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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2/12/30 05:35:22  편집국
김홍배 박사의 만다라 이야기(25)
금강계만다라의 항삼세회(降三世會)



항삼세회(降三世羯磨會)는 금강계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 중에서 오른쪽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던 이취회(理趣會一)의 아래쪽에 해당한다. 항삼세회는 그림에서 보듯이 성신회나 기타 회(會)와 마찬가지로 37존 형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취회(理趣會)와 그 이전의 만다라(曼茶羅)가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있다면, 이번에 살펴 볼 항삼세만다라에서는 ‘분노(忿怒)’로써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제존(諸尊)이 분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며, 그 방편으로써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자비를 바탕으로 한 분노이며, 중생들의 세속적인 분노와는 차원이 다르다. 즉 분노의 내면에 따뜻한 자비심이 담겨 있고, 분노의 활동은 오로지 중생의 번뇌를 깨뜨리는 데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항삼세(降三世)라는 말은 삼세(三世)를 항복시킨다는 뜻으로, 자비와 지혜를 일으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먼저 번뇌를 없애야 하는데, 이를 항삼세(降三世)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항삼세만다라(降三世曼茶羅)는 번뇌의 주체인 중생이 미혹과 번뇌를 떨쳐 버리고 법신 대일여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항삼세의 삼세(三世)는 과거․현재․미래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삼독심을 없앰으로써 번뇌망상과 고(苦)가 여의게 되고, 이로써 자비와 지혜를 얻어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중생에서 부처로 가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의궤화(儀軌化), 도상화(圖像化)한 것이 항삼세만다라이다.
항삼세는 금강살타가 분노하는 항삼세명왕의 형상으로 대치되어 등장하기 때문에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기존의 만다라에서는 금강살타가 등장하지만 항삼세만다라는 항삼세명왕이 대치되어 등장한다는 점이 이 만다라의 특징이다. 즉 비로자나불의 제1보살인 금강살타가 평범한 방법과 수단으로는 포악한 중생을 교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서운 분노존(忿怒尊)의 항삼세명왕으로 대치되어 중생을 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존의 항삼세명왕은 항상 팔짱을 끼고 화를 내고 있다. 팔짱을 교차한 모습은 분노형(忿怒形)의 기본적인 형상이다.
항삼세만다라(降三世曼茶羅)라는 명칭이 붙게 된 또다른 이유는『비장기(秘藏記)』의 명칭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금강정경』에는 이 만다라를 삼계최승대만다라(三界最勝大曼茶羅)라 하였지만,『비장기』에서는 이를 항삼세만다라(降三世曼茶羅)라 하였는데, 이 명칭에 따라 현도만다라(現圖曼茶羅)에서는 항삼세만다라(降三世曼茶羅)라 이름을 붙였다.
『금강정경』에서 삼계최승대만다라(三界最勝大曼茶羅)는 삼계(三界)에서 가장 뛰어난 대만다라(大曼茶羅)라는 뜻이며, 대만다라는 비로자나불을 위시하여 일체제존(一切諸尊)이 등장하므로, 대(大)자를 붙여 대만다라(大曼茶羅)라 한 것이다. 또한 불보살 등 제존(諸尊)을 불상(佛像)과 같이 형상(形像)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에 대만다라(大曼茶羅)라고도 한다.
삼계(三界)는 흔히 욕계․색계․무색계를 말하는데, 이 삼계(三界)의 주재자(主宰者)인 대자재천(大自在天)을 항복시키고 있으므로 항삼세(降三世)라고 하고, 또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삼세(三世)와 마찬가지로 탐․진․치 삼독심을 없앤다는 의미로서 항삼세(降三世)라고도 한다. 삼세(三世)와 삼계(三界)는 탐진치의 삼독심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같은 말로 쓰이고 있다.
항삼세명왕이 항복시키고자 하는 대상은 삼계(三界)의 주재자인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그의 비(妃)인 오마(烏摩)이다. 항복시키기 위해서 항삼세명왕은 손발로 이들을 짓밟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대자재천(大自在天)은 두 손으로, 오마(烏摩)는 오른발로 짓밟고 있다.
『금강정경』에 따르면, 대자재천(大自在天)을 위시한 여러 신들이 모두 포악하여 좀처럼 불법(佛法)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금강살타가 항삼세명왕의 분노하는 모습으로 신들을 상대하였는데, 그 가운데 특히 대자재천은 스스로 삼계(三界)의 주재신(主宰神)이라 여기며 항삼세명왕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삼세명왕은 분노상(忿怒相)을 하고 ‘훔(吽)’이라는 조복(調伏)의 진언을 외웠는데 다른 신들은 땅에 쓰러지며 항삼세명왕에게 조복되었지만, 대자재천은 고통 속에 빠져 있기만 하고 조복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자재천은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비로자나불은 진정으로 대자재천을 구하기 위해서는 분노존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항삼세명왕에게 대자재천의 구원을 맡겼다. 그래서 항삼세명왕은 더욱 분노의 형상을 하고서 진언을 외웠는데, 그때 대자재천과 그의 비(妃) 오마(烏摩)가 땅에 쓰러지게 되었고, 이에 항삼세명왕이 이들을 짓밟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본 비로자나불께서 대자비(大慈悲)의 진언을 외우자 대자재천은 그제서야 불도(佛道)에 들게 되었고 해탈의 안락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금강살타가 분노형(忿怒形)의 항삼세명왕으로 대치되는 내용은『금강정경』에 나오는데, 비로자나불께서 일체여래(一切如來)의 대분노금강삼매(大忿怒金剛三昧)에 들어 슌바와 니슌바 형제의 진언을 외우자 금강살타와 일체여래가 모두 분노(忿怒)의 형상(形相)으로 나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항삼세만다라의 37존은 모두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슌바와 니슌바는 원래 인도의 설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대자재천의 왕비에게 살해되었는데, 밀교에서는 이를 수용하면서 반대로 역전(逆轉)시켜 등장시키고 있다. 즉 두 형제의 진언을 외움으로써 대자재천과 그의 비(妃)를 조복시키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바, 이들의 관계를 뒤집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살해된 두 형제를『금강정경』에 다시 증장시킴으로써 당시 지배적이었던 힌두교에 대한 불교의 심리를 역으로 분출시킨 것이라고 보고 있다. 즉 대승후기와 초기밀교에서 힌두교의 신들을 채용하면서 힌두교에서 상대적으로 수세에 놓여 있던 신들을 오히려 반대의 입장에 배치해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밀교의 의도적인 구상이라 보고 있다.
어쨌거나 대자재천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조복시킨 것은 비로자나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삼세명왕의 노력과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버릇없는 무명중생을 비로자나불께서 차마 후려칠 수가 없어서 다른 분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 그 분이 항상세명왕이다. 중생제도라는 대의(大義)에는 차이가 없는 것이다.
중생의 분별된 눈으로 항삼세명왕을 바라보면, 무섭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중생들을 위하여 궂은일을 하며 악역(惡役)을 자처하고 있는 분으로 여긴다면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에서는 명왕을 주존(主尊)으로 삼고 숭배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호에서는 마지막으로 항삼세삼매야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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