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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19/10/16 12:00:02  이한규
이송곤 박사의 ‘불교교육학’강좌(7)
7.초기불교 교단의 교육, 가. 삼학의 수행구조, ㄷ. 혜慧

▲초전법륜지


7.초기불교 교단의 교육

. 삼학의 수행구조

.

 

통찰지로서의 혜

 

의 원어는 ‘paññā’이고, 반야般若로 한역漢譯된다. 대상을 분별해서 알거나(vijānati), 뭉뚱거려 아는 것(sañjānāti)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서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통찰지洞察智를 말하는 것이다. ‘통찰지통찰을 그 특성으로 한다. ‘통찰은 원어가 ‘paṭivedha’로서 이 말은 ‘prati’+‘vyadh’에서 파생한 명사로 꿰뚫음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혜는 혜학慧學(sikkhā)이나 혜온慧蘊(sikkhakkhandha), 또는 증상혜학增上慧學(adhipaññā-sikkhā), 혜의 구족(sampad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혜학은 여섯 가지 신통(六神通) 가운데 누진통漏盡通의 정형구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리고 잡아함경에 의하면, “어떤 것들이 증상혜학인가? 만약 비구가 이 고성제苦聖諦를 실답게 알고, 이 고집성제苦集聖諦, 이 고멸성제苦滅聖諦, 이 고멸도적성제苦滅道跡聖諦를 실답게 안다면 이것을 증상혜학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사성제를 실답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괴로움과 번뇌 등을 알거나 이들 각각의 일어나고, 소멸하며,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꿰뚫어 아는 것, 즉 통찰함이 혜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의 구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의 의미가 혜이든, 혜해탈이든, 혜는 통찰지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통찰지의 기능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통찰지를 가졌다. 성스럽고, 꿰뚫음을 갖추었으며,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일어나고 사라짐으로 향하는 통찰지를 구족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통찰지의 기능이라 한다.”라고 하듯이, 사성제를 꿰뚫어 아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의 교육적 의의는 교육과정의 최종단계에서 통찰지에 의해 닙빠나에 이르는 인간이 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혜의 수행의 앞에 있는 계와 정의 수행과정에 의해 형성된 인간형성이 혜에 이르러 종합되고 완성되며 결국에는 닙빠나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상 계() ·() · ()는 삼학(三學)이라는 말에도 나타나듯이, 불교의 근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대 교육학의 측면에서 볼 때는 교육과정(Curriculum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교육과정(Curriculumn)으로서의 특성

초기불교는 이상과 같이 계, . 혜의 체계적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계, . 혜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과정의 체계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교육과정은 비구가 도달하고자 하는 구경의 목적인 닙빠나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계획이 수립되고 그것이 실천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에서 전개된 교육과정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교육과정이 전개된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 . 혜로 구성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교육과정은 종교로서의 불교만이 갖는 교육과정의 특색을 지닌다. 이 경우 교육과정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목적은 학교교육에서 추구하는 목적인 지식습득과 달리 출가 비구라면 누구나 마음을 닦는 수행과정을 통해 지혜의 힘으로 도달해야 하는 닙빠나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의 순서는 교육목적인 닙빠나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계혜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디가 니까야(Digha Nikaya)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戒律은 이러하고, 三昧는 이러하고, 智慧는 이러하다. 戒律完全히 닦은 자는 큰 結果와 큰 功德을 지닌 三昧를 얻게 된다. 三昧完全히 닦은 자는 큰 結果와 큰 功德을 지닌 智慧를 얻게 된다. 智慧完全히 닦은 마음은 逆流하는 煩惱에서 올바르게 解脫한다. 愛慾逆流, 存在逆流, 無明逆流함에서

 

이상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불교의 교육과정은 점진적인 학습과 점진적인 실천과 점진적인 방법의 원칙에 따라 계율[]삼매[]지혜[]次第的 순서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조준호 교수가 불교수행의 핵은 기본적으로는 계혜 삼학의 엄격한 次第構造에 놓여 있으며, 또한 이와 같이 三學이 필요충분조건으로 갖추어질 때 닙빠나, 해탈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수행론이며, 수행체계라고 󰡔한국선학󰡕 初期佛敎경전에 나타난 수행에 관한 용어와 개념의 검토()-을 중심으로논문<한국선학회, 2002, p.139.>에서 주장하고 있으므로 뒷받침된다.

일반적으로 출가 비구가 닙빠나에 이르기 위한 수행과정에서 제일 먼저 지켜야 것은 이고, 이 계에 의해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 어기지 않도록 防護하는 것이 첫 번째 교육목표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첫 번째 교육목표를 달성한 후 비구가 表象(nimitta)에 의해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상태[心一境性]三昧를 유지하여 近接三昧本三昧의 과정을 거쳐 初禪으로부터 四禪禪定에 이르는 것이 두 번째 교육목표이다.

그런 다음에 비구는 위빠사나 수행에서 洞察智發顯하게 되어 5418, 그리고 無明에 의해 비롯해 輪廻形成케 하는 상카라등이 無常, , 無我인 것을 깨닫고, 갈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닙빠나에 이르는 교육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세 번째 교육목표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닙빠나를 이루기 위해 수행단계별로 하나하나 교육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계혜의 順次로 보았을 때이고, 이와 달리 계혜의 각각의 단계에서 달성해야 하는 여러 가지 교육목표들 상호간에 相入의 관계로 전개될 때와 出家 수행자의 근기에 따르는 경우 등에는 차례에 따르지 않는 수행과정과 교육방법의 전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次第的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非次第的으로 전개되는 초기불교의 혜의 수행과정은 점진적이라고 표현될 수 있으며, 이것은 점진적인 교육경험을 하는 점교적 교육과정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초기불교의 교육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계 · · 혜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의 목적은 깨달음을 향한 인간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불교에서의 인간형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란 어떤지 이번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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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1건)
불교 최고다 불교 유혹하는 종교 많다 속지 말자mm 불교 최고다 불교 유혹하는 종교 많다 속지 말자mm  l  2019.12.13
불교 최고다 불교 유혹하는 종교 많다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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