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에서 AI 시대 이상적 인간형으로 제시한 율랑(律朗)의 일차 목표는 현상의 조화로운 조율이다. 하지만 일상과 분리된 단편적 수행방식으로는 역동적인 생명의 조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역(易)이 반복해서 예시하듯이, 생명작용은 음양(陰陽)의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조화로운 삶을 회복하고 영원한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체 경계를 허무는 불굴의 의지와 걸림 없는 지혜가 필요하다.
통섭의 측면에서, 나는 유불도를 통섭한 최치원을 자율수행의 모델로 삼고 있다. 최치원은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를 관통한 도리가 단군의 수행 경전인 천부삼경(天符三經)의 이치와 다르지 않음을 간파했다. 최치원의 회통적 종교관에는 기독교의 주된 원리인 믿음의 도리도 녹아 있다. 몸, 마음, 삶, 그리고 믿음을 하나로 융합한 최치원의 통합적 수행체계는 동서양이 하나로 융합하는 시대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특히 업장(業障)의 근본 원인인 의식의 굴레를 벗어나는 데는 끊임없는 통섭적 소통이 중요하다.
한편 생명작용에는 조화와 투쟁이 동시다발로 일어난다. 화쟁(和爭)의 이율배반은 생명현상의 특성이다. 양극의 조율이 수행의 영원한 과제다. 화쟁의 모순을 소통하지 못한 수행은 반쪽에 불과하다. 우리의 수행전통에서 석가모니의 ‘으뜸의 가르침(宗敎)’을 화(和)와 쟁(爭)의 양면에서 중도로 관통한 대표적인 인물은 해동보살로 불리는 원효다. 번뇌가 들끓는 인간 세상에서 열반과 자비를 동시에 구현한 점에서, 원효는 진정한 율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엄성 확보를 위해 삶과 수행의 융합은 불가피하다.
현상과 본질의 양면성은 양자물리학에서 입증하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주역은 양자물리학을 태동시킨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시대변화의 연기적 상황에 맞게 나는 공자가 해설한 주역을 현상과 본질 양면에서 실용적으로 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천지인(天地人), 즉 시간을 대표하는 하늘과 공간을 대표하는 땅, 그리고 생명을 대표하는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변화하는 도리를 표현한 주역에는 음양의 화쟁이 동시에 있지만, 결론은 줄곧 정신적 깨달음을 향한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깨달음의 길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하다. 개인과 사회 양측에서 무수한 업연(業緣)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의 삶에서 화엄세계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편 도리에 입각한 자율수행의 확장이 필요하다. 교육,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의 인재교육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적 역량 강화와 더불어 보편 도리에 맞는 삶의 총체적 자율성이 조화될 때, AI의 악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개인의 독특한 생명력과 공동체의 규범 사이에는 간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유와 구속의 모순은 인간의 한계이자,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류는 언제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자율수행의 대승적 회통을 통해 보편적 수행체계를 정립하고, 우리 모두 율랑으로 거듭날 때다.
《AI 시대의 생존전략, 수행》의 보편 도리 함양(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