철학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일”(한명희 · 고진호 지음, 교육의 철학적 이해, 2005, 문음사, p.21에서 재인용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교육의 문제를 왜 철학적 수준에서 철학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것인지, 그리고 철학적 수준과 철학적 방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등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필요로 할 때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교육문제의 철학적 고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교육이란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때 인간에 대한 것은 인간에 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러한 인간의 문제는 바로 철학적 고찰의 대상이므로 교육현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교육문제는 철학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그럴까? 교육현장에서 교사는 교과서의 지식만 학습자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찰과 연구도 함께 함으로써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과 함께 학생들을 성숙한 인격으로 형성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교육문제의 철학적 접근과 연구를 교육의 철학적 기초라고 명명할 수 있고, 이와 같은 교육의 철학적 기초는 불교교육에 바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바,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The Philosophical Foundation in Buddhist Education)를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불교만큼 인간의 문제를 철저하게 규명한 것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필자는 불교교육의 존재론적 기초와 인식론적 기초를 다루었다. 이상 불교교육과 관련한 존재론과 인식론 등의 문제는 지금부터 논의하는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에서 다시 재론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를 논할 때 불교의 존재론과 인식론 등의 문제는 인간에 대한 문제로서 다시 거론할 수 밖에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여기서는 앞에서 논한 불교교육의 존재론적 · 인식론적 기초에 바탕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역설적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불교교육의 존재론적 · 인식론적 기초와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로서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으로는 사성제(The Four Nobles; 四聖諦)를 들 수 있다. 사성제는 불교를 믿는 불자 뿐만 아니라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부처님의 교설이며,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사성제는 초기불교 가르침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므로 필자는 이 사성제가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가 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사성제는 인간의 문제를 매우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데 우선 첫 번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성제(괴로움의 고귀한 진리, 苦聖諦)이다. 초기경전에서는 고성제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며, 늙음[]도 괴로움이며, [()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며, 슬픔, 비탄, 통증, 비애 그리고 절망도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求不得苦]이며,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며[怨憎會苦],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愛別離苦]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집착[五取蘊]이 괴로움이다.” [냐나틸로카 스님 엮음 · 김재성 옮김, Buddhavacanam ; 붓다의 말씀, 2007, 고요한 소리, p.37에서 재인용함]

 

 

인간으로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 겪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 , , 를 포함한 八苦이다. 즉 존재의 문제인 (dukkha, Sk. duḥkha)이다. 이 문제는 인간이 겪는 實存의 문제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서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때가 되면 죽고, 구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대로 구하기 힘드는 괴로움이 있고[구부득고, 求不得苦], 원수와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괴로움이 있고[원증회고, 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이 있고[애별리고, 愛別離苦], 다섯 가지 육체적· 정신적 기관[,,,,]에 집착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오음성고,五陰盛苦] 등이 있다.

 

그런데 어디 괴로움이 이것밖에 없겠는가? 전쟁으로 인한 괴로움, 천재지변에서 오는 괴로움, 굶주림에서 오는 괴로움 등 수많은 괴로움이 우리 인간의 앞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괴로움이 여기에서 끝나면 좋겠는데 또한 우리 앞에는 윤회의 괴로움이 있다. 경전에서는 이 윤회(saṃsāra)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윤회는 그 처음을 알 수 없다. 최초의 시간은 알려질 수 없다. 무명에 의해 뒤덮여 있고, 갈망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중샘들은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한다.” [냐나틸로카 스님 엮음 · 김재성 옮김, Buddhavacanam ; 붓다의 말씀, 2007, 고요한 소리, p.56에서 재인용함]

 

윤회(saṃsāra)는 빨리어의 어원적 의미로 끊임없는 헤매임'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은 어원적 의미를 보더라도 윤회의 고통은 매우 괴로운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인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것은 어떻게 의지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행위(行爲)는 땅이고, 의식(意識)은 씨이며, 갈망은 물기이다. 이것들 때문에 윤회가 발생한다.”

 

[AN 1. 223 이하.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 나성 옮김, ’Buddhist Philosophy - A Historicl Analysis ; '붓다는 무엇을 말했나'; 불교철학의 역사적 분석, 2011. 한길사, 5. 업과 윤회, p.87에서 재인용함]

 

이상 경전의 내용을 보더라도 인간에게는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식과 갈망이 있으며, 이로써 행위가 있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윤회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윤회의 시작은 무명(無明, avijjā)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무명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윤회의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어지고, 이것이 그치면 저것이 그친다. 다시 말하면 무지[無明]에는 경향성[]이 의존하고, 경향성에는 의식[]이 의존하고, 의식에는 정신 · 신체의 인격[名色]이 의존하고, 정신 · 신체의 인격에는 [감각 지각]의 문호인 육입(六入)이 의존하고, 육입에는 접촉[]이 의존하고, 접촉에는 느낌[]이 의존하고, 느낌에는 탐욕[]이 의존하고, 탐욕에는 집착[]이 의존하고, 집착에는 생성[]이 의존하고, 생성에는 태어남[]이 의존하고, 태어남에는 늙음과 죽음[老死], 슬픔과 한탄, 괴로움, 낙담, 번뇌 등이 의존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러한 무수한 고통[]이 일어난다.”

