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서 유식사상의 인간형성의 의의를 살펴본 후 중관과 유식 등 대승불교의 교육과정으로서의 특성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인간형성의 길이 시대적으로 여러 가지 교설로 나타나지만, 결국 하나의 길인 교육목적(수행의 목적이기도 함)-깨달음으로 통한다는 것을 서술하기로 한다.
아만은 원래 원어가 ’asmimāna‘로서, 나는 5취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세친은 아만의 원어를 ’asmimāna‘에서 ’ātmamāna)라고 하였다.] 실제로 나는 5취온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5취온이다‘라고 잘못된 생각을 갖는 것이다. 즉 전도顚倒이다.
그 다음은 아애我愛이다. 아애는『성유식론』에서 “아애는 아탐我貪이다. 자아自我에 대하여 매우 애착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아애라고 한다.”고 정의하고 있듯이, 자아에 대해서 애착하는 것을 말한다.
서양심리학에서는 이드(id), 에고(ego), 슈퍼에고(super ego)를 인간의 심리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드는 인간의 본능적인 생체에너지로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이며, 이것에는 도덕과 선악과 논리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에고는 자아를 의미하는데,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으면서 심리적 조절 작용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슈퍼 에고는 규칙, 윤리관, 양심, 금지 등을 이드와 에고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자아가 본능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 초자아가 제어한다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초자아를 재판관 또는 검열관에 비유하고 있다.
필자가 서양심리학의 이드, 에고, 슈퍼에고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다룬 것은 서양심리학에서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이드, 에고, 슈퍼에고로 구분하여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명쾌하게 드러나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유식에서는 인간의 마음의 깊은 곳에 8 識으로 불리우는 아뢰야식이 존재하고, 또한 이와 같은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삼아 자아에 대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집착하고, 잘난체 하며, 애착하는 7 識으로 불리우는 말나식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세상에 이와 같이 정밀하게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 심리체계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아뢰야식과 말나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따르면 중생이 과거 전생으로부터 생사 윤회를 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말나식이 자아에 대해 항상 존재한다고 집착하고 애착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번뇌가 아뢰야식에 종자로서 저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관계에서 전개되는 수행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즉 유가행의 실천수행을 통해 자기를 변혁하고, 중생인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는 과정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유식에서 전개되는 심리적 인간형성의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아법我法에 집착하여 중생으로서의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유식에서는 그 이유를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번뇌장(kleśa-āvaraṇa, 煩惱障)은 정의적 마음이 오염된 상태로서 “자아가 실재한다.”고 보는 아집에서 비롯한다. 소지장(jñeya-āvaraṇa, 所知障)은 지적인 마음이 오염된 상태로서 “외계의 사물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법집에서 비롯한다. 번뇌장으로 인해 우리는 윤회라고 하는 생사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이고, 소지장 때문에 우리는 깨달아 부처님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번뇌장을 끊으면 생사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 또한 소지장을 끊으면 우리는 보리를 얻어서 부처님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번뇌장과 소지장을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유식에서는 ‘전의轉依’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전의란 “소의所衣를 변혁시켜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소의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의타기성依他起性’, 즉 여덟 가지 識[여섯 가지 識과 7識인 말나식, 그리고 8識인 아뢰야식을 합한 여덟 가지 識을 가리킴]을 가리키는데, 좁게는 아뢰야식을 말한다. 변혁은 변계소집성을 버리고 의타기 속에 있는 원성실성을 얻는 것이다. 변계소집성은 중생이 번뇌장과 소지장의 상태에서 자기와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것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즉 언어나 개념에 의해 전도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전의는 8識인 아뢰야식을 허망한 상태인 변계소집성에서 진실한 상태인 원성실성으로 질적인 변혁을 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가 열반과 보리이다.
교육학적으로 볼 때, 전의란 전도된 상태에서 열반과 보리로 변혁되는 인간형성의 과정이다. 구체적으로 변혁의 과정을 살펴보자. 허망한 상태인 변계소집성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닦아야 할까? 그것은 십지十地의 수행단계에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닦고, 또한 바라밀을 실천 수행함으로써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심층심리 속에 있는 번뇌장과 소지장의 추중麤重을 끊어야 가능하다. 추중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종자種子로서 잠재적인 악惡으로 불려진다. 이 추중이 몸과 마음을 속박되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중이 끊어지는 것은 우선 십지十地의 수행단계에서 점차적으로 무분별지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다. 무분별지란 나와 남을 구별하고 이것과 저것을 나누는 대립적인 사고가 아니다. 즉 분별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이다.
