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사람들의 캠핑은 그 차림새와 방법에 있어서 우리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가 학창시절이었던 70년대는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이 세계 일류국가 되기 이전으로서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할 시기였다. 60년대의 보릿고개를 넘어 겨우 밥 세 끼를 해결할 정도의 생활 수준이 었으므로 캠핑과 같은 레저활동은 낯선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겨우 태동하던 문화였으므로 침대와 화장실이 딸린 캠핑카에 50인치 TV(프로젝트를 말함), 전자레인지에 쇼파와 식탁까지 챙겨오는 럭셔리한 지금의 캠핑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우리 젊었을 때의 캠핑은 한마디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캠핑이라고나 할까?
자 그러면 지금부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연구해 보자
우선 캠핑을 가려면 내 덩치보다 더 큰 배낭에 옷가지와 쌀과 김치, 고추장, 된장, 파나 무 등 각종 부식을 챙겨야 한다. 배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많은 짐을 챙기려면 준비물의 부피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구석구석 밀어 넣고 쑤셔 넣는데는 이골이 났지만 그래도 절대 부피가 배낭을 초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라면은 챙겨야 한다. 라면은 생각보다 부피가 많이 나가므로 궁리 끝에 개발한 방법이 라면 몇 개를 부스러 뜨려 조그마한 봉지에 담아 가는 것이다. 대충 라면 3개가 하나 정도의 부피로 줄어든다. 부스러뜨린 라면에 스프를 뿌리면 그 자체로 술안주가 되거나 심심할 때 먹는 군것질 꺼리가 되고 출출할 때 먹는 끓인 라면이 되기도 하는 등 참으로 요긴한 식품이다. 당시 여학생들이 즐겨 먹던 과자중에 ‘라면땅’이란게 있었는데 이것은 등산가는 사람들이 라면을 부스러뜨리는 걸 보고 착안한 것이 아닐까 싶다.
캠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질은 낮지만 돗수는 높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댓병의 막소주가 인기 품목이다. 당시 우리는 그런 막소주를 학생용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배낭마다 안쪽 깊숙한 곳에 막소주 한 병씩은 필수품목이다.
부식을 다 챙겼으면 그 다음에는 장비다.
첫 번째는 반합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반합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캠핑을 가는 사람 열이면 열 빠짐없이 들고 오는 것이 바로 군용 반합이다. 찌그러지고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지만 하도 열심히 씻어서 그래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반합의 신비로운 효용은 가히 전설적이다. 반합 다음에는 코펠이다, 코펠은 큰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을 넣고 작은 그릇 안에 더 작은 그릇을 넣고 그 안에 더 작은 그릇을 넣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넣도록 만들어진 알루미늄 냄비로서 그 쓸모에 비하여 부피도 작고 그다지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으므로 캠핑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배낭 다음으로 장만하는 물건 중에 하나가 코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도 코펠 하나를 장만하고 나서 등산 장비를 모두 갖춘 것처럼 뿌듯해 지기 까지 하였으니 우리 때 등산 문화에 있어서 코펠의 가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배낭 하나에 코펠을 준비하면 등산장비의 8할은 준비한 거다.
코펠을 챙겼으면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불을 준비해야 한다.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이면 누런 놋쇠로 만든 스웨덴제(製) 석유 버너를 가져가지만 흙수저 출신의 우리들은 열량도 시원찮고 매캐한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싸구려 고체연료 몇 통에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당시 스웨덴제 버너의 가격이 5,000원 정도였는데 필자도 이 버너를 가지고 싶었으나 비싼 가격 때문에 학창시절을 마칠 때까지 이 버너를 가질 수 없었으니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당시 서울 구로공단의 여공들이나 택시기사의 월급이 5,000원 정도였으므로 빈약한 학생의 용돈으로는 애당초 고려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쯤이면 배낭 속에는 더 이상 빈 공간이 없을 정도가 되지만 그래도 낡아빠진 군용담요 한 장 쯤은 억지로라도 챙겨 넣어야 하고 그 위에 텐트를 얹어야 한다.
당시에도 레저용의 나일론으로 만든 가볍고 질 좋은(?) 텐트가 나오기 시작하였지만 너무 비싸기 때문에 언감생심이고, 대부분은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몰래 파는 군용의 에이(A)텐트를 들고 다녔다.
이 군용텐트는 아주 두꺼운 천으로 만든 것으로서 텐트를 쳤을 때 (A)자 모양이 된다. 이 군용 텐트는 그 크기에 비하여 무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부피가 크고 무겁다 보니 아무리 잘 접어도 배낭 안에는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텐트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두 친구의 배낭 위에 각각 한 짝 씩 분리하여 얹은 후 이동 중에 떨어지지 않도록 노끈으로 단단히 결박을 한다. 어깨에 피멍이 들고 끙끙거리면서 텐트를 지고 가는 불쌍한 친구들에게 아이스케키를 물려 입을 막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국방색의 군용텐트는 민간이 사용하면 안되기 때문에 경찰이나 헌병이 보면 즉각 빼앗아 간다. 따라서 우리는 텐트를 뺏기지 않기 위하여 텐트의 겉면에 빨강색이나 파란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칠하여 위장을 하여야 하는데 자체 무게만도 엄청난 이 물건에 페인트칠까지 하게 되면 그야말로 전체 장비 무게의 반은 텐트가 차지하는 꼴이 된다. 산속의 캠핑촌이 원색의 아름다움이 넘쳐 나는 것이 알록달록한 텐트 때문이라는 것은 또 다른 역설이다.
김용수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http://www.bulgyonews.co.kr/news/36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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