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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09/18 13:41:33  이한규
배길몽 작가의 상식 뒤집기(58)
58. 중도와 중관은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은 과학을 잘 모르므로 불교 이론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불교 이론들 중에서 중도와 중관의 차이에 대해서 과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중도와 중관의 차이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 먼저 불교의 근본 법칙인 연기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연기는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기본 법칙이다. 우주의 모든 변화에는 이웃하는 존재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하는데, 이때 당사자 외에 아무도 제3자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3자란 신이나 영혼은 물론 자아도 포함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아라는 별개의 존재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분석해보면 그렇지 않다. 주변의 환경 조건이 나에게 작용하면 뇌신경이 반작용을 일으키고 그 결과가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날 뿐이다. 쉽게 설명하면, 로봇이 주변 환경을 분석해서 행동하는 방식과 같으며 거기에 자아는 개입하지 않는다.

 

로봇은 자아가 없고 오직 정교한 프로그램만이 내재해 있다. 인간의 작동도 그와 같으며, 컴퓨터가 자신이 가진 자료에 의해서 분석하듯이 인간도 자신이 가진 자료(지식과 경험)에 의해서 분석하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한다. 그래서 축적된 자료가 없는 새 컴퓨터나 유아는 적절한 판단이나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똑같은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생각이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판사와 검사의 판단이 다르고, 원고와 피고의 생각이 다르고, 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다른 이유는, 그들의 뇌 속에 축적된 자료가 다르고 따라서 분석도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변에서 인식할 수 있는 우주의 상태는 크게 두 가지 즉 색과 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아주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입자들이 모여서 땅위에 있으면 그것을 색이라 하고 흩어져서 공중으로 날아가면 공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공과 색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며, 세포나 분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생명이나 물체는 색이고, 그 세포나 분자가 분해되어 흩어지면 공이 된다. 색과 공은 물론 생과 사도 상태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우주에는 진정한 탄생과 사망은 없으며 무아의 상태에서 오직 연기 법칙에 의한 무상의 변화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연기, 무아, 무상은 같은 현상을 표현하는 다른 단어에 불과하며 색과 공도 같은 존재를 표현하는 다른 단어에 불과하다.

 

현대 물리학 중에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이 있는데, 우주는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입자가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으므로 무언가가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생성이나 소멸이 되려면 그보다 더 작은 존재로 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는 기존에 있는 것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순환(윤회)할뿐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하는 것은 없다.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던 유명한 교수가 중관사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영상을 필자가 본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이론의 설명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어 그분을 한 번 만나 뵙고 토론을 해보려고 하였으나 갑자기 입적하셨다는 뉴스를 접해서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불교에 관한 책을 저술한 유명한 스님께서, 자신이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을 분별하므로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며 그것이 중도라고 주장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불교 교리에 의해서 살펴보면, 무아의 상태에서 무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의 육체 덩어리가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 어찌 우주의 중심이란 말인가?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주장은, 욕심을 버리고(나를 내려놓고) 자비를 베풀면서(나를 희생하며) 모두와 상생하라는(나를 중심에 두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중도와 중관은 매우 다르다. 필자가 불교 문헌을 깊이 있게 전문적으로 연구해본 것은 아니지만, 불교에서 해탈을 얻기 위한 방법론으로 팔정도를 주장하고 그 실천을 위해서 중도를 제시했는데, 이 중도에 공의 개념을 첨가한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후학들이 중론을 다시 좀 더 학문적으로 정립하려고 시도한 것이 중관학인데, 이들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조금 위험한 방식으로 변화했다. 필자가 동영상에서 본 동국대 교수가 설명하는 중관학은, 양자역학처럼 어떤 가치가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이론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철수는 크다’라는 단정적인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철수는 더 큰사람보다는 작고 더 작은 사람보다는 크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런 말은 모순에 빠져 있다. 크기를 표현할 때는 반드시 비교할 상대를 지적하든지 아니면 명확한 수치를 가지고 표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철수는 영희보다 크다’ 혹은 ‘철수의 키는 180Cm이다’라고 표현하면 말에 모순이 안 생긴다. 그 교수는 스스로 ‘철수는 크다’라는 모순된 표현을 해놓고 그런 단정적인 표현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명제가 참이면, 그와 반대되는 명제인 ‘예외 없는 규칙도 있다’라는 명제도 참이 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명제는 자기 자신에게도 성립돼야하므로,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명제의 예외도 역시 성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의 예외는 ‘예외 없는 규칙도 있다’라는 것이고, 따라서 ‘예외 없는 규칙도 있다’라는 명제도 참이 된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떤 명제가 성립되면 그 반대의 명제도 함께 성립되므로 어떤 것을 확정하면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매우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오류가 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므로, 오류가 있는 명제를 바탕으로 추론해낸 다른 명제도 당연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주에는 예외 없는 규칙도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규칙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인간이 만든 규칙은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규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에 예외가 없는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규칙이라기보다는 진리라고 해야 옳다. 그러므로 진리는 ‘예외가 없는 규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연기와 무아처럼 예외가 없는 규칙도 있는데 그 교수가 ‘예외가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것을 참이라고 가정한 것 자체가 오류다. 그 교수의 논리는, 참이 아닌 것을 참이라고 가정하고 그로부터 추출한 논리이므로 스스로 논리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중관은, 만물이 무상하게 변하는 과정에서 고정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공으로 귀결된다는 관념인데, 이것은 무(없음)와 공(있음)을 유사한 것으로 혼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치가 항상 변하지만 모든 순간의 가치는 언제나 존재하며 귀중하다. 그래서 현재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는 현명한 방법이 바로 중도다. 팔정도는 옳지만 실현이 불가능하고, 중관은 현재의 가치를 무시하는 잘못된 관념이다. 중관사상에 심취하면, 모든 것은 가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므로, 수행에 나태해지거나 허무주의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 ‘지금 여기’의 가치를 귀중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현명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도이며, 이 중도가 바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상생하는 자비의 실현 방식이다.

 

배길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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