 

[S 2.28; TD 2.98a.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 나성 옮김, ’Buddhist Philosophy - A Historicl Analysis ; '붓다는 무엇을 말했나'; 불교철학의 역사적 분석, 2011. 한길사, 5. 업과 윤회, p63에서 재인용함]

고성제에 대해 살펴보면서 연기법(緣起法)에서 언급하는 무명에서 비롯하는 윤회의 괴로움의 문제도 다루었다. 이제부터 살펴보는 고집성제(苦集聖諦)에서도 결국 연기법의 측면에서의 괴로움[]의 원인이 규명되고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두 번 째,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인 고집성제(苦集聖諦)를 살펴보기로 한다. 장부경전(長部經典, DN)에서는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인 고집성제(苦集聖諦)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갈망[渴愛, taṅhā]인데, 갈망이란 또 다른 생존을 초래하며, 쾌락과 탐욕을 동반하는, 이른 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존재[]에 대한 갈망, 비존재[非有]에 대한 갈망을 말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이 갈망은 무엇에서 생겨나며,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이 세상에서 즐거운 대상, 즐길만한 대상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에서나 이 갈망은 생겨나고 그곳에 머무른다. , , , , , 마음[六根;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즐겁고 즐길만한 대상이라면 그곳에서 이 갈망은 생겨나고 그곳에 머무른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 [], 육체의 촉감[], 마음속의 현상들[] [六境; 여섯 가지 감각대상]이 즐겁고 즐길만한 대상이라면 그곳에서 이 갈망은 생겨나고 거기에 머무른다. 그리고 각각[, , , , , 마음]의 여섯 가지 의식[六識], 여섯 가지 접촉[六觸], 여섯 가지 접촉에서 생긴 느낌[六受], 여섯 가지 지각[六想], 여섯 가지 의지[六思], 여섯 가지 갈망[六愛], 여섯 가지 향하는 생각[六尋], 여섯 가지 머무는 생각[六伺]이 즐겁고 즐길만한 대상이라면 그곳에서 이 갈망은 생겨나고 거기에서 머무른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라고 한다.”

냐나틸로카 스님 엮음 · 김재성 옮김, Buddhavacanam ; 붓다의 말씀, 2007, 고요한 소리, pp.60-61에서 재인용함]

 

갈망(보통 갈애로 잘 알려져 있는데, 탕하[taṅhā]로도 알려져 있다)이 인간이 실존적으로 겪는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이 집성제의 진리에 의해서 밝혀졌는데, 앞에서 다룬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과 여섯 가지 감각대상인 육경(六境)이 각각 즐겁고 즐길만한 대상이라면 갈망, 즉 갈애가 발생하고 머무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갈망(갈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이 초기경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데, 이에 대해 더 살펴보도록 하자.

 

중부경전(中部經典, MN)에서는 갈망(갈애)이 현상의 조건에 의해 발행하게 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눈으로 대상을 볼 때, 즐거운 대상이면 그 대상에 집착하고, 즐거운 대상이 아니면 싫어한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코로 냄새를 맡을 때, 혀로 맛을 볼 때, 몸으로 접촉을 할 때, 마음으로 마음속의 현상들을 생각할 때, 즐거운 대상이면 그 대상에 집착하고, 즐거운 대상이 아니면 싫어한다. 그리고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處]을 지니지 않고, 좁은 마음으로 지내면서,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러한 모든 악하고 좋지 않은 현상들이 부지불식간에 감추어져 버린다. 이처럼 집착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지닌채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그 어떤 느낌이 생겨났을 때, 그 느낌을 즐기고 받아들이고 붙잡게 되면, 즐거움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렇게 느낌에서 생겨난 즐거움은 바로 집착[]이며, 이 집착을 조건으로 해서 존재양식[; 업에 의한 존재 또는 업의 과정]이 생겨나며, 이 존재양식에 의존하여 새로운 태어남[]이 생겨나게 되며, 이 태어남을 의존해서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비애, 절망 등의 온갖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겨나게 된다.”

 

[냐나틸로카 스님 엮음 · 김재성 옮김, Buddhavacanam ; 붓다의 말씀, 2007, 고요한 소리, p.62에서 재인용함]

 

이상 경전에 의하면 갈망(갈애)은 집착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 , , , , 마음 등이 각각의 대상에 집착할 때 느낌이 발생하는데, 느낌을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면 집착이 있게 되고, 집착은 조건이 되어 존재양식[]이 생겨나고, 이어서 존재양식을 조건으로 하여 새로운 태어남[]이 있게 되고, 이어서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비애, 절망 등의 온갖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겨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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