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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12/31 11:15:26  이한규
이송곤 박사의 '불교교육학'강좌(21)
동아시아불교의 중심 · 중국의 불교 전래와 문화접변 - 교육문화사적 의의

이번 호부터는 중국불교를 다룬다. 중국불교는 인도불교가 아니라 동아시아불교에 해당한다. 동아시아불교는 동북쪽으로는 티벳, 몽고,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 뿐만 아니라 부탄, 네팔, 라다크 등 히말라야 산맥 주변의 왕국으로까지 거대한 영역으로 이어지는 불교권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대표격인 나라가 중국이고, 동아시아 역사상 활력적인 역할을 한 불교가 중국불교인 것이다. 세계 문명사를 보더라도 인도를 축으로, 중국을 축으로 하여 문명이 갈라진다. 인더스 문명과 황하 문명이 그것이다. 지리적으로는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인도권과 중국권이 나뉘어진다. 그러므로 중국불교가 인도불교와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살펴보면,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는 그 특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다른 점을 든다면 첫째, 언어로서 인도불교는 산스크리트어 기반이고 중국불교는 漢字 기반이다.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한자 기반의 한문경전은 산스크리트 경전이 한문경전으로 번역될 때 산스크리트 문장의 원어의 의미를 완벽하게 전달했느냐, 그리고 산스크리트 원전에는 있는데 한역을 하면서 빼버리거나 아니면 산스크리트 원전에는 없는데 한역을 하면서 있다고 했느냐 등에 따라 상호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문화권이다. 인도는 아리안족의 힌두교 문화권인 반면에 중국은 한족 문화권이다. 그리고 기후도 다르고 습속도 다르다. 이와 같이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는 서로 너무 다르다.

 

새뮤얼 헌팅턴이 저서 문명의 충돌 : 원제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에서 종교와 문화적 차이에서 문명이 충돌한다고 서술하고 있듯이, 인도불교가 중국에 전래하였다는 사실은 서로 이질적인 문명이 충돌한 세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상호간에만 문명의 충돌을 한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도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함에 따라 중국 문명과 한국문명은 상호 충돌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하늘을 숭상하는 토착종교가 있었는데 이와 다른 불교가 중국에서 전해졌으니 두 문명간에 충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문명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그리고 중국불교와 한국불교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이해의 기반위에 중국불교의 교육적 전개에 대해 제대로 살펴볼 수 있게 된다고 하겠다.

 

필자는 인도불교에 이어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후 교육과정의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한 나라에 어떤 종교가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가 한 종교가 전래한 이후에는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종교의 전래는 단순히 종교의 가르침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문화와 함께 올바른 인간이 되게 하는 인간형성을 위한 교육적 가르침도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가 중국하면 떠오른 것으로 춘추전국시대의 孔子孟子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은 공자와 맹자의 나라였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나라 전체에 걸쳐 이들 공자와 맹자, 孔孟의 사상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儒敎가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性理學이 준 영향이 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삶에 또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데올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道敎를 들 수 있다. 도교는 老子莊子의 사상에서 비롯하였는데, 특히 노자의 無爲自然의 사상과 神仙 사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신선 사상은 전국시대가 끝나갈 때 나라와 나라의 方士(도교의 方術을 행하는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장미란, 중국불교화 과정에서 본 도가와의 관계 연구, 서울 :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8, p.14. 참조>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방사들의 수련으로 신선사상이 형성되었는데, 楚辭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먹는 것은 六氣이고 마시는 것은 밤이슬이다. 正陽으로 양치질하고 아침이슬로 목을 축인다. 정신적인 청결을 유지하여 精氣가 체내에 들어와 더러움이 제거되었다.곤륜산에 올라서 신령스러운 玉英을 먹는다.”<장미란, 중국불교화 과정에서 본 도가와의 관계 연구, 위의 글, pp.14-15. 참조> 이미 前漢 昭帝劉向列仙傳을 보면, 71의 신선이 수록되어 있는데, <장미란, 중국불교화 과정에서 본 도가와의 관계 연구, 위의 글, p.16> 이것을 보더라도 신선사상은 전한시대로부터 꾸준히 형성되어 온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교는 이와 같이 유교와 마찬가지로 중국인의 삶에 영향을 끼쳐 왔으니, 중국 나라 전체의 道館과 종교로서의 도교숭배 등을 봐도 그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漢民族은 현실적인 경향이 강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부귀와 장생은 가장 최대로 바라는 열망이었던 것이다.<장미란, 중국불교화 과정에서 본 도가와의 관계 연구, 위의 글, p.14. 참조> 長壽을 비는 글귀를 상점이나 집에 중국인들이 걸어놓은 것을 봐도 우리는 중국인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도교가 깊게 스며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유교와 도교는 중국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종교이며, 사상이다. 그런데 불교가 후한 명제때 공식적으로 중국에 전래된 이후 중국인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것은 불교의 중국 전래 이전에는 유교와 도교가 나라 전체에 걸쳐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중국 전래는 그로 말미암아 중국인의 이데올로기에 일대 변혁이 이루어지게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종교와 사상은 유교와 도교였는데 언어와 사상이 다른 불교의 중국 대륙에의 전래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보고 듣지도 못하던 불상과 경전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으로부터 들어 왔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서로 다른 문화의 접변 현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굳이 이를 표현한다면 漢字文化圈과 산스크리트 문화권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불교 전래와 초기 중국불교의 특성, 그리고 최초의 불교교육의 성립

