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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1/10/21 13:06:26  이한규
담원 김창배의 禪畵畵帖 기행
기행擧世皆濁我獨淸(거세개탁아독청)

우리의 端午명절도 屈原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풍습에서 전해져 온 것으로 李白이나 杜甫 란 거장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어부사(漁父辭)", 어부의 달관한 삶의 자세와 굴원의 강직한 성품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무능과 부패가 많던 관료들의 모함으로 양자강의 沼澤地로 추방된다. 굴원은 강가에서 시를 짓고 거닐 때 어부를 만나 나눈 문답엔 노장사상이 녹아 있다.


漁父見而問之曰(어부견이문지왈),子非三閭大夫與(자여삼여대부여),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어부가 굴원을 보고"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건 가요?'하고 물었다.

 

屈原曰(굴원왈), 擧世皆濁我獨淸(거세개탁아독청),衆人皆醉我獨醒 (중인개취아독성),

是以見放(시이견방) 굴원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이 때문에 추방당한 것 이 라오" 하고 대답했다.

 

필자의 작품 속에 자주 그리고 쓴 어부사, 굴원 선생은 BC 343년 경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살았던 인물, 굴원은 회왕의 신임을 받아 젊은 시절에 좌도라는 중책을 맡을 정도로 총명하였고 빠른 승진으로 삼려대부라는 관직에 올랐다. 굴원 자신은 어제나 깨끗한 몸으로 청렴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은 받아주지 않았다.

 

굴원이 10 여 년 간 유배될 무렵, 나이 54세 때 나라의 혼란과 무능, 부패 등이 판쳐, 결국 진나라에 의해 초나라가 멸망하자,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해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참으로 홀로 깨끗하고 바르게 살았던 굴원 선생, 굴원 선생과 같은 정치인이 오늘날 우리나라에 필요하다. 한 잔 다려, 헌다(獻茶)드린다. 인간의 본래 면목을 茶香같이, 환한 거울같이 닦고 다듬으려 노력하였던 굴원, 君者와 같아서 삿됨이 없다. 香氣로 말하고 사람은 인격으로 말한다.

문화예술학 박사 담원 김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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