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필자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안세고가 처음으로 한자의 형태로 경전을 번역함으로써 그가 중국불교의 역경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아비달마에 정통한 안세고는 안반수의경을 번역하고 대승경전을 번역하지 않음으로써 한계가 있었다. 그런던 차에 2세기말경 後漢의 支婁迦讖과 吳의 支謙, 그리고 西晉의 竺法護 등이 대승경전을 번역하게 된다. 즉 지루가참은 179년에 도행반야경을 번역하였고, 축법호는 286년에 광찬반야경을 번역하였는데, 이때 도행반야경은 소품반야경에 해당하고, 광찬반야경은 대품반야경에 해당한다.(金容彪, Kumāra
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1997, 한국불교학 제24집 pp.66-67. 참조) 이와 같이 지루가참 등에 의해 반야계통의 경전이 번역됨으로써 당시 중국은 般若의 空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그렇지만 안세고와 지루가참과 지겸 등의 번역은 너무 고전적이고 중국의 한문 문법에 잘맞지 않게 번역하지 않았다고 하여 후대 역경가들로부터 비난의 말을 듣게 된다. 구마라집 삼장(344~413)은 이들 예전 번역 경전들이 梵語 原本과 대조하여 번역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전의 舊譯을 살펴보니 경문의 뜻이 지나치게 잘못된 곳이 많았다. 舊譯된 모든 경전들이 바른 취지를 잃는 이유는 梵本과 대조하여 번역하지 않은 때문이었다.”(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1997, 한국불교학 제24집, p.67. 재인용) 그리고 승예(僧叡)는 옛 번역에 대해 “舊 번역을 살펴보니 참으로 황무지에 심은 곡식과 같아 잡초가 반 이상이나 되는 듯 하니 어찌 잘못이 많지 않겠는가”(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1997, 한국불교학 제24집, p.67. 재인용)라고 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예전 경전들이 범본과 대조할 때 제대로 번역이 안되었다는 것은 단지 번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원전인 범본과는 다르게 경전이 번역된 부분이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 있게 됨으로써 교육내용으로서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었고, 또한 이에 따라서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전인 범본경전을 한자로 변역하는 일은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고 교육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었다.
서구 해석학의 거장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는 해석학(Hermeneutics)의 출발점으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말한 것이나 문장으로 쓰여진 글이거나 모든 표현된 것은 진실로 어떻게 이해되었나?” 슐라이에르마허는 이와 같이 이해를 해석의 중심에 둠으로써 해석학은 그에게 ‘이해의 기술(the art of understanding)’이 되었던 것이다.(Richard E. Palmer, 『Hermeneutics』,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69. p.86 참조) 이와 같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언급처럼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후 인도와 서역 등지에서 渡來한 역경승들에게도 문자와 언어가 다른 문제는 결국 이해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는 경전을 문법과 문장구조가 전혀 다른 한자 경전으로 번역하는 일은 양쪽 문자와 언어를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양쪽 문자와 언어만 알아서 번역불사가 완전히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의 사상과 중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함으로써만 이에 걸맞는 텍스트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이해의 기술을 텍스트의 저자가 경험한 정신적 과정을 재경험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Richard E. Palmer, 『Hermeneutics』, 같은 책), 후기에 가서 그는 이것을 언어의 부문과 생각의 부문으로 분리하기에 이른다. 즉 언어의 부문은 ‘문법적 해석’이고, 반면에 처음에 그가 기술적인 것이라고 부른 생각의 부문은 심리적 해석이라고 분리하고 있다.(Richard E. Palmer, 『Hermeneutics』, 위의 책, p.88) 중국의 역경승들도 이와 같이 범어 원전의 저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자로 정확하게 번역하는 일, 즉 언어적 부문인 문법적 해석이 우선 당면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바탕위에[슐라이에르마허는 이것을 저자와의 확실한 일치하고 표현하고 있다 ; Richard E. Palmer, 『Hermeneutics』, 위의 책, p.89]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하에 중국인들에 걸맞게 한자로 번역하는 심리적 해석을 하는 일이 역경승들의 과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승예와 구마라집 삼장의 인용문에도 나타나 있듯이, 초창기 역경승들이 문법적 해석과 심리적 해석을 완벽하게 완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호한역경음의동이기(胡漢譯經音義同異記)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는데, 초기 역경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범문을 소통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분명한 번역[明譯]에 달려 있다. 