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경 정사의 만다라 이야기(13)
태장계만다라의 허공장원(虛空藏院)
지난 호에서는 태장계만다라의 12대원(大院) 가운데 아홉 번째 궁실(宮室)인 제개장원(除蓋障院)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개장원은 제개장보살이 주존(主尊)이자 본존(本尊)으로 모셔져 있는데, 일체중생의 업장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 호에서는 허공장원(虛空藏院)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허공장원은 태장계만다라의 아래쪽, 즉 서방(西方)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보살의 지혜와 복덕이 허공과 같이 무변(無邊)하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중생의 소원에 따라 복덕을 베푸는 제불보살(諸佛菩薩)이 계시는 궁실(宮室)이다. 따라서 허공장원(虛空藏院)의 중존(中尊)은 당연히 허공장보살이 된다. 허공장보살은 허공과 같이 무변(無邊)한 지혜와 복덕(福德)으로써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성취시켜주는 보살이다. 모든 불보살이 그러하듯이 오로지 중생을 위하여 중생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구제하는데, 그 가운데 허공장보살은 지혜와 복덕이 허공(虛空)에 비유된다.
허공장원은 중앙의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지명원(持明院)이 있는데, 그 지명원의 다음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중대팔엽원에서 지명원, 허공장원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배치는 바로 지혜와 관련이 있다. 중대팔엽원은 여래의 지혜와 자비 그 자체를 의미하고, 지명원은 이러한 여래의 지혜를 사자(使者)인 명왕(明王)들이 중생의 번뇌를 타파하고 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에 허공장원은 여래의 지혜와 복덕이 무변(無邊)하여 허공에 가득 차 있어 그 복덕으로 중생들의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줄여서 말하자면 지혜에서 시작하여 지혜로써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이 허공장원에는 22보살과 권속으로서 4비천(飛天), 2사자(使者) 등이 배열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중심되는 보살이 허공장보살이며, 허공장의 오른쪽에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千手千眼觀自在菩薩), 왼쪽에는 금강장왕보살(金剛藏王菩薩)이 있고, 열 분의 십바라밀보살 등이 있다. 독자가 바라보는 왼쪽의 황색의 큰 존상(尊像)이 관자재보살이고, 오른쪽의 청색의 큰 존상(尊像)이 금강장왕보살이다.
주존(主尊)인 허공장보살은 이름 그대로 허공처럼 광대(廣大)하여 걸림과 장애가 없는 복덕과 지혜를 갖추고 자유자재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보살로서 불부(佛部)의 과덕(果德)을 나타낸다. 그런데 대부분의 궁실들은 불부, 연화부, 금강부 가운데 하나에만 해당되는데, 허공장원은 이와 달리 불부, 연화부, 금강부의 삼부(三部)가 한 궁실 속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즉 허공장보살은 불부(佛部)에 해당하고, 좌우의 천수천안관자재보살과 금강장보살은 연화부와 금강부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허공장보살은 불부(佛部)의 공덕을 나타내고,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은 연화부의 과덕(果德)인 자비(慈悲)를 나타내며, 금강장왕보살은 금강부의 과덕(果德)인 지혜(智慧)를 나타낸다.
그래서 허공장보살을 끝없는 지혜와 복덕을 지닌 보살로 묘사되는데, 이를 존상(尊像)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오른손에는 검(劍)이 들려 있는데 이는 여래의 지혜를 나타내며, 왼손의 연꽃 위의 보주(寶珠)는 여래의 복덕(福德)을 나타낸다. 그리고 몸에 걸쳐져 있는 백색(白色)의 천의(天衣)는 여래의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나타내며, 머리에는 오불(五佛)이 장신된 보관(寶冠)이 쓰여져 있다. 이는 복(福)과 지(智)가 원만함을 나타내고 모든 부처님의 만덕(萬德)을 장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꽃 위의 보주(寶珠)에는 세 개의 핵이 들어 있는데, 이를 삼판보주(三瓣寶珠)라 한다. 삼판(三瓣)은 곧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이라는 삼덕(三德)을 의미한다. 그래서 허공장의 결인(結印)도 이러한 배경에서 삼판보주 형태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이를 허공장인(虛空藏印)이라고 하는데, 존상에서 보이듯이 허심합장(虛心合掌)을 하고서 두 엄지를 가운데 안으로 넣고 여기에 두 인지(人指)로써 이를 누르는 손 모양이다.
