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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3/11/06 15:31:40  이한규
김해 金氏 가락국의 시조 ‘수정궁 복원 추진위원회’ 결성한 한국불교법안종 총무원장 도윤 스님
우연과 운명은 모두 연기법(緣起法)안에서 색(色)이고 공(空)이다

▲능인암 주지 도윤 스님


경남 산청군 신안면 둔철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토굴 능인사에서 가락국 수정궁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복원사업불사에 여념이 없는 한국불교법안종 총무원장 도윤 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어릴 적 전남 구례에 있는 화엄사로 출가해 여러 사찰을 전전하다 2008년부터 이곳 경남 산청 능인암 주지를 맡고 있다.


▲능인암 석굴법당
 

능인암 자리는 원래 용방사라는 고려시대 때 창건한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동굴법당 하나만 남아 있다. 예전에 용방사 바로 옆에는 석굴이 하나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 석굴을 여우굴이라고 불렀다. 도윤 스님은 바위산 한 켠에 움푹 들어간 동굴 안에 부처님이 모시고 있다.

 

이 여우굴에는 예로부터 여우가 산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여우굴에 사는 여우가 매년 동짓달이 되면 용방사 스님 한 명씩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이 여우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조선 태종 임금 때 문가학이라는 사람이 용방사에 공부를 하러 왔다가 여우굴의 전설을 듣게 되었고 결국 문가학이 여우를 잡아 쫓아내면서 용방사에 평화가 찾아왔다.

여우를 쫓아낼 때 문가학은 여우에게서 도술을 배웠다. 태종 임금 때 가뭄이 들어 백성들의 민심이 흉흉해 지자 태종 임금이 문가학을 불러 비를 내리게 한 사실까지 있었다.

 

문가학은 자신이 고려의 백성으로 고려를 재건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고려 부흥 운동을 하다가 그 일당과 함께 체포되어 역모 혐의로 사형을 당했고, 이어서 문가학의 본거지로 지목된 용방사를 멸문하고 그 자리에 소()를 파 버리므로서 용방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지 구전이나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아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기술된 역사의 한 토막이다.

 

고려시대 때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과 각종 깨어진 유물들이 발굴, 불교문화연구원이 지표조사 한 끝에 용방사터가 맞다는 고증

 

고려시대 때 창건됐다는 용방사는 문화재청에서도 이 일대에는 주춧돌이 확인되고 있고, 지금도 고려시대 때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과 각종 깨어진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어서 불교문화연구원에 지표조사를 한 끝에 이곳이 용방사터가 맞다는 고증을 받았다.


[#IMAGE6#]

▲석조천관도
 

도윤 스님은 용방사를 중건하려는 신심(信心)에서 문가학 평전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으며, 16년을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한땀 한땀 직접 그려 만든 천관도(天觀圖)를 보여 줬는데 이 천관도는 도윤 스님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했다.

 

이 천관도 안에는 우주의 모든 기운이 다 들어 있으며, 부처님의 법이 녹아 있습니다. 동굴법당 앞에 돌로 깎아 만든 천관도가 있고, 10여 평이 됨직한 동굴법당 바닥에도 천관도가 새겨져 있는데 이 도량에는 천관도가 석탑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산청군의 끝자락인 화개에 가면 구형왕(仇衡王)의 정궁인 덕양전(德陽殿)이 있고, 덕양전에서 약 1떨어진 곳에 왕릉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방장산 동쪽 산록에 왕산이 있고 이 왕산의 왕대 아래쪽에 왕릉이 있어 이 산을 왕산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산에는 구형왕릉이 있고 구형왕릉 가까운 곳에 궁궐터가 있는데 궁궐터에는 4개의 건물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석(礎石)을 비롯해 돌담과 축대, 우물이 있고, 비를 세웠던 받침돌 등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지금도 많은 양의 기와와 그릇 조각들이 발견되는 걸 보면 과거에는 상당한 규모의 큰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으며, 기록에도 태왕궁, 수정궁이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노천 법당 모습
 

산사로 올라가는 길은 엉망진창으로 패이고 일그러졌지만 스님이 포행(布行)을 하는 곳이다.

