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문한 것인지, 기억력의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역 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에 해당하는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가 우리가 세계 최고의 방역 모범국이라 자찬하면서 낮은 발병률을 내세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야당에서 방역의 문제점을 거론하면 ‘모든 나라가 K-방역을 최고라고 하는데 야당에서는 정치공학적으로만 비판’한다고 했는데 그런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K-방역은 국민과 의료진이 한 일인데 실패라고(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라고 하면서 잘못된 것의 원인이 의료진과 국민에게 돌린 발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나는 그 말이 맞다고 했다. 나랏님의 말씀은 언제나 지당하시니까.
금년 들어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다가 3월 중순 62만 명을 넘어서면서 세계 최고의 발병률을 보였고 사회 일각에서 또 방역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게 되자 같은 고위 당국자는 ‘발병자 숫자만을 가지고 방역 정책이 실패했다고 떠드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비판을 했는데, 나랏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지 무지렁이 백성이 뭐를 안다고 일부 편향된 언론이 지적하는 단순한 수치만을 가지고 정책 실패 운운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국민 된 도리가 아니라고 보아 말을 삼가고자 한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확진자 수가 적을 때 ‘미국은 몇 명, 일본은 몇 명 유럽은 몇 명인데 우리는 몇 명밖에 안되니 우리 K-방역의 우수성이 세계 최고’라고 한 것은 숫자 놀음이 아니고 무엇이던가요?
자,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코로나 19가 우리 일상생활을 변화시켜 그야말로 제4의 물결을 불러온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코로나 19이후 우리는 가정 파괴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가족(家族)이라는 말 보다 식구(食口)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족이라는 말은 좁게는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을 말하겠지만 크게는 군인 가족, 경찰 가족 등과 같이 사회의 특정 구성원을 지칭하거나 범세계적으로 지구촌 가족이라고 하여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 가정의 가족임과 동시에 내 가정이 소속된 더 큰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가족이 되기도 하고 급기야는 지구촌 가족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식구라는 것은 한자리,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의 구성원, 특히 한국 사람들의 식생활 패턴과 같이 된장찌개 냄비에 너도 숟가락을 담그고, 나도 밥알이 묻은 숟가락을 곧장 찌개 냄비에 투입하여도 더럽다는 표정없이 함께 떠먹을 수 있는 사람, 즉 한 식구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밥과 함께 정을 나누는 식구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말이 물리적, 공간적 개념으로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라면 식구라는 말은 감성적이고 정적으로 지칭되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개념이다.
무릇 식구는 내 피를 나누어 주어도 아깝지 않고 너를 위하여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그래서 식구 중 어느 한 사람이 병을 앓으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하여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되는 사람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최고의 덕목으로 이루어진 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 19라는 괴물이 나타나 급속하게 세계로 파먹더니 불과 몇 개월만에 세계인의 행동과 생각의 중심에 들어앉아 주인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남의 일같이 시작된 코로나가 마침내 전세계적으로 퍼져 팬데믹이라는 생소한 외국어가 외래어의 지위에 들어앉은 것처럼 그것이 마침내 우리의 가정 안에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말았으니 가정과 식구라는 지고의 가치관까지 앗아가 버렸다.
금년 3월 중순경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62만 명을 넘어서면서 어느 집 할 것 없이 코로나 환자 한 두 명씩은 발생하였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환자를 수용할 의료시설이 태 부족해지자 방역 당국에서는 자가격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용어를 만들어 스스로 집안에 감금(?)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고 그로부터 우리의 가정은 가족간에도, 아니 식구들끼리도 가벼운 기침이나 콧물에도 서로를 의심하면서 거리두기를 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
방역 당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집안에서 환자가 발생할 경우 감염자를 사실상 격리하여 다른 비감염자와 대면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가정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그 결과 확진자를 골방에 유폐, 감금한 후 식사 때가 되면 밥상을 방 앞에 갖다 놓고 방문을 두드리거나 전화를 하여 밥을 가져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신호를 받은 감염자는 마치 죄인이 된 양 가져다 놓은 밥상을 몰래 살짝 들여다 혼밥에 눈물을 섞어 먹어야 하는 기상천외한 가정문화가 창조되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일체감이 아니라 죽어도 너 혼자 죽으라는 탈가정의 개인 문화가 가족이 아닌 한 식구 사이에서도 발생하였으니 이것이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인 가정, 그 가정 파괴의 전조가 되었고 내가 말하는 제4의 물결의 시작이 된 것이다.
혼자서 먹은 밥그릇을 치우는 것도 문제가 된다. 다 먹은 그릇을 내와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서 병균이 전파될 우려가 있으므로 아예 확진자의 밥그릇이나 수저는 모두 일회용품으로 준비하여 들여보내고, 빈 그릇은 비닐봉지에 담아 곧바로 폐기 처리하여야 한다.
어디 이것뿐인가? 더 기가 막힌 것은...
 |
| 김용수 시인 |
(다음 호에 계속)
http://www.bulgyonews.co.kr/news/36803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