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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10/26 10:54:13  이한규
배길몽 작가의 상식뒤집기(59회)
59. 해탈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가?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해탈이다. 그런데 해탈의 방법을 논하려면 먼저 해탈이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의 답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 만약에 해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은 해탈을 얻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해탈의 존재 여부를 논하기 전에 먼저 해탈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해탈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해탈의 존재 여부를 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탈은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며 결국 윤회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말로 윤회는 존재할까? 그리고 노력하면 윤회를 자의로 끝낼 수 있을까? 그런데 윤회와 해탈을 논하기 전에 윤회를 하는 주체(영혼, 자아, 업보 등)가 없다면 윤회나 해탈을 논할 필요조차도 없다.

 

해탈을 논하려면 먼저 윤회라는 시스템과 윤회하는 존재에 대해서 먼저 논해야 하지만 이번 연재에서는 일단 그런 것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윤회에서 벗어나서 해탈을 성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다. 윤회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하려면, 부처님께서 대답하지 않은 14무기의 정답도 함께 설명해야 하고, 그러려면 우주의 작동 원리를 포함해서 많은 과학적 지식과 종교적 성찰이 함께 동원되면서 매우 장황하게 이야기해야 하므로 추후에 기회가 되면 논해보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14무기의 답을 모르면서 윤회 시스 윤회의 존재 유무를 논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작동 원리도 모르는 사람이 단순히 자신의 감각으로 인식한 경험만 가지고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다.

 

윤회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 윤회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윤회라는 시스템의 해체이고, 둘째는 윤회라는 시스템으로부터 탈출이다.

 

첫째, 윤회라는 시스템의 해체가 가능한가에 대해서 논해보자. 우주의 기본 법칙은, 생성된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해석하면 생성되지 않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말하면, 우주에는 중간에 아무것도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과학인 양자 역학이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필자가 지난 연재에서 설명했다. 윤회 시스템도 우주의 시작부터 존재했다면 소멸할 수 없고 중간에 생성 혹은 시작됐다면 굳이 인간이 해탈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소멸한다. 그리고 우주의 시작부터가 아니라 중간에서 생성된 것은 진정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며 인식할 수 없는 상태(공)에서 인식할 수 있는 상태(색)로 변한 것일 뿐 결코 새로 생성된 것이 아니다. 윤회라는 시스템도 존재한다면 중간에 시작할 수 없고 따라서 다시 중간에 소멸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윤회라는 시스템이 소멸할 수는 없고 각자가 노력해서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둘째, 윤회라는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그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것에 대해서 논해보자. 윤회라는 시스템을 둔 채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윤회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로 내 자신이 소멸한다.

2. 윤회 시스템이 없는 우주 밖으로 탈출한다.

 

1번의 방법처럼 현실적으로 내가 나(영혼, 자아, 업장 포함)를 자의적으로 소멸하는 방법이 불가능하겠지만 설혹 소멸이 기능하고 그렇게 소멸해서 해탈이 된다면 해탈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해탈해서 만족할 사람은 딱 한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 음식의 맛을 모르고, 가족이나 연인을 포함해서 만물을 가까이 상대하는 것도 귀찮고, 멀리 보이는 풍경마저 보기 싫은 사람은 자신을 소멸해서 윤회를 해탈하는 것이 소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소멸시키는 현실적인 방법은 자살 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도 겨우 육신만 소멸할 뿐 나의 흔적(업장)은 소멸되지 않는다.

 

그리고 2번은, 내가 소멸은 안 하지만 윤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우주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주 안에는 어떤 형태로든 인연이 존재하고 결국 인연에 엮일 수밖에 없어서 우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종교다. 그래서 출가할 때 속가와 인연을 끊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삭발도 한다. 삭발은 정신을 집중해서 수행을 잘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먼저 과거의 인연들을 끊어내기 위한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머리가 길면 머리를 관리하기 위해서 에너지와 시간이 무의미하게 많이 소모되기도 하지만 머리카락 자체가 잡념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인연은 다시 만들어지기 마련이며 심지어 절 안에서도 수많은 인연이 다시 생긴다. 그런데 설혹 모든 인연을 끊고 우주 밖으로 나가서 해탈한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우주로 돌아오지 못하는 해탈이 과연 행복일까?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을 방법도 없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딴 세상에서 지내면 그것이 행복일까?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왜 굳이 해탈을 얻기 위해서 엄청난 고행을 해야 하는 걸까?

 

불교에 귀의하는 근본 이유는 해탈이고, 열반적정에 이르면 해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업이 많이 쌓여 있는데 갑자기 어떤 경지에 이른다고 해탈한다면, 죄가 있어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와 같아지는 모순이 생긴다. 그래서 업장을 소멸해야 해탈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업장은 악업과 선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연과 함께 만들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선과 악의 구분은 없다. 누구에게 선이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된다. 일본군을 많이 죽인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한 선업을 쌓은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많이 죽인 악업을 쌓은 것인가? 내가 진급하면 다른 사람이 탈락한다. 내가 건강하면 의사가 굶는다. 인간 전체가 이익을 보면 자연이 피해를 본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선과 악의 분별은 없으며 결국 선과 악은 인간의 편견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기가 먹은 음식들도 모두 생명체였기 때문에 그들과 업이 쌓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스님들은 해탈하려고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했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모두 업인데 업장 소멸이 가능한 것일까?

 

부처님이 해탈했다면 모든 인연이 작동하지 않는 우주 밖의 어디에서 혼자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소멸되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어느 것이라도 그런 해탈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필자의 분석으로는, 윤회가 있다면 그 시스템을 없앨 수도 없고, 거기에서 탈출할 수도 없다. 그리고 윤회하는 주체(영혼, 자아, 업장 등)가 정말로 있다면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소멸시킬 수도 없다. 일부 불자들은 불교의 기본 교리가 무아인데 도대체 무엇이 윤회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그래서 어떤 불교 학자들은 자아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업장 자체가 윤회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윤회를 하던 상관없이 필자의 의견은, ‘윤회가 있다면, 윤회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와 생로병사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다.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 아니라 윤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해탈이다.


배길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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