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경 정사의 만다라 이야기(9)
태장계만다라의 지명원(持明院)
지난호에서는 태장계만다라의 12대원(大院) 가운데 네 번째 궁실(宮室)인 ‘금강수원(金剛手院)’에 대해 살펴보았다. 금강수원은 중대팔엽원의 오른쪽에 있는 궁실(宮室)로서 대일여래가 갖추고 있는 대지혜(大智慧)의 덕성(德性)을 나타낸다.
이번 호에서는 다섯 번째의 궁실인 지명원(持明院)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지명원은 중앙의 중대팔엽원으로부터 아래쪽에 그려진 궁실이다. 방향은 서방에 해당한다.
지명원(持明院)에는 반야보살, 대위덕명왕, 승삼세명왕, 항삼세명왕, 부동명왕의 다섯 분의 존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를 오대존(五大尊)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지명원을 달리 오대원(五大院)이라고도 한다.
지명원의 명칭은 오대존(五大尊)들이 절대자인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비밀한 말씀, 즉 명(明)과 진언(眞言)을 지송하고 있다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즉 지명(持明)은 ‘지혜를 갖는다’는 의미로서 불보살의 진언(眞言)과 명(明)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지명원은 불보살의 진언(眞言)과 명(明)을 지송함으로써 지혜를 증득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왜냐하면, 명(明)은 진언(mantra)의 뜻임과 동시에 지혜를 나타내는 의미의 명(vidya)으로서 뜻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명은 불보살의 진언과 명을 지송함으로써 지혜를 갖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명원은 자비를 나타내는 관음원과 지혜를 나타내는 금강수원의 공능(功能)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혜의 증득과 함께 자비행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명원은 주존(主尊)인 반야보살이 지혜의 증득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생제도를 위한 자비행도 강조되고 있다. 다만, 불보살의 한량없는 자비가 아니라 명왕들의 분노(忿怒)가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부동명왕 등의 4존이 분노형(忿怒形)을 하고 있다. 이유는 미혹하여 불법을 믿지 아니하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자비가 아니라 분노(忿怒)로써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명원(持明院)을 달리 분노원(忿怒院)이라고도 한다.
그럼 여기서 지명원에 등장하는 오존(五尊)을 한 분씩 살펴보기로 한다.
지명원의 제일 중앙에 있는 존(尊)이 반야보살이다. 반야보살은 부처의 지혜로써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 보살은 오대존 가운데 다른 명왕들과 달리 분노하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고 아주 자비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중생들을 분노가 아니라 자비로써 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명왕들은 분노하는 모습으로 중생을 강제적으로 인도하지만 반야보살은 자비로써 부드럽게 대하고 있는 말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보살은 말을 듣지 않는 중생을 한없는 자비로써 인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보살을 반야보살이라고 한 것이다. 왜 반야보살이냐 하면, 지혜가 자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비스러움에서 참다운 지혜가 묻어 나온다는 말이다. 또한 역으로 지혜가 있어야 자비를 낳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자비는 무명(無明)을 멸하므로써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12연기 가운데 생노사(生老死)의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자비가 일어난다. 생노사의 고통을 멸함은 바로 무명을 멸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반야보살을 여래의 지혜와 자비로써 중생을 섭수하는 정법륜신(正法輪身)으로 분류하고, 다른 4대명왕은 중생을 절복(折伏)시키는 지혜의 교령륜신(敎令輪身)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반야보살의 상을 살펴보면, 삼목(三目) 육비(六臂)를 하고 있다. 눈에 세 개고 팔이 여섯 개다. 삼목은 진리를 관하는 반야보살의 지혜의 눈[智目]을 의미하며, 깨달음의 당체인 불부(佛部), 자비를 나타내는 연화부(蓮華部), 지혜를 나타내는 금강부(金剛部)를 상징하고 있다. 여섯 개의 팔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의미한다. 그래서 반야보살을 반야바라밀다보살이라고 하며, 부처의 지혜를 본질로 하는 본존(本尊)이다.
