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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5/06/20 11:39:15  이한규
서동석 박사의 AI시대 생활불교수행(17)
보편적 도리로 수행도량을 혁신하자

우리는 성인(聖人)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있지만, 사실 당대에 그 말씀은 기존의 세상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공자와 노자는 역(易)의 원리에 기초해서 왕권 중심의 세상이 영원불멸하지 않다는 사실과 생명의 역동적 질서를 일깨웠다. 예수는 기존 종교의 도그마를 깨부수고, 진리에 입각한 삶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말씀했다. 석가모니는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의 평등성과 완전성을 설파했다.

 

성인의 말씀 속에는 시대, 공간, 인종, 문화, 종교 등 모든 경계를 초월한 보편 정신이 있다. 보편 정신은 진리의 숨결로서 인류에게 바른 정신과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일체의 언어적 관념과 물질적 한계를 넘는 궁극적인 진리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사상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모든 인류를 아우르는 보편적 도리를 일상에서 찾기는 힘들다. 그 이유를 성찰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보자.

 

위계적 질서에 갇힌 사람들에게 성인의 보편 정신은 급진적인 개혁 사상이나 다름이 없다. 역사적으로 위정자들은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보편적 도리를 무시했다. 하지만 보편성이 없는 권력은 예외 없이 혼란을 초래하고,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행태가 AI시대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문명정보가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보편 정신의 결여는 인류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종교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의 종교는 신앙의 형식만 고상할 뿐, 기복종교(祈福宗敎)라는 점에서 무속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나는 무속을 폄하하지 않는다. 다만 종교와 무속은 길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무속이 일시적인 삶의 위안을 준다면, 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를 억압하는 일체의 구속을 해소하는 데 의의가 있다. 신앙의 형식을 통해 보편적 진리에 이르게 하는 역할이 종교의 본질적 기능이다. 따라서 종교의 형식은 진리를 매개할 때,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삶의 가치체계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는 문명의 전환기에는, 종교의 본질과 형식의 괴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대전환의 변화 이치를 역이용해서 종교의 형식을 일대 혁신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비록 모든 양식과 가치체계가 새롭게 전환될지라도, 생명 존재의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편적 도리를 중심에 두고, AI시대에 맞게 종교의 형식을 새롭게 조율해야겠다.

 

무지몽매한 시대에는 성인을 신앙의 대상으로 내세워, 일반 대중을 계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웬만한 지식은 AI가 일반인보다 월등하다. 앞으로 AI가 다루는 전문적인 지식의 영역은 더욱 확대되고, 그 심도도 더 깊어질 것이다. 인간의 잠재력을 무한히 개발할 수 있는 시대에는, 성인을 숭배의 대상보다는 완전한 삶의 모델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인이 말씀한 보편적 도리에 맞게 삶을 살면, 욕망에서 비롯된 일체의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론 그때도 신앙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부조리한 맹신이 아니라, 성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신앙이 될 때, 자유로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

 

문명대전환이 본격화되면 앞으로 직장을 잃거나, 이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이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점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다. 불안한 심리는 사회의 질서를 왜곡하는 근본 원인이 되므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은 무아(無我)의 수행법으로 무상(無常)의 지혜를 얻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일체의 언어 관념과 형식을 초극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두운 미로에 빠진 우리에게 밝은 횃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산업사회가 새롭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세대, 계층 간의 갈등이 크게 야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산업화의 선봉에 서서 도시화를 촉진했던 현재의 노인세대가 겪는 심리적 불안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존재감과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심화하고 있는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본래 땅에서 나와서 땅으로 돌아가는 인간 존재의 실상을 고려한다면, 전원의 삶이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이 점에서, 전국의 명산대찰은 생태적 삶을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또한, 수행공간으로서 절은 문명대전환에 상응하는 정신혁명의 도량역할을 하기에 적당하다. 사찰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생 후반기에 전원 지역에서 정신수양에 매진한다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행복한 노후를 누리면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정신혁명의 도량으로서 사찰은 지도자 교육 장소로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출가와 재가를 포함한 수행도량 자체의 지도자 교육이 중요하다. 나는 앞선 칼럼들에서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한편, 사회적 의무로서 절은 AI시대를 이끌 각 영역의 지도자 정신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특히 기업의 CEO 마음교육을 통해, 기업인에게 널리 사회를 이롭게 할 정신력을 갖추게 할 수 있다.

