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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8/21 10:30:11  이한규
이송곤 박사의 ‘불교교육학’ 강좌(17)
인위(忍位) · 세제일위(世第一位) ·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無學) 등 수행단계(修行段階)의 인간형성(人間形成) 과정(過程)

인위(忍位)는 아래[]와 중간[] 단계에서는 정위(頂位)와 비슷하나 윗단계[]에서는 차제적으로 법념주만으로 수행이 이루어진다. 인위는 욕계(欲界)에 계박되어 있는 고()를 대상 경계로 하여 수행을 하게 되는데, 2 찰나(刹那)로 작의(作意; 마음을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하는 데 이르러서 중품(中品)의 인()이 되고[稱友에 의하면 중품의 인()의 단계는 119찰나인 경우도 있다고 설명하면서 꽤 많은 심찰나(心刹那)가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1 찰나(刹那)로 작의 할 때 상품(上品)의 인()이 된다. 이 상품의 인()의 단계는 4 선근(四善根)의 마지막 상위(上位) 단계인 세제일법(世第一法)과 비슷하다고 한다. 칭우는 구사론의 주소(註疏)에서 中品의 인()이 되는 것은 아견(我見)이 있는 유가행자가 세 가지 행상(行相)에 의해 욕계에 계박(繫縛)되어 있는 고()를 작의(作意)한 후, 그 다음에 비아(非我)와 공()의 두 가지 행상(行相)에 의해 욕계에 계박(繫縛)되어 있는 고()를 작의(作意)하고, 그 다음에 고법지인(苦法智忍) · 고법지(苦法智)와 비슷한 비아(非我)의 한가지 행상(行相)을 두 번 나타나게 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119 심찰나(心刹那)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칭우의 구사론 주소(註疏)에 의하면 상인(上忍)의 단계는 오직 1 찰나만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상인(上忍)을 수행하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비상(非常)의 행상(行相), ()의 행상(行相), ()의 행상(行相), 비아(非我)의 행상(行相)이 상응(相應)하기 때문이다.

 

인위 다음의 수행단계는 세제일위(世第一位)이다. 4선근(四善根)의 네 번째 단계로서 범부(凡夫)가 닦는 수행단계의 마지막 단계이다. 세제일위는 인위와 마찬가지로 욕계에 계박되어 있는 고성제를 소연(所緣 ; 인식의 대상)으로 하고 찰나의 특성이 있지만, 세상의 유루(有漏)의 모든 법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세제일법이라고 불려진다. 세제일법의 행상은 비상(非常) · () · () · 비아(非我)의 네 가지 행상(行相)을 닦는다. 왜냐하면 세제일법은 고제(苦諦)만을 소연(所緣)으로 하는 것이지, 다른 집제(集諦) 등의 행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제일위는 범부의 수행위 가운데 최상위이면서 성자위(聖者位)인 견도(見道)를 바라보고 있어서 성자위인 견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현장역 구사론에서는 이들 , , , 世第一法 等 4선근이 수승한 선근이므로 순결택분(順決擇分)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때 순결택분이라는 말에서 결()은 결단(決斷)을 일컬으며, ()은 간택(簡擇)을 일컫는다. 결단간택은 모든 성인(聖人)의 도()를 일컫는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성인의 도로써 의심[]을 끊기 때문에, 사성제의 상태를 분별하기 때문에 분()이 되는데, 이 분()은 분단(分段)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은 성도(聖道)를 따라 이익이 있으므로 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모두 순결택분(順決擇分)이라고 명명한다는 것이다.

 

