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젊은이인 병순이가 갑자기 죽는 황망한 일이 벌어졌다.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녀석이었다. 아이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우리 나이로 40이나 된 젊은이다.
붙임성이 있고 뭐를 하던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하던 참 예쁜 젊은이였다. 대학을 마친 후 직장생활을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었고, 새로운 직장 잡기가 어려워지자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화물차량을 운전하다가 새벽잠을 이기지 못하고 앞서가던 차를 추돌하여 사망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운전, 특히 화물차 운전은 너무 위험한 직업이므로 하지 말라고 말렸으나 그렇다고 집에서 놀 수는 없으니 뚜렷한 직장이 잡힐 때까지 운전이라도 하면서 용돈벌이라도 한다고 시작한 운전이 벌써 8개월째였고, 그예 총총히 떠나 버렸다.
참으로 고약한 녀석이다. 아직 장가도 가지 못하고 떠나 버렸으니 녀석은 제 어미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고 떠난 불효자였다. 역천(逆天)이라고 하였던가.
그 아이는 빈소 앞에서 가슴을 치며 바닥을 뒹구는 제 어미를 영정 사진 속의 두 눈을 빌어 쳐다보는 고인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아까운 녀석을 잃었다고 입을 대지만 돌이켜 위로를 한답시고 ‘이승에서 아까운 녀석은 저승에서도 할 일이 많을 테니 빨리 데려가겠지.’
어줍잖은 이 말이 제 어미에게 위로가 될까?
그 녀석도 내가 잘 가던 절에 부지런히 다니던 불자였다.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뽀르르 달려와서 궂은 일 마다 않던 녀석이었다.
영정 속 사진의 미소와 금방이라도 환한 웃음으로 달려 올 살아 생전 녀석의 미소가 오버랩되지만 결코 하나로 겹쳐지지 않는다.
초상을 치른 후 평소 자주 가던 절에 49제를 모셨다.
나도 초제(初祭)는 빠질 수가 없었다. 집제(執祭)는 죽은 아이가 잘 따르던 현법(賢法)스님이 맡아 주셨다.
보통 2시간 정도의 집제 시간 중에 독경하고 기도하고 절을 하는데 스님은 3시간이 넘도록 참으로 열심히 기도를 해 주셨다. 초여름의 무더위 속에 대웅전은 바깥 날씨보다 한결 더 더워 앉아만 있어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는데 집제를 하시는 3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열정적으로 독경하시는 스님의 열의에 죽은 아이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승을 떠났으리라...
스님이 기도를 하시는 중에 도무지 내 마음이 집중되지 않는다. 죽은 아이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와 화사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도 어른거리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제 어머니의 비원(悲怨)과 죽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살펴주던 노보살님의 흐느낌도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그에 못지않게 당장 출판을 앞두고 있는 내 소설을 어느 출판사에 맡겨야 할지, 소설 속의 스토리 전개에 혹 무리가 없는지 오타와 우구(愚句)들이 삼류 소설로 전락하지나 않을련지.
난마처럼 얽힌 뒤죽박죽의 아수라 세상이 되어 도무지 삼매(三昧)에 들 수가 없다. 삼매에 들지 못하는 나의 난삽한 정신상태를 수습하고자 삼매에 관한 경전들을 꼽아 본다. 화엄삼매와 해인삼매 108가지에 이르는 반야경의 삼매와 금강경의 무쟁삼매를 반추한다.
천태종에서 일컫는 마음을 대상으로 삼아 집중시키므로서 지혜를 얻는 4종삼매를 떠 올리며 90일 동안 상좌삼매에 빠져 보고도 싶고 90일 동안 도량안을 도는 상행삼매에 빠져 보고도 싶다. 삼매를 뒤적이며 빠져버린 허황된 삼매는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발아래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에도 발이 빠졌다. 산등성을 타고 올라오던 구름은 무리무리 손을 잡고 오르다 내려가는 길에 한 줄기 돌풍에 여지없이 흩어져 뿌연 안개가 된다.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을 바라보는 내 처량한 눈에는 검은 구름만 가득하다. 황톳강 거친 탁류를 밟고 지나가는 스님의 독경소리는 눈 앞에서 구름이 되고, 귀 앞에 바람이 되어 스러진다. 바르다고 여긴 것들이 바르지 못한 것이었고 그릇된 분별과 삿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혼침(昏沈)에 빠져 분별도 구별도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탓하는 스님의 법문은 어느 듯 고요한 진혼의 노래가 되어 무더위에 땀까지 더하니 법당에 갇혀 숨도 쉬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쏟아 줄 청량한 소낙비는 어디 있는가.
삼매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러면 생각하지 마라.
무엇으로 번민하는가. 그러면 생각하지 마라.
죽은 저 아이를 연민하는가. 그러면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 버리고 또 버리자.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이 법당으로 몰려와 부처님 앞에 엎드려 일배 일배 우(又) 일배를 올린다. 중생들은 연화세상(蓮花世上)에서 끝없는 찬양을 올리니 이제 떠나려는 병순이도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이승에서 짊어졌던 짐들을 훌훌 벗어 던진다.
카랑카랑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이제사 내 귀에 들어오고, 죽은 아이 어머니의 귀에 흘러들고, 노보살 품속에는 부처의 지혜가 흘러든다.
아이의 어미가 소리친다.
“여기가 어디요? 구름이 모여지는 곳이오.”
노보살이 소리친다.
“여기가 정녕 어디요? 구름이 흩어지는 곳이오.”
대중들이 모두 입을 모아 소리친다.
“병순아 부디 좋은 곳으로 가거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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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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