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더없이 높고 푸른 계절입니다. 온천지를 물들인 단풍 물결은 무공이라는 이름뿐인 허물만 남은 노승의 머무는 산문 밖으로도 곧 가을이라는 계절을 아름답게 덫칠하겠지요. 저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가을이라는 계절이 잠시 머물다 가면 또 흰 눈으로 덮힌 겨울이 준비될 것입니다. 자연 이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되물을 때마다 제 공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부족하기에 또 채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오늘만큼은 여여해지길 바랍니다.
이제 제 나이쯤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비워야 할 시기인데도 공부만큼은 더 욕심이 나는 것은 저만의 미련인지 모르겠습니다. 젊은시절 만행이라는 이름하에 치열하게 살아오지 못한 미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에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수록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덧없이 살아온 시간이 아쉽기만 합니다. 아직 닦고 다듬어야 할 많은 공부가 남아 있는데, 너무 늦게 알아 버린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와 인연 있는 불자님들에게는 이런저런 소리가 더욱 심해집니다. 그분들에게 하는 소리가 저에게 내리는 꾸지람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서 다시 만나는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 또다시 자연의 이치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마음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한평생 세상을 마주하며 살았지만, 세상 변화되는 이치를 느낄 때마다 제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에 대한 가르침을 초기경전에서 자세하고 간략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잡아함경>의 가르침입니다.
복(福)은 뜨거운 불이 태우지 못하고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는다. 또한 홍수가 세상을 휩쓸어버려도 복(福)은 떠내려 가지 않나니, 나쁜 임금과 험악한 도적이 남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을 때도 사람이 지은 복(福)은 훔쳐가지 못한다. 은혜로운 마음으로 베풀어 쌓은 마음의 창고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리 <별역잡아함경>
수행자에게 익숙하다는 것은 좋은 면들이 있다고들 보지만, 저에게는 뒷걸음질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출가 생활이 전부라 할 수 있는 저에게는 정진 역시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때 생각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부 철이 되면 선방에 들어가서도 칼날 위를 춤추는 광대처럼 제 자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수십년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철모를 때는 출가에 대한 방황도 심했습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젊은 시절 만행이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회도 깊어, 공부할 시기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살아 있다보니, 세상 안에서나 세상 밖에서나 공부의 깊이는 낮고 높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얼마큼 실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겉모습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제 모습 같은 분들을 보면 제가 먼저 답답해 이런 저런 소리를 내지럽니다. 안된다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면 너무 엄격하다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가 아닙니다. 제 젊은 모습 방황하던 모습이라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일러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무소유로 살아왔다고 하면서도, 정작 부처님의 법을 누구보다 많이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스레 생각한 것도 욕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제 자신에게 이렇게 혼자말을 하듯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음을,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출발점이고, 출발점에 서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미래세에 부처의 종자를 심고 있음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이제 더 미룰 수 없습니다. 작지만 작은 씨앗이라도 발아시켜 변치 않는 싹을 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이신 불자들은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바르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내려놓고 진정한 불자가 되어 부처 종자를 키우기를 서원해야 합니다. 이 정진이 한마음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이 세상 미련없이 잘 살았다고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노승의 변명으로 이 거룩한 법석의 한면이 채워져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부끄러움이 여러분들의 수행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 가장 밑에 있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여러분들의 수해에 조금이라도 소금이 되고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되기를 부처님 전에 고개 숙여 발원합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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