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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1/04/23 17:32:24  이한규
녹동 김기원 교수의 茶詩문학의 이해(3)
3. 차시문학 이해력의 감응 형성

김기원 교수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함으로서 차시문학에 구성된 행위적 방법이 뇌를 통하여 전달된다. 입으로 진 맛을 느끼며 귀로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뇌파 행위를 받아 내용에 대한 감정을 조절하여 종합적으로 차시문학의 맛을 느끼게 될 때 조용히 느끼는 좋은 이미지를 유도하여 발산시키는 행위를 차시문학의 이해력이라 하겠다.

부교감신경에 따라 차치에 대한 감각과 이해 측도에 따라 순조로의 조절하면서 진행시키는 것이 차시문학의 이해를 더 넓게 증가시키는 것이다. 즉 조리한 음식을 그대로 먹기보다 맛내기를 위해 필요한 조미료를 가감하는 것처럼 차시문학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감응적 감상의 형성이 필수요건이라 하겠다.

 

1) 차시문학에 대한 신체 반응

신체기관의 여러 기관 가운데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관이 부교감신경이다. 차란 여키스가 반응을 자극시키는데 따라 이해력과 감정 표출의 차이가 많이 생긴다. 단맛이 강한 꿀을 생각하거나 신맛이 강한 식초를 생각만 할지라도 혓바닥이 스스로 감응하여 침샘의 분비물을 줄줄 입 밖으로 흘린다.

침을 많이 흘리는 어린아이가 지혜지능이 우수하다는 보고처럼 차시문학의 이해를 촉진하는 신경이 흥분 정도의 차이가 스스로 자율 반사를 일어내어 전달하기 시작하면 상상의 찻 맛을 느끼고 시문학 내용에 취하면서 느끼는 반사의 자극이 엔도르핀을 분비하여 만드는 것이다.

<잘 된다> <참 내용 좋다> 등으로 외침이 소리의 파장이 되고 소리로 생기는 울림이 감응으로 이어져 일어나는 강약의 파장이 급히 뇌에 전달되어 형이 학적 행동 반응이 된다. 잠재된 감정에 따라 신체가 느끼는 외세적, 내세적 감상 파장이 다르고 이해력의 강약으로 통과되는 동안 지각신경의 작용이 전신 체에 만족감을 세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 동적 정적 행위를 표출한 것이 차시문학을 접하는 행위의 기쁨이라 하겠다,

동적 행위를 쉽게 표현하면 춤추는 행위, 노래하는 행위. 미칠 정도의 감정이고 정적으로 눈물이 흐른다, 배고프다, 짜증난다, 좋다, 황홀하다등 감상적 판단의 격차가 생기는 것은 신체 요구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치고 차시문학의 이해에 따라 생기는 차이다. 그래서 간혹 시인들이 시의 진 맛은 낭송에 있다하거나 시 비평가들이 강조하는 것보다 월등한 이해의 차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차시는 차()와 시() 문학(文學)이 자가 발전기로 얻어진 시상의 특징으로 생기는 차시삼매(茶詩三昧)에 빠지게 된다는 헌묘적인 상용을 경험하게 될 때 깨침에 접근하게 되는 매개가 차와 禪詩가 모두 차시문학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2) 차시문학에 대한 감응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왜 알코올 함량에 따라 마시게 될까? 술은 누구나 취하는 재미로 마신다. 알코올 도수에 따라 취하는 반응이 다르고 애롱한 정신적 만족감과 행복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술은 기호식품으로 많이 마시는 사람일수록 정신의 혼미 상태를 더 요구하기 때문이며, 그 혼미한 이해력이 시의 이해와 감상의 바탕을 만들어 낸 원기소이다.

중국의 유명시인 두보의 시는 술맛을 느끼지 못하면 두보 시를 수백 번을 읽어도 시의 진 맛을 못 느낀다. 간혹 두보 시평 내용을 읽게 될 때 멍탕 맛이다.

두보는 술 한말을 먹고는 갈 수 있었으나 지고는 못 갔다할 만큼 술과 시에 얼른 진 맛을 못 느낄 때 두보(杜甫)의 시를 이해 못하게 된다.

