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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교의 천관, 지관,수관 사당 |
그러나 불교해석학의 전통이 어느 것이든지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서적 텍스트이든지, 문학 텍스트이든지, 과학적 텍스트이든지 어떤 텍스트이든지간에 선입견없이 해석되지 않는다.”(Richard E. Palmer, 『Hermeneutics』, 앞의 책, p.182. 참조) 즉 팔머의 말을 불교해석학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초기경전이든, 후대 성립한 경전이든 텍스트에는 선입견이 작용되지 않고서는 해석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달리 표현하면 저자 또는 말한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면 텍스트로서의 글이나 말은 해석자에게 이해의 대상으로서 다르게 번역되거나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텍스트로 표현된 것은 어느 것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저자가 텍스트에서 나타내고자 한 의도나 취지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번역자든, 해석자든 택스트가 완벽에 가깝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학적으로 이와 같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은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수 ․ 학습의 과정에서 내용이나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해석학의 전통을 어느 곳에 두느냐에 따라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는 내용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 또한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의 번역과 해석은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번역과 해석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이 달라지는 의미심장한 영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서 오랜 기간동안 전개된 한자 경전번역의 佛事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불사였다고도 할 수 있다. 천축이나 서역 등지에서 중국으로 渡來한 역경승들은 중국인의 정신세계와 문화에 걸맞도록 산스크리트 원전을 한자 텍스트의 경전으로 번역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이와 같이 漢譯된 경전을 당시 대중들에게 보급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일정 부분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전번역의 역사는 의미심장한 교육실천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경전번역은 이와 같이 舊譯三藏인 구마라집을 비롯하여 新譯三藏인 현장 등 뛰어난 스님들에 의해 한편으로는 번역, 또 한편으로는 교화 · 교육 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동진의 도안 스님을 비롯하여 여산의 혜원 스님, 후진의 승조 스님, 그리고 당나라의 규기 스님 등 걸출한 스님들에 의해 불교가 사상적으로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써 중국역사상 불교는 중국인의 삶과는 떨어질 수 없는 종교이면서 동시에 사상적 이념이 되었다. 아무리 중국에 고유의 儒敎思想과 老莊 등 道家思想이 뿌리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교는 중국인들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불교는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동아시아 불교로서 중추적 역할을 오랜 세월동안 해왔다. 중국의 화엄사상과 천태사상, 그리고 달마대사 이후 6조 혜능선사에 의해 꽃을 핀 禪宗 사상 등이 우리나라에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고, 또한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백제시대때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함으로써 동아시아불교는 중국-한국-일본으로 綿綿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중추로서의 역할을 한 중국불교의 이면에는 불교 사상을 후진들에게 전달을 한 교육이 주된 역할을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先進인 스승이 後進인 제자에게 전달한 사상의 이면에 흐르는 이념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격의의 특성이 역사적으로 나타난 중국의 사상속에 면면히 투영되어 전해 내려왔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격의는 중국불교를 중국다운 불교로 자리매김하게끔 하였는데, 그 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노장의 無爲思想과 般若의 空思想 둘 사이의 격의이다. 이와 같이 무위의 노장사상과 불교의 공사상이 조화를 이루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는 대표적으로 왕필(王弼)을 예로 들 수 있다.