이와 달리 4존(尊)의 명왕은 부처의 지혜와 자비를 대신하여 분노로써 불법(佛法)을 따르지 않는 미혹한 중생을 항복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명원은 어리석은 중생을 교화하는 세계로 그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노형의 명왕이 네 분이 계시는데, 대위덕명왕, 승삼세명왕, 항삼세명왕, 부동명왕이다. 이외에 군다리명왕, 금강야차명왕도 있는데, 대위덕명왕, 항삼세명왕, 부동명왕과 함께 오대명왕(五大明王)으로 불린다. 그러나 군다리명왕, 금강야차명왕은 지명원이 아닌 다른 곳에 계신다. 특히 군다리명왕은 한 군데가 아니고 세 군데나 모셔져 있는데, 불부(佛部)의 소실지원과 연화부(蓮華部)의 연화원, 금강부(金剛部)의 금강수원 등 여러 곳에 있다. 이들 군다리명왕은 동체(同體)로서 역할과 공능은 모두 같다.
금강야차명왕은 군다리명왕과 마찬가지로 태장계만다라의 지명원에는 등장하지 않고 동체(同體)로서 다른 곳에 있다. 금강수원(金剛手院)에 따로 있는데, 금강야차명왕의 동체(同體)로서 금강아보살(金剛牙菩薩)로 등장하고 있다. 금강아보살은 무서운 표정의 금강야차명왕과 달리 아주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단지 이빨로 악마를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금강아보살(金剛牙菩薩)이라 이름한 것이며, 역할과 공능에서는 금강야차명왕과 같다.
대위덕명왕은 반야보살의 왼쪽에 모셔져 있다. 이 명왕은 상(像)에서 있어서 삼면(三面), 육비(六臂), 육족(六足)을 하고 있으며 삼면(三面)에는 각각의 삼목(三目)이 있어 총 18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삼면은 세 개의 얼굴을 말하는데, 본 얼굴의 좌우에 둘, 머리에 세 개의 얼굴이 있다. 삼목과 육비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의미이다. 많은 눈은 중생을 두루 살피기 위한 것이고 팔이 여러 개인 것은 여러 가지 무기로써 악마를 파괴하고 악마의 목숨을 끊기 위함이며, 팔이 여러 개인 것은 뭇중생을 제도하러 많이 돌아다니기 위함이다. 그래서 육족존(六足尊)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다음의 승삼세명왕은 대위덕명왕의 왼쪽에 있다. 이 명왕은 삼목(三目)을 하고 왼손에는 삼고저(三鈷杵)를 쥐고 있고 오른손에는 삼고극(三鈷戟)을 들고 있다. 세 개로 갈라진 창(槍)을 말한다. 이 명왕을 달리 항삼세명왕이라고도 한다. 삼세(三世)란 과거, 현재, 미래 혹은 색계, 욕계, 무색계의 삼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탐진치(貪嗔癡)의 삼독(三毒)을 말한다. 이를 항복시켜 끝내 승리로 이끈다는 의미가 승삼세이다. 양손의 삼고저나 삼고극으로써 삼독심을 없애고 온갖 장애를 극복하여 지혜를 얻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명왕들에 나타나고 있는 등뒤의 화염(火焰)은 삼독심과 번뇌망상을 불로 태워 없앤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야보살의 오른쪽에 있는 명왕이 항삼세명왕이다. 삼면(三面), 팔비(八臂)를 하고 있으며, 그 삼면에는 각각 삼목(三目)이 있고 총 9개의 눈을 지니고 있다. 삼세(三世)를 항복시킨다는 것으로 항삼세와 승삼세는 같은 의미다.
제일 오른쪽에 부동명왕이 있다. 부동명왕은 명왕을 대표하는 존(尊)으로 일본에서는 본존(本尊)으로 숭앙되고 있다. 정수리에 연화를 이고 뒷머리는 땋아서 길게 늘어뜨린 모습을 하고 있다. 왼손에는 동아줄[索], 오른손에는 칼을 지니고 있다. 동아줄은 중생을 끌어 당겨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뜻하고, 칼은 번뇌장과 소지장을 끊어 없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화는 자비를 의미하고, 머리를 땋은 것은 대일여래의 하인(下人)으로서 오로지 중생구제에 몰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명원의 명왕은 밀교 오불(五佛)의 교령륜신(敎令輪身)으로서 지혜의 바다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늘도 말을 듣지 않는 중생들을 호되게 야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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