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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2/06/13 08:29:45  편집국
김홍배 박사의 만다라 이야기(20)
금강계만다라의 미세회(微細會)

미세회는 금강계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 중에서 하단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한 삼매야회의 옆이다. 미세회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불보살의 존상(尊像)이 삼고저(三鈷杵) 안에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마치 불보살이 삼고저를 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삼고저(三鈷杵)는 금강저(金剛杵)라고 하는 밀교의 수행도구 가운데 하나로서 짧은 창의 양 끝에 세 개의 칼날 송곳이 나 있는 무기다. 창끝이 하나로 되어 있으면 이를 독고저(獨鈷杵)라 하고, 셋으로 되어 있으면 삼고저(三鈷杵), 다섯 개이면 오고저(五鈷杵)라고 한다. 또 삼고저(三鈷杵)를 십자형(十字形)로 엮은 것이 있는데, 이를 갈마금강저(羯磨金剛杵)라 한다.

금강저는 밀교에서 교리와 수행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독고저는 진여(眞如)를 나타내고, 삼고저는 삼밀(三密)과 삼신(三身)을 의미하며, 오고저는 오지(五智)와 오불(五佛)을 상징한다. 특히 오고저(五鈷杵)의 양끝을 모두 합하여 십바라밀(十波羅蜜)을 나타낸다. 이를 갈마금강저라고 하는데, 이 십자형(十字形)의 갈마저(羯磨杵)는 교화 사업(事業)의 성취를 의미한다.

원래 금강저는 고대 인도에서 무기로 쓰였는데, 이것이 밀교에 유입되면서 수행자의 도구로 변용되었다. 금강저는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바즈라 바라(Vajra-vara)라고 하는데, 단단하고 견고한 것을 깨뜨려 부수는 것으로, 밀교에서 수행방편으로 쓰였다. 즉 깊은 신심과 불퇴전의 용맹심을 나타내며 번뇌 망상을 최파(摧破)하는 보살심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금강저는 대개 철()이나 동()으로 만들어진다.

 

미세회(微細會)의 명칭은 금강미세만다라(金剛微細曼茶羅)’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미세회는 성신회(成身會)나 삼매야회(三昧耶會)와 마찬가지로 모두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37()이 그려져 있으며 다같이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단지 불보살의 존상(尊像)이 성신회(成身會)와 같은 존상으로 되어 있지만, 특이한 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세회의 존상들이 모두 삼고저(三鈷杵) 속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왜 미세회의 존상은 다른 만다라와 달리 삼고저(三鈷杵) 속에 그려졌으며, 또 미세회(微細會)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근거했던 것일까?

그 근거는금강정경(金剛頂經)금강지법만다라광대의궤분(金剛智法曼茶羅廣大儀軌分)에 근거한 것으로, ‘삼고저 속에 존상을 그린다는 내용에 따른 것이다. 또 미세회라는 명칭은 금강미세만다라(金剛微細曼茶羅)’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세회(微細會)는 비로자나불의 지혜가 미묘하고 미세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금강미세(金剛微細)는 비로자나불의 지혜가 금강과 같이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으므로 불괴(不壞)의 뜻이며, 그 지혜가 미묘하고 세밀하다 하여 미세(微細)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로자나불의 지혜가 미묘 미세하다는 것을 삼고저(三鈷杵)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곳도 미세하게 두루 모두 다 볼 수 있으므로 금강미세(金剛微細)라 한 것이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의 지혜는 광명변조(光明遍照), 제암변명(除暗遍明), 능성중무(能成衆務), 광무생멸(光無生滅)이라고 설명한다.

광명변조(光明遍照)광명이 두루 비춘다는 것이고, 제암변명(除暗遍明)어둠을 걷어내고 밝음을 편다는 뜻이며, 능성중무(能成衆務)능히 모든 일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며, 광무생멸(光無生滅)빛이 생하고 멸함이 없다는 것으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로자나부처님을 본불생(本不生)이라 부른다. 이는 본래부터 불생(不生)이오 불멸(不滅)’이라는 말이다. 본래불생불멸(本來不生不滅)을 줄여 본불생(本不生)이라 한다.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진리의 부처님이다.

금강정경에서는 지혜의 표치(標幟)인 금강저를 코끝에 두고 이를 관상(觀想)하며, 금강지(金剛智) 그 자체에 오로지 마음을 몰두하여 삼매에 든다고 설하며, 이를 미세회(微細會)의 만다라(曼茶羅)라고 설명한다.

금강저 가운데 특히 삼고저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불부(佛部)연화부(蓮華部)금강부(金剛部)의 삼부(三部)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도 하고, 다른 이유로 신구의(身口意) 삼밀(三密)을 삼고저에 비유한 것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삼고저 안에 그려진 37()은 모두 비로자나불의 금강지(金剛智) 안에 있으며, 모두가 삼매에 들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37존의 진언(眞言)을 외우고 인계(印契)를 결()함으로써 불신(佛身)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한다. 의식(儀式)과 의궤(儀軌)의 측면에서 삼밀을 의미하는 바요, 생활과 수행적인 측면에서 타인과의 화합(和合)과 조화(調和)’를 강조하고 있다. <다음호에서는 공양회(供養會)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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