번역하는 사람은 풀이함에 있어서 양국의 언어를 비교해서 풀이해야 하는데, 말이 잘못되면 이치가 어긋나게 된다. 전한(前漢) 말기부터 경법(經法)이 처음 소통되었는데 번역하는 소리[譯音]가 서로 잘못 전해져서 분명하게 익힐 수 없었다. 그러므로 부도(浮屠)와 상문(桑門)의 오류가 한나라 기록에 남게 되었다. … 이전의 옛날에 번역한 사람들은 자세하게 익힐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경문(經文)의 의미가 막히고 장애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찌 경문이 장애하는 것이겠는가? 번역자의 잘못일 뿐이다.”(T.2145. 出三藏記集 卷第一, 釋僧祐撰)
초기 역경이 다소 잘못 번역된 일은 이후 산스크리트 원전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중국어에도 정통한 구마라집 삼장이 중국에 도래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구마라집이 이처럼 산스크리트어 원전에 능통했던 까닭은 전해지는 그의 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서역의 쿠차인으로 인도에 유학하여 소승 · 대승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여러 종교와 철학 사상을 연구하였고, 서역에서 대승불교를 널리 전하였다고 한다. 그는 7세에 출가한 후 어머니인 지바를 따라 9세때 인도 서북쪽에 있는 계빈국에 유학하여 반두달다로부터 아함경과 설일체유부의 논서를 배워 익혔으며, 카쉬가르에서는 원시경전과 베다, 五明 등의 인도고전과 음양 · 천문학도 익혔다고 한다. 또한 그는 소륵국에서 수리야소마로부터 중론과 백론을 배움으로써 대승으로 귀의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쿠차국으로 귀국한 후 그는 비마라차로부터 十誦律 등의 율장을 배움으로써 계를 받고 방광반야경 등 대승경전을 연구했다고 한다.(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앞의 글, pp.63-64. 참조)
승예는 이와 같이 교학과 언어에 뛰어난 구마라집 삼장의 번역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구마라집 법사는 손에 인도 원문을 들고 중국말로 읽어 내려가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음을 풀이하고 문장의 의미를 번갈아 가며 해명하였다. 그러면 왕(姚興)이 몸소 구역 경전을 열람하면서 그 장단점을 고찰해보고 그 뜻이 통하는 방법을 질문하여 그 뜻이 쉬우면서 종지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면 구역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원로들(慧恭, 僧叡등) 500여명이 그 본래의 뜻을 상세히 살피고 그 문장을 심사한 다음 써 내려갔다.”(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위의 글, p.68. 재인용) 이와 같이 구역과 비교할 때 뛰어나게 번역을 한 구마라집 삼장도 원어인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의 차이점 때문에 다음과 같이 고뇌를 했다고 전해진다. “천축국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 五音의 운율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 ……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梵文을 中國語로 바꾸게 되면 그 아름다운 문 文彩를 잃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비록 중국어는 잘 하였으나 언어가 완전하게 통하지 않음에 대해 곤혹스러했다고 한다. 그가 제자인 僧肇의 『般若無知論』을 읽고 “나의 이해능력은 그대에게 양보할 수 없다 해도 그대의 언어능력은 마땅히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하겠다.”고 말한 것이 그 예가 된다.(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위의 글, pp.69-70. 재인용함) 이것을 보더라도 언어가 다르고 풍속이 다른 나라에서 한자 경전으로 번역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상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경전번역 불사임에도 불구하고 안세고 스님을 비롯하여 지루가참 스님과 지겸스님, 그리고 구마라집 삼장 등이 해 낸 과정에서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이루어진 경전결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경전을 결집하거나 경전을 자국의 문자로 번역하는 일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중대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그것은 다음 절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어와 문자 형태로 여러 나라에 전해지면서 있게 된 가르침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봄으로써 그 의의를 알 수 있고, 이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교해석학의 유래와 전통, 그리고 교육해석학적 의의