無爲의 玄學을 중국에 널리 알린 왕필은 無의 개념을 구체화시키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현학은 이후 불교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왕필은 하안(何晏)과 더불어 3세기에 현학이라고 불리는 사상을 유행시켰는데 현학은 그 이전에 있었던 ‘言不盡意論’의 뒤를 잇고 있다. ‘言不盡意論’은 말은 뜻을 다할 수 없다는 주역의 구절으로서 왕필은 이 주역의 구절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다른 방식으로 ‘言’과 ‘意’에 대해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왕필은 ‘意’는 ‘象’으로서 이해될 수 있고, ‘象’은 ‘言’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뜻을 얻으면 상을 잊고, 상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得意忘象, 得象忘言)’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김진무, 王弼의 玄學사상에 보이는 ‘般若學’의 영향에 관한 一考, p.112 참조> 이와 같은 왕필의 유명한 말은 莊子의 ‘得魚忘筌, 得兎忘蹄’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김진무, 같은 글, p.112>
왕필은 또한 ‘有’와 ‘無’를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는데 이후 中觀에서는 ‘無’로, 唯識에서는 ‘有’로 각각 對比되어 나타난다. 中論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는데, 왕필의 ‘無’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如諸法自性. 不在於緣中. 以無自性故 他性亦復無 … 諸法無自性. 故無有有相. 說有是事故. 是事有不然.”<中論 觀因緣品 第一>
이 내용을 해석하면 “모든 법의 자성이 연(緣) 가운데 있지 않은 것과 같이 자성(自性)이 없기[無] 때문에 타성(他性) 또한 없다. … 모든 법은 자성이 없으므로 있음[有相]이 없네. 이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인데, ‘無’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유식30논송(唯識三十論頌)을 보면 “若唯有識, 都無外緣, 由何而生種種分別？頌曰：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만약 오직 식만이 있고 외부의 緣[대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분별이 생겨나는가? 게송에서 말한다. 일체종자식이 이렇게 이렇게 전변함으로 말미암아 전전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저러저러한 분별이 생겨난다.”라고 해석된다. 오직 식(識)만이 있다고 하는데 다른 것은 없는데 여러 가지 분별하는 법들이 생겨나는 것은 씨앗으로서의 알음알이 분별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無’와 ‘有’의 술어가 불교사상의 핵심이 기술되어 있는 중론과 유식30논송에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도가의 ‘무’와 ‘유’의 대비되는 개념이 중국인들의 정신세계와 사상에 녹아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왕필은 저서인 老子道德經注에서 “천하의 사물은 모두 有로써 생기지만, 有는 無를 근본으로 삼아 시작되므로 有를 온전히 하려한다면 반드시 無로 돌아가야 한다.”<김진무, 위의 글, p.113에서 재인용함>고 함으로써 유의 근원은 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 왕필은 ‘道’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道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거스르지 않아야, 바로 그 性을 얻을 수 있으니,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것은 모난 것에 있어서는 모난 것을 본받고, 둥근 것에 있어서는 둥근 것을 본받으니, 스스로 그러함에 거스리는 바가 없다. 스스로 그러한 것은 칭할 바가 없는 말이며, 궁극의 말이다.”<김진무, 위의 글, p.117. 老子道德經注 25章 재인용함>
왕필의 ‘無’를 근본으로 하는 ‘以無爲本’은 반야부 계통 경전인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대명도경(大明度經)에서는 ‘諸法本無’로 표현되고 있다. 즉 도행반야경을 보면 “何謂所本無？世間亦是本無.何所是本無者？一切諸法亦本無. 如諸法本無，須陀洹道亦本無，斯陀含道亦本無，阿那含道亦本無，阿羅漢道、辟支佛道亦本無....”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세간도 本無하고, 일체 모든 법도 本無하며, 모든 법이 本無한 것처럼, 수다원도도 本無하고, 사다함도도 本無하며, 아나함도도 本無하고 아라한도와 벽지불도도 本無하다는 것이다.
대명도경에서는 “答曰：「云何，於本無中見三道耶？」 曰：「不見也. 何以故？從本無中不可得三事.」 善業言：「本無一事得乎？」 曰：「不也.」 「於本無中得一道乎？」 曰：「不也.」”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어떻습니까? 본래 없는 것 가운데에서 세 가지의 도를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없는 것에서는 세 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업이 말하였다. “본래 없는 것에서는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본래 없는 것에서는 한 가지 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이다.
또한 왕필의 ‘本末’은 ‘眞’과 ‘俗’으로, ‘生死’와 ’涅槃‘으로, ’衆生‘과 ’佛‘로 對比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對比에서 중국은 도가사상과 불교사상을 융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필의 ’本無‘ 思想이 도행반야경과 대명도경 등의 반야의 空思想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說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같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랬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왕필의 현학이 중국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고 하다면, 그리고 중국불교가 왕필의 현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필자는 이것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본래 사상인 도가사상이 불교와 융합함으로써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대륙에서 정치, 사상, 문화, 교육 등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인의 사유와 문화, 정치제도 등에 本無나 道, 자연(스스로 그러그러함) 등의 사상이 깊게 들어가 전해 내려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는 단지 도가사상과 불교사상의 융합이 아니라 후대에는 유교와 불교와의 만남으로 성리학과 양명학 등 新儒學이 발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중국의 교육사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역사상으로 도도히 내려온 사상의 격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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