허공장보살을 본존으로 삼아 허공장인(虛空藏印)을 하고 백일 동안 진언을 백만 번 소리 내어 외우면, 모든 교법(敎法)의 글과 뜻을 암기할 수 있다고 하여 수학(修學)하는 자들이 많이 행했다고 전해진다.
진언은 ‘나막 사만다붓다남 아카사사만다누가타 피시트람바라다라 사바하’이다. ‘널리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허공과 동등한 자여, 색색의 옷을 걸친 자여, 사바하’라는 뜻이다.
허공장의 오른쪽에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이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천수관음보살이라고 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대자비(大慈悲)의 덕성(德性)을 나타내는 보살이다. 그래서 밀교에서는 명호(名號)를 대비금강(大悲金剛)이라 부른다. 이 보살을 상징하는 연꽃은 개부연화(開敷蓮華)다. 활짝 핀 연꽃이다. 자비가 만개(滿開)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보살은 본래 관음원(觀音院)에 배치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관음원의 관자재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대자비(大慈悲)의 인(因)으로 묘사되고, 허공장원(虛空藏院)의 관자재보살은 중생구제의 과덕(果德)으로 묘사되고 있어 그 차별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중생구제의 대비원(大悲願)이 인(因)과 과(果)로써 반복하여 그려져 있는 것이다. 중생구제를 매우 중요시 여겨 대원(大願)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보살의 존상은 황금색을 이루고, 27개의 얼굴과 42수를 지니고 있다. 결인은 구산팔해인(九山八海印)이다. 손 모양은 금강합장을 하고 약간 손등을 구부린다. 합장한 손바닥을 서로 떨어지게 하고, 두 중지를 붙이며, 두 약지와 두 엄지를 각각 서로 겹쳐 포개지도록 하여 똑바로 세운다. 이 보살의 진언은 ‘옴 바즈라다르마 흐리히’이다. 뜻은 ‘옴 금강법이여, 흐리히’이다.
허공장의 왼쪽에는 금강장왕보살이 있는데, 존상의 모양은 거의 관자재보살과 흡사하다. 다른 점은 이십이면(二十二面)을 이루고, 108개의 팔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22면(面)은 16분의 보살과 육도(六度) 보살을 나타낸다. 중생의 서원을 들어주고 육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108개의 팔은 중생의 108번뇌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 번뇌를 108개의 팔로써 없앤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금장왕보살을 일백팔비금강장왕보살(一百八臂金剛藏王菩薩)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앙 허공장보살의 상위(上位)에는 열 분의 보살이 있는데, 십바라밀보살이다. 상위의 왼쪽 첫 번째부터 단바라밀보살, 계바라밀보살, 인욕바라밀보살, 정진바라밀보살, 선바라밀보살의 다섯 바라밀보살, 그리고 오른쪽 첫 번째부터 반야바라밀보살, 방편바라밀보살, 원바라밀보살, 역바라밀보살, 지바라밀보살의 다섯 바라밀보살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왜 바라밀보살인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이르는 수행방편이 바로 바라밀이기 때문에 허공장원에 십바라밀보살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십바라밀보살의 존상(尊像)은 모두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중생을 자식처럼 여기는 어머니의 마음이 곧 십바라밀보살의 마음이다. 그리고 모두 갈마의(羯磨衣)를 걸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왜 갈마의(羯磨衣)인가. 갈마의는 거추장스러운 복장이 아니라 간편한 복장이므로, 중생구제의 활동을 좀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갈마의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갈마(羯磨)는 대개 작업, 활동 등의 행위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와 같이 일하기 편한 복장을 한 것은 바로 바라밀행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단바라밀보살(檀波羅蜜菩薩)은 십바라밀의 첫 번째로 보시의 덕을 나타낸다. 금강의 쟁반 위에는 일곱 개의 꽃이 있는데 모두 칠보(七寶)로 된 꽃이다. 왜 금강반(金剛盤)에 칠보의 꽃인가. 모든 중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이다. 한없이 베푸는 것이 불보살이며, 이를 실천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 단바라밀보살이다. 그래서 이 보살의 밀교 명호를 보시금강(報施金剛)이라고 한다.
허공장원의 모든 보살은 지혜와 자비의 복덕을 오로지 중생들에게 시여(施與)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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