해석학(Hermeneutics)의 용어는 신이 말한 의미를 전달하는 전령사 헤르메스(Herme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경우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과 번역은 해석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불교의 역사는 해석학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하겠다. 시대적으로는 초기불교로부터 부파불교, 그리고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국가별로는 인도로부터 중국, 그리고 한국, 일본, 그밖에 스리랑카와 미얀마, 태국 등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대와 지역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이 전해졌는데, 해석학적 견지에서 볼 때는 가르침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필자는 불교 해석학의 역사는 언제부터 유래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자 한다. 개신교가 신이 말한 메시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해석을 함으로써 해석학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 불교해석학의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말한다면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법을 들은 제자들로부터 불교해석학은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부처님의 상수제자 아난존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곁에 있으면서 부처님을 시종일관 遂行하였고 비상한 기억력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부처님의 열반후 첫 번째 경전결집때 부처의 가르침을 암송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의 상수제자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열반후 첫 번째 결집에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라고 先唱을 하고, 가섭을 필두로 하는 5백의 아라한 스님들로부터 認證을 받음으로서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이 三藏의 형태로 세상에 전해지도록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력이 비상한 아난존자라고 하더라도 당시는 문자가 없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과연 그 많은 가르침을 말로서 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필자는 대학원시절 스리랑카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스리랑카 스님에게서 “스리랑카 스님들 대부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외우고 또한 뒤에서부터 앞에까지 외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多聞第一이고 기억력이 비상한 아난존자가 부처님 열반후 소집한 첫 번째 경전결집때 그 많은 경전을 암송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하겠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 · 율 · 론 삼장의 형태로 이후 인도에서는 아쇼카왕에 이르러 세 번째 결집을 하게 되고 스리랑카 등 여러 지역에 전해지게 된다.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미얀마와 태국 등 남방 테라와다 불교권을 중심으로 전통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반면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도의 아비달마와 대승불교를 거쳐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티벳에 이르는 또 하나의 전통을 세우게 된다. 필자는 전자를 저자 중심[앞에서 언급한 슐라이에르마허의 텍스트 저자의 정신적 과정에 대한 해석자의 재경험이 저자중심이다]의 불교해석학 전통이라고 부르며, 후자를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 중심[이것은 가다머의 해석학으로서 과거 텍스트에 대한 선입견(preconception)을 바탕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텍스트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해석하는 역사적 지평융합을 가리킨다]의 불교해석학 전통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다시 설명하면 저자 중심의 불교해석학 전통이란 아쇼카왕대 3차결집을 거쳐 스리랑카등 남방불교권에서 三藏에 기반을 두고 전개한 경전해석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 중심의 불교해석학 전통이란 해석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시대적, 문화적, 환경적인 상황을 바라보면서 역사적 지평 융합에 의해서 해석하는 형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불교해석학 전통의 한 예로서 구마라지바 삼장이 서역어나 범어원전을 당시 중국인의 사유구조에 맞춰서 번역한 것을 들 수 있다.(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위의 글, p.73. 참조) 그는 예전의 번역을 고쳐 世尊, 菩薩, 解脫, 菩提 , 阿耨多羅三藐三菩提, 比丘, 比丘尼, 實相 등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정착화시켰다.(金容彪, Kumārajīva의 經典解釋學과 中觀思想, 위의 글, p.83. 참조)
<다음호 계속>
http://www.bulgyonews.co.kr/news/3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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