以上에서 범부가 닦는 수행위인 난위, 정위, 인위, 세제일위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들 수행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 각각의 수행위를 직접 닦음으로써 체험을 해야 알 수 있는데, 필자는 그러한 경험의 밖에 있으므로 머리로나마 추론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이들 수행위의 인간형성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난위와 정위가 사성제에 대한 16 가지 행상을 닦음으로서 수행이 전개된다는 것에서이다. 즉 수행자가 고제(苦諦)를 무상(無常) · () · () · 비아(非我)4행상[四行相]에 의해 관()하는 것, 그리고 집제(集諦)를 인() · () · () · ()4행상에 의해 관()하는 것. 그리고 멸제(滅諦)를 멸() · () · () · ()4행상에 의해 관()하고, 그 다음에 도제(道諦)를 도() · () · () · ()4행상에 의해 관()하는 것 등 열여섯가지 행상, 16행상의 수행을 차제적으로 전개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전개되는 16 가지 행상의 서술만으로는 난위에서 세제일위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인간형성의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 4선근 수행의 과정에서 번뇌를 끊어가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어야만 인간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알 수 있는 것인데 아쉽게도 번뇌를 끊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이 4선근의 수행과정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역 구사론과 원전등에 의해 살펴보면, 난위와 정위는 퇴타(退墮)하기 때문에 하품(下品)이고, 인위와 세제일위는 퇴타하지 않기 때문에 각각 중품(中品)과 상품(上品)이 된다는 점에서, 또한 난위[煖善根]가 하() · (() 등의 품()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증장(增長)하여 수행의 성숙도가 꽉찬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정위[頂位 ; 頂法]가 되며, 또한 정위[頂善根]가 하() · (() 등의 품()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증장(增長)하여 수행의 성숙도가 꽉찬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인위[忍位 ; 忍法]가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4성제를 관()하는 16행상의 수행에 의해서 결정코 4성제의 진리를 분별分別하는 순결택분(順決擇分)4선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순차적인 수행과정과 성자도(聖者道)로서의 특성 등에 인간형성의 과정이 드러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순차적 수행과정의 특성과 성자도(聖者道)로서의 특성만으로 인간형성의 과정을 제대로 나타냈다고 말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구사론 번뇌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98번뇌를 소멸시켜 가는 과정과의 유기적인 관련속에서 이 4선근 수행의 인간형성의 과정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어딘가 치밀하지 못하고 개운하지 않고, 도식적이라고 4선근 수행의 서술에서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일까? 필자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4선근의 텍스트 내용에 이러한 것들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4 선근 가운데 인위(忍位)에서 수행자의 종성(種姓 ; gotra)이 결정된다고 한다. 수행자의 종성은 성문종성과 독각종성과 불종성 등이 있는데, 난위와 정위에서는 성문종성이 다른 종성으로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성문의 인[; 忍可]를 얻은 사람은 다른 종성으로 바뀌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불종성과 독각종성도 다른 종성으로 바뀌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위는 아직 성자위인 견도(見道)는 아니지만 수행자로서 인가를 받은 상태이므로 나름대로 인간형성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앞서 말한 세제일법도 성인이 되는 견도의 직전 단계, 즉 범부의 수행단계에서 최상, 최고의 단계이므로 인간형성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범부가 닦는 수행과정인 4선근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 살펴보는 수행위는 성인(聖人)의 단계인 견도위(見道位)와 수도위(修道位)와 무학위(無學位)이다. 견도위는 이전까지는 범부였다가 성자(聖者)가 되었다는 점에서 교육학적으로 상당한 의의가 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격을 지닌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88종의 번뇌[]가 끊어져서 예전과는 다른 위치인 성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견도위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견도위는 4성제[]를 보는 수행법이지만 세제일법의 수행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유가수행자는 세제일법으로부터 차제적인 수행과정을 밟게 되는데, 그에게 욕계(欲界)의 고성제(苦聖諦)를 대상[]으로 하는 인연으로 하여 무루의 특성을 갖는 법지인(法智忍)이 생기게 된다. 이것을 고법지인(苦法智忍)이라고 명명한다. 이것은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가는 것이라고도 명명하고, 또한 정성결정(正性決定)’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정성(正性)’이란 열반을 가리키는데, 탐욕[]이 마침내 끊어진 것이다. ‘이생離生이란 열반을 의미하는 성도聖道로서 초월[]하는 것을 가리킨다. 능히 결정코 열반으로 나아가거나 또는 능히 결정코 사성제의 16行相요별了別하므로 열반을 의미하는 모든 성도聖道결정決定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성결정正性決定은 열반을 향하여 정해져 있는 것[필연적인 상태, niyāma]을 의미한다. 修行位[]에 이르러 이라고 설명된다. 이 생함으로써 성자의 이름[聖者名]을 얻는다.

