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이 누옥에 도착했으나 해가 뉘엿거릴 때 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도윤스님은 심심하기도 하거니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이곳의 지형뿐만 아니라 절터였음직한 곳을 직접 자세히 둘러보기로 한다. 누옥 앞에 폭 10여미터 쯤 되는 좁은 길 건너편 경사진 땅 앞에 100여평은 됨직한 평지가 있다. 만약 이곳에 용방사가 있었다면 산세로 보나 주변 여건으로 보나 이 평지가 절터인 것이 분명한 것 같고, 그래서 스님은 이 평지가 절터라는 확신을 가지고 둘러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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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수 시인 |
불빛 하나 없는 이 산골짜기에 해가 지고 나면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될 것이므로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스님은 비스듬한 내리막을 내려가서 평지를 샅샅이 살펴본다. 스님은 갑자기 말이 빨라지면서 설명에 열을 올린다. 아마도 스님 스스로 큰 발견을 하고 그 발견한 사실을 필자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말을 빨리하게 한 것이리라.
스님이 보기에 자신이 밟고 선 땅의 모양으로 보아 지금은 토사에 메워졌지만 연못이었던 것이 틀림없고 연못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 좀 더 아래쪽 두둑한 곳에는 깨어진 기왓장 조각이 휘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님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기왓장 조각을 내게 보여주며 이곳에서 출토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 기왓장 조각을 고고학자에게 보여 분석을 의뢰한 결과 이 기왓장들은 재질이나 두께, 기와의 겉면에 그려진 무늬로 보아 고려 중기 때의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서산에 걸려 있던 해가 자취를 감추고 사방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질 때까지 탐사에 몰입하다가 해가 완전히 져서 더 이상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탐사를 마쳤다. 해가 질 때까지도 집주인을 기다렸지만 집주인은 나타날 기미가 없다. 스님은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하여 다시 졸졸 흐르는 약수 한 사발로 빈속을 채우고 굴 안에 모셔진 조그만 주먹만한 부처님 앞에 나아가 108배를 한 후 정성을 다하여 목탁을 치며 독경을 하는데 굴안에서 회돌이치며 스님의 귀에 되돌아오는 자신의 독경소리가 그렇게 청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굶고 지치고 피곤한 노구 어디에서 그렇게 청아하고 낭랑한 독경이 나오는지 스스로도 감탄하였다고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인기척이 들려 뒤돌아보니 누비로 만든 절복을 입었으되 머리를 기른 처사 한 분이 홀홀히 서 있었겠다. 스님은 깜짝 놀라 일어나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찾아온 연유를 설명하자 처사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공양을 안 한 것 같으니 공양부터 하자고 하여 손수 따뜻한 밥을 지어 소박한 밥상을 차려 나왔다.
산중에 있는 사람이 좋은 반찬을 드릴게 없다고 겸손해 하였으나 그렇게 맛있는 공양을 얼마만에 받아 보는지 정말 감개무량하다고 하였다.
밥찬은 묵은지라고 해야 될 정도로 쉬어 빠진 김치 한 조각과 어제 끓여 먹다만 된장국 한 종지가 전부였지만 언제 이렇게 맛있는 공양을 해 봤는지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처사와 함께 저녁 공양을 마치고 절로 정신을 맑게하는 녹차를 내 온다. 새하얀 찻잔에 연녹색의 푸르스럼한 향기가 눈과 코를 희롱하고 혀끝에 감도는 그 쌉쌀한 맛은 육욕천(六欲天)의 다섯째 세계인 화락천(化樂天)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즐거움이 아닐까. 가히 여기가 수미산(須彌山)일진저.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녹차로 입가심을 한 후 스님은 의상대사께서 현몽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꿈에서 들은 용방사라는 절을 찾아 무작정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최근에 이르러 이곳에 용방사 옛절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였다. 설명을 들은 처사는 정식으로 출가한 적은 없고 어쩌다 인연이 닿아 이곳으로 와서 법복을 입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지만 언젠가는 공부가 높은 스님이 찾아오시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처사는 자기 스스로 스님이라고 행세해 본적은 없고, 오직 처사라고 자칭하면서 혼자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스님이 찾아오신 것을 보니 왜 자기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하는 것을 알 것 같다고 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이 자리는 고려시대 때 창건한 용방사가 있던 자리였으며, 여우굴의 전설과 문가학의 역모사건에 휘말려 문가학 일행은 모두 능지처참되었고, 문가학 일당의 본소(本所)이 용방사는 흔적도 없이 부숴지고 절이 있던 자리에 소(沼)를 파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처사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기왓장과 신라시대 때 사용되던 그릇의 파편 몇 점을 보여주었고, 구전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하여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주춧돌이나 그 밖의 사찰 관련 용품들을 찾고 뒤져 보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조선시대 당시 관에 의하여 철저하게 훼손된 결과 더 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다만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용방사 관련 이야기와 여우굴의 전설을 들려주었으며 용방사와 관련한 자료들이 있는 산청군청과 산청문화원, 그리고 용방사의 전설이 얽힌 이야기를 풀어 쓴 신문 등을 알려 주었다.
여우굴 얘기를 듣는 도연스님이나 스님과의 만남을 500년을 건너 뛴 불가지연(佛家之緣)이라고 하며 대화를 이끌어 가는 처사의 이야기는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http://www.bulgyonews.co.kr/news/36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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