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를 끝나고 새벽을 맞을 때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건강 때문에 시작한 신해사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추수를 막 끝낸 남녘의 들판이 지금까지 살아온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과히 즐겁지 않습니다. 왜 이런 마음이 들까요? 나이 탓이라 하면서도 잠시나마 제가 살아온 흔적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올바른 수행자는 가을 추수를 마친 농부의 모습처럼 겨울내내 행복한 모습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확을 채 마치지 못한 농부처럼 조금은 불안한 것은 인생 중간마다 조금은 제 욕심을 부려 치열하게 살지 못한 여운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잠시나마 제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 아닌 후회에 잠기기도 합니다.
농부의 기쁨은 수확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풀을 뽑고 거름을 주어 가을이 되면 그동안 땀 흘린 노력의 대가를 수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행자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도 나이 들어 생겨나는 병들은 저를 다시 한번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이 들어 죽음이라는 무게를 앞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겸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살아온 추억의 앨범에는 수많은 인생이 녹아있습니다. 천진하게 아무 것도 모를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살았던 적도 있었으며, 결혼을 하여 자식 보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살았던 적도 있었으며, 남들보다 더 잘 살기위해 열심히 경쟁하듯 살았던 적도 있었으며, 원만하게 세상의 물증을 알며 가족과 주위의 아픔과 행복을 누리던 때도 있었으며, 저처럼 이제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10년 혹은 20여년이 채 남아있지 않은 지금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모습에는 많은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보호받아야 할 어릴 시절에는 가정에서 하나하나 사랑받으며 교육 받았으며,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인 학교에서 이런 저런 교육을 받았으며, 사회생활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며 혹은 협력하면서 사회적 규범안에서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저처럼 부처님의 제자로 불교 문중에서 수행자로 혹은 불자로 살아오신 여러분들은 자신이 만난 인연의 깊이만큼 선행을 하며 각자 인연의 무게만큼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따라 선행을 하는데 주저하치 않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상카라경>에 바른 신행과 그른 신행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 ‘상카라’라는 젊은이가 찾아와 여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은 훌륭하고 어떤 사람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왜 그러합니까? 또 어떻게 훌륭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은 마침 허공에 밝게 떠 있는 달을 비유하여 그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상카라야, 보름달은 처음에는 비록 조그맣지만, 날이 갈수록 광명이 더해 마침내 둥글고 원만해져서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그러나 그믐달은 처음에는 둥글고 환하지만 한번 기울기 시작하면 밤낮으로 줄어들어 나중에는 완전히 빛을 잃고 만다.
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가르침을 받고 바른 믿음과 고요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는 바른 소견으로 깨끗한 계를 지키며,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바른 법을 알고,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보시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보름달처럼 얼굴도 훤해지고 인격도 훌륭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잘했으나 어느 순간 초지를 잃고 바른 믿음을 잃는다. 그런 뒤에는 점점 깨끗한 계를 지키지 않고 착한 벗을 멀리 하며 바른 법을 배우기를 게을리한다. 몸으로는 나쁜 행동을 하고 입으로는 나쁜 말을 하며 뜻으로는 나쁜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쁜 인연을 지음으로써 그는 목숨을 마친 뒤 나쁜 세상에 떨어지게 된다.”
우리 불자들은 삶은 어떠해야 하나요? 마냥 착하게 산다고 하는 정답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그것은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은 각자의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인 삶의 모습은 둥굴고 환한 보름달처럼 마음을 맑고 밝은 향기로 가득 채워가는 모습이 불자의 가장 좋은 모습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행복의 조건을 채워주는 것이라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정답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정답 혹은 반대가 아니라 참고할 수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유혹의 그물이 우리 자신을 감싸도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조금만 놓아버리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 법으로, 부처님 가르침으로 세상을 보면 다투고 힘내어 싸울 일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만큼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이 불자의 모습이며 오늘 열심히 살아가는 불자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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