차는 술()처럼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또 그냥 마시는 것도 아니다. 여유를 가져야 되고 행위의 기초과정을 거처 체득해야 된다. 창작되는 차시문학은 차란 존재물 자체가 일정한 과정을 거처야 생산되고 차를 끓이고 간을 맞추어 우려내어 마시게 된다. 또 마시고 난 이후 뇌를 거치는 과정과 차시어의 창작을 발동시키는 차()는 코, , 목구멍을 통과하는 삼각 반응의 자극이 다섯 가지의 맛, 향기, 음료의 반응에 따라 좌우된다.

일정한 감정과 반응을 거친 신체에 전달되면 자율신경계의 작용과 판단으로 자극에 따라 차로서 느끼는 성분의 작용이 유형. 무형으로 가진 특징을 잘 표현하어 통일된 자극이 최상화 될 경우 자율신경과 차의 성분 중화로 결합한 반응이 사람의 뇌에 전담하여 미치는 감정적 감각신경을 흥분시키므로 차시를 창작할 효소물이 다량 분비될 때 언어의 발산에 의하여 감정과 이해한 행위가 정확히 정리되어 언어의 생산과정이 일어난다. 일반적인 문학적 분과에 속할 때는 시, 소설, 희곡, 수필, 시조, 논설 등 세분하여 다르게 생산된다. 그러나 차시의 경우 일반 시같이 분출하는 것 아니다. 차와 시의 작용이 문학으로 정리하는 감정 하나로 분출시킨다. 다음 시조는 <서러운 밤>이란 같은 시제로 시인과 차시 인이 쓴 시조 내용을 비교하여 보았다.

 

기다림 / 다른 말은/ 그리 운이 아닐는지

마음을 / 접지 못해 / 흔들리는 하는 본다.

가슴에 / 꿈을 묻으면 / 달도 크게 뜨는가.

- 이헌 시인의 서러운 밤’ -

 

작설차 / 끓는 소리 / 임 그리움 달래주며

한잔에 / 향을 마셔 / 애탄 마음 식어주네

또 한 잔 / 좋은 차 맛에 / 달 보며 웃음지네

- 녹동 시인의 서러운 밤’ -

 

이헌. 녹동 두 분이 쓴 시조를 비교해 보는데 시조시인 이헌과 차조시인 녹동이 같은 <서러운 밤>이란 시제를 쓴 단시조 내용에 이해력을 높이고자 음미할 때, <서러운 밤>을 차를 병용하여 이해할 때와 그냥 시조로 이해할 때를 비교해 보았다.

시조 인이 쓴 시조 내용은 개인의 개성이 첨가되어 작품에 표현되었으나 차시조인 쓴 차 시조는 시조의 발의부터 차란 매개를 거처야 했고 또 소화된 찻물의 영향이 시조 창작에 느끼는 생각, 마음을 일으키는 차, 시조로서 창출되는 과정부터 차이를 보였다.

차란 실물 이미지에 의지하여 쓴 차 시조와 그냥 마음으로 얻어 쓴 시조가 느끼는 감정과 이해가 다른 격차를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같은 시인이라 하지라도 차를 마셔본 차 시인과 차를 아니 마신 시인 간에 생각과 표현이 다르게 느낀다.

차시는 정신, 의례, 헌다, 찻맛, 효능, 차나무 생태, 제조, 찻잔, , 물 등의 신비로운 감정의 느낌과 행위 감정 전체적 행위가 차시에 포함되어 표기할 수 있어야 차 시조가 된다. 또 새로운 언어가 창출할 가능이 존재함으로 간단한 문장이 곧 차시가 된다.

차를 마시는 사찰 선방의 경우 참선, 독선 각에 수행과정이 생기고 그 곳에 생기는 언어를 선어(禪語)라 하며 여기서 쓴 시를 선시(禪詩)라 칭한다. 그러나 차와 병용될 경우를 차선(茶禪)이라 하며 차 생활에 흔하게 쓰이는 다선일미(茶禪一味)란 차와 선은 둘이 아니고 하나란 의미이다. 더 짧은 차시 문장을 화두(話頭)라 하며 화두를 순조로의 이해될 경우 불교용어로 해탈(解脫)이라 하겠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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