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자주 인과와 연기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두 단어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먼저 인과 이론부터 논하면서 연기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논해보겠다. 인과는 앞과 뒤가 있는 1차원적 개념이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마치 과거가 있어야 현재와 미래도 존재할 수 있는 시간 개념과 유사하다. 그래서 인과를 논하기 전에 먼저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현재라는 시간에 크기가 있다면 현재를 다시 3개의 조각으로 분할할 수 있고 그러면 현재 속에는 다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시간은 크기가 제로여야 하고 현재의 크기가 제로라면 사실상 현재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시간은 존재할 수 없으며 결국 우리는 사물의 변화를 시간의 변화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답이 명료해진다. 사물이 전혀 변하지 않는데 시간만 혼자서 흘러갈 수 있겠는가? 나는 늙지 않는데 세월만 흘러갈 수 있겠는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과론에서 말하는 인과 과는 시간 차이로 발생 혹은 존재하는 2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발생 혹은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설명해보겠다.
찻잔이 공중에서 바닥으로 떨어져서 깨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보통 찻잔이 떨어졌기 때문에 깨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컵이 공중에서 떨어진 것을 인이라 하고 깨진 것을 과라고 생각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오해다. 컵이 떨어졌기 때문에 깨진 것이 아니라 바닥에 충돌했기 때문에 깨진 것이다. 바닥이 없는 허공이라면 컵은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다. 컵이 깨진 이유는 낙하가 아니라 충돌이다. 층돌은 컵의 운동과 바닥의 방해가 함께 일어나서 발생한 것이며 운동과 방해 중에서 하나가 없으면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에 충돌의 책임이 있는 인과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표현하면 컵의 운동은 작용이고 바닥의 방해를 반작용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물리학도 마치 작용이 있으니까 반작용이 있는 것처럼 인과로 설명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충돌(운동과 방해)은 동시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이며 작용과 반작용에 의한 인과 관계가 아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내가 차를 몰고 가는데 상대가 중앙선을 넘어와서 교통사고가 났다. 그러면 교통 법규로는 상대가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다. 그런데 그 사건이 우주 공간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에는 인간이 만든 교통 법규도 없고 따라서 중앙선 침범도 없으며 오직 충돌이라는 사건만이 존재한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가 나에게 충돌한 것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상대의 진로를 방해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사건의 책임을 따질 수 있는 인과나 작용 반작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호 동시 작용만이 존재한다. 작용 반작용 혹은 인과가 성립하려면 2개의 사건에 시간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작용 반작용이나 인과는 성립되지 않고 오직 동시 상호 작용만이 존재한다.
인과론의 모순을 좀 더 이야기 해보자. 불교에서 흔히 주장하는 인과론은 인에서 과가 나오고 그 과가 다시 인이 되어 다른 과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최초의 인은 그 앞에 존재하는 과가 없는데 어디서 나올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선과 후가 존재하는 1차원적 개념은 처음과 끝이 존재해야 하므로 결국 순환(윤회)할 수 없게 되는 모순이 생긴다.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과 끝을 하나로 연결해서 1차원의 선을 둥근 원으로 만들면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의 윤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미래로 가다보면 결국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선과 후가 있는 모든 개념은 시작(태초)과 끝(종말)이 있는 1회의 사건으로 끝나거나 과거로 돌아가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데 인과론의 모순을 해결한 것이 바로 연기론이다.
연기를 이해하면 우주 작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고 신의 존재가 없어도 우주가 작동할 뿐만 아니라 불교가 주장하는 무아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의 영향(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 변화에 자아는 물론 신과 같은 제3자의 개입은 없다는 것이 바로 연기와 무아 이론이다. 연기 이론은 오직 주변의 존재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나도 주변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 작용에 의해서 우주가 변한다는 것이다. 상호 작용의 법칙은 제3자의 개입 없이 관련(인연)있는 상대끼리 직접 작용하며, 상대가 가까이 있지 않을 때는 파동이라는 심부름꾼을 이용해서 영향을 미치지만 만유인력처럼 파동을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 만유인력이나 상대성이론의 모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필자의 저서(제목; 과학의 재발견)를 참조하기 바란다.
연기 이론은 우주 작동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매우 과학적인 이론이다. 일반인은 물론 과학자와 종교인도 생명이 탄생하고 다시 사망한다고 믿는다. 탄생과 사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주에 탄생이나 생성 혹은 사망이나 소멸은 있을 수 없다. 현대 물리학의 한 분야인 양자역학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 이전에 물질의 탄생부터 논해보자. 물질이 탄생하려면 에너지가 물질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에너지양자가 물질양자로 변할 때 총량이 보존돼야하므로 에너지양자가 작아지면서 그만큼의 새로운 물질양자가 생성돼야 한다. 그런데 최소한의 기본 단위인 양자보다 더 작은 존재는 는 있을 수 없으므로, 에너지양자의 크기가 작아져서 소멸하거나 물질양자보다 더 작은 입자가 커져서 물질양자로 변하는 과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에너지양자가 물질양자로 변하는 과정이 없이 변해야 하는데 변화의 과정이 없는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러므로 우주에서 어떠한 존재도 새롭게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으며 따라서 물질이 에너지로 변한다는 상대성이론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이미 존재하는 작은 입자들이 모이고 헤어지기를 반복할 뿐이며 양자의 새로운 생성이나 소멸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생명 또한 그렇다. 과학자들이 물질들을 실험관에 넣고 전기 충격을 주었더니 생명의 기본 요소인 RNA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기존의 입자들이 연기 작용에 의해서 뭉쳐서 유기적인 조직(세포)이 만들어지면 생명이 탄생하고 흩어져서 조직이 깨지면 사망하는 것이며 그런 변화에 결코 조물주나 자아가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조물주나 자아가 존재한다면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조물주나 자아를 만드는 또 다른 존재 즉 그들의 부모가 있을까? 아니면 그들은 스스로 탄생했을까? 스스로 탄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이들을 만드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도대체 또 누가 만들었을까? 이렇게 반복되는 질문을 끝낼 수 있는 답은 결코 찾을 수 없으며 그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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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길몽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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