길이 많이 패였지요? ()에서 공사를 해준다고 하면서도 예산이 모자라는지 쉽게 해주질 않네요. 부처님께서 제가 수행이 부족하다고 더 수행을 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불교는 운명과 우연이 함께하는 종교입니다. 우연과 운명 모두 연기법(緣起法)안에서의 색()이고 공()이고 다시 말해 연기법이 하는 것이지요. 저의 노력이 부족했음에 아직 저 길이 바뀌지 않고 있고 이 암자의 운명도 바뀌지 않는 것이겠지요. 처음엔 군청에 가서 따지고 나무라기도 하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내 노력이 부족했고 부처님의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생들이 번뇌, 망상에 사로잡혀 밝은 대낮에도 촛불을 들고 진리를 찾아다니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어두울 때 촛불을 켜야 세상을 밝힐 수 있듯이 이미 밝아진 세상에는 촛불이 필요 없지요. 어두울 때 촛불을 켜고 찾아야 연기(緣起)의 결과가 나오며 밝을 때는 장미의 대궁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김해 金氏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대왕인 수로왕(首露王)의 후손태왕궁 내지 수정궁 복원추진위원회 스님이 결성해

 

도윤 스님은 가락국 태왕궁 내지 수정궁을 복원하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복원을 해야지요. 제가 속가(俗家)의 성이 김해 김가입니다.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대왕이신 수로왕(首露王)의 후손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산청에 잠들어 계신 구형왕께서 신라에 나라를 복속시킨 후 1,50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왕께서는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나라를 양위하셨지만 결국 나라를 잃은 군주입니다라며, “나라를 잃고 수도인 김해를 떠나 이 산청의 오지로 들어오셔서 수정궁 한켠에서 한 많은 생을 보내셨지요. 우리는 나라를 버린 대왕님의 큰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가야의 역사를 찾고, 특히 신라에 왕위를 양여하신 큰 뜻을 찾는 것이 선조이신 대왕의 한을 풀어 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수정궁 복원의 뜻을 품은 것입니다.”

수정궁을 복원하는 것은 김해 김씨 종중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도윤 스님은 1년 전부터 수정궁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전국의 스님들을 규합하고 있는 중이다.

제 한 몸은 미약하지만 김해 김씨 출신의 스님들이 한뜻으로 모인다면 큰 힘이 되겠지요. 이렇게 모인 힘으로 학계와 종중, 불교계를 설득하여 수정궁과 왕산사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수정궁을 복원하는 불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스님은 불교계와 학계의 힘으로 수정궁에 관한 학술적인 자료를 만든 후 이를 토대로 순수 불교계의 힘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수정궁 복원의 기적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김해 김씨 출신의 많은 불제자 스님들이 동참하여 일정부분 역할을 해 주고 계시므로 현 단계에서 종친회의 도움은 필요가 없고 단지 이런 역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해 김씨 출신의 스님들이 많으므로 그 스님들에게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불도를 닦는 전국의 도반들을 만나 가칭 수정궁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싶다고 하였더니 자발적으로 동참을 희망하는 스님들이 많은 것을 보고 저는 상당히 고무를 받았습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느꼈지요.” 라며 도윤 스님의 안광이 빛난다.