한편, 유식은 『유식30송』을 보면 유식수행에서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깨달음의 단계를 서술하고 있다. 성소작지成所作智, 평등성지平等成智, 묘관찰지妙觀察智, 대원경지大圓鏡智 등 4 가지 知慧가 그것이다. 첫째,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지금까지 전오식前五識은 에고인 7 識으로 인해 아견, 아애, 아만, 아치의 번뇌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나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이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지혜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둘째, 평등성지平等成智는 일곱 번 째 말나식[7 식識]이 일체현상은 실체가 없어서, 즉 무아無我이어서 연기적으로 상호의존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평등하다고 아는 지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묘관찰지妙觀察智는 제 6 의식이 일체 현상이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지혜라는 것, 즉 제 6 의식이 일체 현상의 본질과 현상의 차이를 명확히 아는 지혜를 의미한다. 넷째,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제 8식, 즉 아뢰야식이 사물을 차별없이 비추는 거울처럼 맑은 거울과 같은 지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번뇌장과 소지장을 끊는 것은 ‘전의轉依’이고, 전오식前五識이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말나식[제7식識]이 평등성지平等成智로, 제6의식이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로 각각 변화하는 것은 ‘전식득지轉識得智’이다. ‘전의轉依’와 ‘전식득지轉識得智’는 유식의 인간형성 과정 가운데 핵심 개념들이다. 번뇌장과 소지장의 추중麤重이 끊어지고,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바뀌는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전의轉依’와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과정에 의해 부처님과 같이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2) 대승불교의 교육과정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교리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교설들은 교육과정, 즉 커리큘럼의 구성요소가 된다. 그것은 대승불교 경전에 나타나 있는 교설들은 교육과정의 언어가 되며, 또한 대체적으로 반야경전은 공사상空思想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중도中道사상이, 유식사상唯識思想은 만법유식萬法唯識 또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이, 법화경法華經의 경우에는 법화일승法華一乘이, 화엄경華嚴經은 법계연기法界緣起(十玄緣起)와 유심사상唯心思想 등이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교육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 경전 또는 사상의 핵심적인 교육내용이 대체적으로 이와 같다면 각 경전이나 사상등이 나타내고 있는 교육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중국中國의 천태학天台學에서는 화법사교化法四敎와 화의사교化義四敎로서 이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와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否定敎 등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네 가지 형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네 가지 형식에 따른 분류가 의미하는 것은 가르침의 형식이 다르니 이에 따라 교육방법이 다른 것은 필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비록 천태사상은 중국에서 성립하였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분류를 했다는 점에서 교육과정(Curriculum)으로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3) 인간형성의 길 – 여러 가지 길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결국 깨달음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초기불교(계 · 정 · 혜의 교육과정)와 남방 테라와다 불교, 그리고 북방 부파불교(구사론의 현성품을 중심으로 살펴봄), 대승불교의 중관, 유식 등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의 측면에서 인간형성의 길을 살펴보았다. 부처님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와 같이 시대별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는데, 이와 같이 시대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교육내용이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 것, 즉 다양한 모습으로 교육과정이 전개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시대별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불교적 교사인 스님 또는 선지식이 학생인 비구, 비구니, 재가불자 등을 대상으로 학생 개개인의 근기(능력과 소질)에 따라 가르쳤다는 것 이외에도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이 시대별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교육과정이 시대별로 다양하고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까? 그것은 시대적 환경과 시대적 요구사항에 따라 가르침이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점은 과거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현대사회에 걸맞게 불교의 교육과정이 전개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미래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일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은 불교적 교사가 결국 도달해야 하는 목표, 즉 깨달음이라는 교육목표이다.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길(三乘)이 있으나 결국 하나인 깨달음(一乘)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서 불교교육과정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부처님이 지향한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은 각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응축된 것은 무엇이고, 전개된 것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이것을 중핵이 되는 불교교육과정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달마대사가 인도대륙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불교교육과정 가운데 핵심이 되는 도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달마대사의 禪을 이어받아 꽃을 피운 육조대사 혜능 스님의 경우에는 보다 더 깨달음의 핵심에 도달하는 법을 후대에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필자는 선종禪宗 가운데 간화선이 차세대 교육과정의 이론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핵심을 가리킴으로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간화선이야말로 불교교육학자뿐만 아니라 교육학자들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인도에서 전개된 가르침을 중심으로 불교의 교육과정을 살펴봤다. 앞으로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전개한 인간형성의 과정을 불교교육사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계속>
http://www.bulgyonews.co.kr/news/36025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