 

사회지도자의 정신교육은 미래세대의 지도자 자질함양과 현직의 지도자 도덕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는 수행을 활용한 인간교육이 선결 조건이 된다. 무엇보다 지도자 정신교육에는 일정 기간 절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을 철저하게 객관화하는 과정이 도움이 된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객관적 시각을 함양하면, 각자의 영역에서 특정 이익에 편향되지 않는 보편 정신을 기를 수 있다.

 

물론 지도자 정신교육에서 말하는 보편성은 절대적 보편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리의 보편성과 현상의 보편성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문명의 변화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시대에서, 현상의 일반이론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도 산문 〈원(Circles)〉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내일이면 뒤집히지 않을 과학의 성과는 없다. 교정되지 않고 비난받지 않는 문학적 평판, 소위 영원한 명성은 결코 없다. 인간의 진실한 희망들, 그의 가슴속의 사상들, 모든 나라의 종교, 인류의 풍속과 도덕은 모두 새로운 일반론에 좌우된다.”

 

사찰은 현상의 세상과 진리의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수행도량으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사찰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형식적 신앙이 아닌, 진리를 추구하는 대자유의 정신으로, 한국의 불교가 대개혁에 나서길 희망한다. 이제는 스님도 다양한 분야의 특별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로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이 부분에서는 일본과 대만 등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에는 스님 출신의 학자들이 많고, 대만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스님들이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 불교도 더욱 전문적인 연구와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침으로써, 수행도량을 보다 전문화하고, 그 영역을 다양화해야겠다.

 

혁신적인 과정을 통해 절의 재정을 독립적으로 확보하는 토대도 마련할 수 있다. 지금처럼 재가(在家) 신도의 보시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제로는 미래사회의 변화에 자주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 이제 절은 보시를 받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보시를 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사찰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시는 수행공간과 더불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본원적 지혜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AI를 상대할 인간의 정신 능력 개발이 앞으로 절의 가장 큰 수익사업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내가 천도재 대신에 작복불사(作福佛事)를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모든 것을 한꺼번에 혁신할 수는 없다. 특별한 절이나 수행집단을 선택해서 시범사업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보편적 수행문화를 실험하면서, 절과 지역의 특성에 맞게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보편적 진리에 합당한 통일성과 현상적 특성에 맞는 다양성이 잘 융합될 때, 개별 사찰이 수행도량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또한, AI시대에 불교가 미래종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정신문화를 제공해야 한다. 불교는 불교의 설법에 있지 않고, 진리의 보편성에 있다는 사실은 부처님이 분명하게 천명했다. 불교의 스펙트럼을 무한히 넓혀, 만법(萬法)이 불법(佛法)이라는 이치를 밝혀야겠다. 다행한 점은 첨단과학이 발전할수록 불교가 단순히 신앙의 종교가 아닌, 일반과학과 초과학을 넘나드는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진리의 종교라는 실상이 밝혀지고 있다. 앞으로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불교의 심오한 이치를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반야심경》은 모든 물리학자가 항시 마음에 새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우주 만물의 실체에 관해 어떤 물리학 교과서보다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우리는 육체를 지닌 존재로서 생명작용은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므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반야심경에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는 이치가 들어있다. 감각과 심리에서 유발되는 모든 공포에서 벗어날 때,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 상태에서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할 수 있는 심안(心眼)을 지니게 되고, 스스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대자재(大自在)의 지혜가 발현된다. 이 놀라운 도리를 체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상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서 초과학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승가의 체제를 대대적으로 혁신해서, 사찰이 진정한 수행도량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사부대중을 아우르는 승가(僧伽)의 본래 의미에 맞게,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경계를 허무는 출출세간(出出世間)의 보편적 수행 풍토를 조성할 때다.

*수행문화, 인간교육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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