 

그동안 가락 김씨 중앙종친회가 내분에 휩싸여 타성이 종친회장을 하는 기막힌 현실이 있었는데 새로 도임한 김무성 중앙회장이 그동안의 분쟁을 말끔히 정리하고 여타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종친회의 사무를 관장하는 종무 위원장에 역사학자로서 독립기념관 사무처장을 지낸 김시우 선생을 임명하였다는 사실은 가야사의 정당한 발굴과 복원에 대한 종친회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도윤 스님은 불제자이자 김해 김씨 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교도의 입장이 아닌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구형왕께서 만년에 쓸쓸히 유폐 생활을 하였던 수정궁 복원을 필생의 업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이 속가의 인연을 끊고 불도에 들어서기로 했는데 속가의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불도에 어긋남이 있어 보인다는 질문에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속가와 인연을 끊고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탐욕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숨이 끊어지려는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출가해 버린 아들 스님을 보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속가의 인연이라고 하여 찾아뵙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도리인가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출가한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뿌리 없는 나무가 없습니다. 개인의 영달이나 사욕을 위한 집착이 아니고 대의에 바탕을 둔 속세와의 인연이라면 권장할 일이지요. 출가한 스님이 부처의 길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두문불출 장좌불와(長座不臥)하는 것만 칭송받아야 하고 불도를 이루는 것입니까?”


▲능인암 법당바닥의 천관도
 

도윤 스님은 임진왜란 때 호국승병(護國僧兵)들은 불도를 이루지 못한 땡중들의 극일(克日) 운동인가하고 열을 올린다.

수정궁 복원 추진위원회는 일족 스님들을 규합해 만드는 단체다 보니 구성에 애를 먹는다고 하면서 우리 불교계 전국의 스님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매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현재 진주, 산청 지역의 스님이나 불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서울과 부산, 심지어 경북과 전라도와 제주도에 계시는 약 100여명의 스님들이 참여하기로 했으며, 전국적인 힘을 발휘하면 최소한 1,000명 이상의 스님들이 동참할 수 있다며, 일종의 포교 활동이라고 했다.

 

도윤 스님은 우리나라의 불교 역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에 중국의 순도 스님으로 인해 불교가 전해졌고, 이어서 백제 침륭항 때인 384년에 중국의 마라난타가 전라도 법성포를 통해 북방불교가 전파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러나 일연선사(一然禪師)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가락국의 수로왕과 혼인한 허황옥 할머니가 인도에서 오시면서 파사석으로 만든 탑을 가지고 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정사(正史)인 반면에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는 야사에 불과하므로 인정될 수 없다고 하면서 삼국유사에서 나오는 파사석탑을 우리나라 불교의 기원으로 보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석탑은 불상(佛像)이 신앙의 대상으로 정착되기 전에 탑이 신앙의 주요한 상징으로 되었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므로 이 파사석탑을 우리 불교의 기원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일부 중국사관(中國史觀)이나 일제의 식민사관(植民史觀)에 경도된 학자들의 오만한 태도이거나 굴종적 사관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법당전경
 

삼국사기에 나타나지 않거나 밝히지 못한 사실들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고, 이 삼국유사에 실린 사료들이 오늘날 검증에 의하여 속속 밝혀지는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의 역사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시점에 삼국유사에 나타난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면서 고증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망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허황옥 할머니가 가야에 오면서 그의 오빠인 장유대사와 함께 하였으며, 이때 장유대사는 파사석을 불교 신앙의 상징으로 하여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허황옥 할머니가 최초로 상륙했다는 망산도와 망산도 일대에 당시 수로왕이 세웠다는 흥국사와 진국사, 신국사를 비롯해 김해 신어산의 은하사와 장유에 있는 장유사 등도 모두 가야불교의 전래를 고증하는 자료들이다.

 

통상 고대의 종교는 전래된 후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포교의 단계를 거치고 국가 이를 공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가야불교는 왕실이 전래하고 전파하였으므로 공인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공인이 생략되었다는 사실, 즉 하나의 이벤트가 되는 공인 단계의 생략이 결국 가야불교, 나아가 우리나라의 불교 역사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자료가 생성되지 못한 면도 있다.

 

도윤 스님은 첫째 가야사에 기반한 우리나라 불교역사 시작점의 오류를 바로잡고 왕산 기슭에 있던 수정궁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수행정진 중이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중촌갈전로 966-107(능인암)

010-9322-3039

 

경남산청=김용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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