그러면 중국의 불교 전래 이야기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불상과 경전이 인도대륙으로부터 중국에 처음 전해진 때는 後漢 明帝 서기 67년이다. 서기 67년 후한 명제는 金人이 나타나는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을 꾼 후 명제는 사신에게 서쪽으로 가서 법을 구하라는 을 내리게 된다. 사신이 명제의 명을 받고 서쪽 서역으로 가는 도중에 백마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과 42장경을 싣고 오는 천축의 고승 가섭마등(迦葉摩騰)과 대월지국의 스님 축법란(竺法蘭) 등 두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사신은 두 분 스님과 함께 낙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 해, 서기 67년에 두 스님은 42장경을 번역하게 되고, 이듬해인 서기 68년에 낙양에 백마사가 창건된다. 이로써 백마사는 중국 최초의 절이 되고, 또한 백마사에서 중국 최초로 스님이 머무르게 된다. 그런데 正說은 아니지만 이미 전한시대~후한 명제까지 실크로드를 통해서 꾸준히 불교를 중국에 전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전한시대로부터 후한 명제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불교를 중국에 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진 끝에 서기 67년 불교 전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전적에 나타나고, 이듬해 백마사가 낙양에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부터 중국에 인도와 서역 등으로부터 중국이 아닌 근처에 조금씩 불교가 전해지고 있었다는 도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중국 최초로 42장경이 전래하고, 최초의 절 백마사가 창건됨으로써 중국은 처음부터 인도불교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도와 서역 등지로부터 조금씩 외국 승려들과 외국 신도들 몇사람이 불교[浮屠]라는 말과 불교에 대해 전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백마사가 창립되었다고 해서 처음부터 중국인들에게 환영을 받은 불교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후한 환제 이후에 가서야 중국인들에게 불교가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에는 불교와 도교가 공존한 상태에서 불교를 신앙하였다고 전한다. 後漢書 72 楚王英傳에 의하면, 후한의 楚王 英의 이복형인 明帝는 동생인 黃老 · 浮屠(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의 가르침을 崇尙하고 齋戒에 정성을 기울인다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초왕은 黃老의 오묘한 말을 낭송하고 浮屠仁祠崇尙하여 3개월동안 깨끗이 목욕재계할 것을 에게 맹세하였다. 이를 어찌 미워하며 어찌 의심할 수 있으며 허물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가 속죄의 표시로 바친 비단들을 돌려주어 伊蒲塞(優婆塞)桑門(沙門)들에게 성찬을 공양하는 것에 쓰도록 하라.”<장미란, 중국불교화 과정에서 본 도가와의 관계 연구, 위의 글, pp.22-23. 참조. 後漢書 72 楚王英傳인용.> 여기에서 우리는 후한의 楚王이 부처님을 祭祀祈福을 위한 대상으로 이해하고 숭배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한 초기였으므로 불교에 대해 초왕이 아직 잘 알지 못한 점이 있었으며, 또한 노자인 黃老를 초왕이 숭상했다고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를 祈福의 대상으로 숭상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디 동생인 초왕 영만 불교에 대해 기복적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을까? 불교를 중국에 처음으로 전래하게 한 명제 또한 초왕 영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기복적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부처님을 도를 깨우친 으로 서술하고 있는 典籍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한시대에 撰述되었다고 전해지는 理惑論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부처는 도덕의 시작, 神明大體이다. 부처란 이라는 의미이다, (부처)恍惚에서 변화하여 신체를 자유자재로 분산할 수 있다. 存亡 大小 方圓 老少 隱彰에 모두 능하다. 불속을 다녀도 타지 않고, 칼을 밟아도 다치지 않는다. 더럽혀지지도 않고 災殃厄禍가 있어도 죄가 없다. 가고자 하면 날아갈 수 있고, 앉아 있으면 빛이 난다. 때문에 부처라고 부른다.”<장미란, 중국불교화 과정에서 본 도가와의 관계 연구, 위의 글, p.23. 참조. 理惑論인용.> 인용한 내용은 중국인들이 부처님을 변신술을 지닌 노자와 같은 으로 여겼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意味深長하다. 이것은 초기 중국불교의 특성이 부처님을 숭상함과 노자, 黃老를 숭배하는 것이 공존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중국적인 불교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살펴본 것처럼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후 중국민족이 불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경과하였으며, 또한 불교전래 초기의 신앙 특성은 黃老崇尙과 공존한 중국적인 불교이었기 때문에 인도의 사르나트에서의 초전법륜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 최초로 백마사가 창건했고, 42장경이 전래되어 이후 한문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교육적인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래한 불상이 백마사에 봉안이 되었다고 볼 수 있고, 두 분 스님이 42장경을 한문경전으로 번역하였으며, 또한 백마사에서 최초로 승려가 머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중국에서 최초로 불교의 교육적 환경이 성립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법을 전하는 스님(교사)과 가르침인 법(교육내용)과 스님(학생) 등 불교교육의 3요소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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