 

은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는 의미로 초기불교에서는 입류(入流)’라고 표현한다. 이와 같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는 것은 교육학적으로 매우 큰 의의를 갖는다. 그것은 예전에는 범부(凡夫)였지만 지금은 성자(聖者)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자(聖者)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형성의 측면에서 탐욕 등 번뇌가 끊어져서 예전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점차적으로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모든 번뇌가 끊어진 최상의 인간형성의 단계를 향해 나아가는 위치에 서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유가수행자에게 고법지인(苦法智忍)으로부터 욕계의 고성제[욕계에 계박(繫縛)되어 있는 고(), 이하 생략]를 대상으로 하는 인연으로 하여 ()’가 발생하는데, 고법지(苦法智)라고 명명한다. 이 고법지도 고법지인과 마찬가지로 무루(無漏)’에 속한다. 이와 같이 다시 유가수행자는 고법지로부터 나머지 다른 세계[色界, 無色界, 이하 생략]의 고성제(苦聖諦)를 대상[]으로 하는 인연으로 하여 류지인(類智忍)’이 발생하는데, ‘고류지인(苦類智忍)’이라고 명명한다. 이 고류지인은 또한 고성제(苦聖諦)를 대상[]으로 하는 인연으로 하여 류지(類智)’가 발생하는데, ‘고류지(苦類智)’라고 명명한다. 처음에 법의 진리를 깨달아 앎으로 법지(法智)’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이후 이 ‘(法智)’를 원인으로 하여 그것에 따르므로 상계(上界)인 색계와 무색계의 고() ()을 인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지()류지(類智)’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부터는 앞을 따라 대상[]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고성제 욕계 및 나머지를 인연으로 하여 법류인(法類忍)’을 발생케 한다. ‘법류인(法類忍)’4개이고, 나머지 집성제(集聖諦) , 멸성제(滅聖諦) , 도성제(道聖諦) 3 ()를 인연으로 각각 4 개 또한 그러하다. 즉 욕계(欲界)의 집성제(集聖諦)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법지인(法智忍)이 발생하는데, ‘집법지인(集法智忍)’이라고 한다. 이 집법지인은 욕계의 집법지를 인연으로 하여 법지(法智)가 발생하는데, ‘집법지(集法智)’라고 명명한다. 다음은 다른 세계[]의 집성제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류지인(類智忍)’이 발생하는데, ‘집류지인(集流智忍)’이라고 명명한다. 이 집류지인은 다른 세계[]의 집성제集聖諦를 대상[]으로 하는 인연으로 하여 류지(類智)’가 발생하는데, ‘집류지(集類智)’라고 명명한다.

 

다음은 욕계의 멸성제(滅聖諦)’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법지인(法智忍)’이 발생하는데, ‘멸법지인(滅法智忍)’이라고 명명한다. 멸법지인(滅法智忍)’은 욕계의 멸법지를 인연으로 하여 법지(法智)가 발생하는데, ‘멸법지(滅法智)’라고 명명한다. 다음은 다른 세계[]의 멸성제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류지인(類智忍)’이 발생하는데, ‘멸류지인(滅流智忍)’이라고 명명한다. 멸류지인(滅流智忍)’은 다른 세계[]멸성제(滅聖諦)’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류지(類智)’가 발생하는데, ‘멸류지(滅類智)’라고 명명한다.

 

다음은 욕계의 도성제(道聖諦)’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법지인(法智忍)’이 발생하는데, ‘도법지인(道法智忍)’이라고 명명한다.. 도법지인(道法智忍)’은 욕계의 도법지를 인연으로 하여 법지(法智)가 발생하는데, ‘도법지(道法智)’라고 명명한다. 다음은 다른 세계[]의 도성제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류지인(類智忍)’이 발생하는데, ‘도류지인(道流智忍)’이라고 명명한다. 도류지인(道流智忍)’은 다른 세계[]도성제(道聖諦)’를 대상[] 인연으로 하여 류지(類智)’가 발생하는데, ‘도류지(道類智)’라고 명명한다.

 

고성제로부터 도성제에 이르기까지 8816 행상이 전개되고 있는데, 여기서 인()은 현재 번뇌가 있는 상태와 이 번뇌를 끊은 미래 혜()로서의 인()의 사이에 간격이 없으므로 무간도(無間道)’라고 한다. 그리고 지는 번뇌가 있는 상태로부터 해탈한 사람들에게 계박을 떠남과 함께 생기기 때문에 해탈도(解脫道)가 된다.

 

이와 같이 차례대로 16행상의 수행이 있게 된다. 16행상(또는 16)의 수행은 설명하가를 성제현관(聖諦現觀)’이라고 한다. 이상 16행상의 수행법에서 15번째까지는 견도의 수행이라고 한다. 달리 표현하면 15찰나(刹那)로 이루어지는 견도위 수행이다. 그러나 16번째부터는 수도위의 수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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