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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5/27 14:01:35  이한규
이송곤 박사의 불교교육학 강좌(제14회)

전절에서 불교의 교육적 전개는 교육과정의 용어를 빌려 설명하면서 압축(壓縮; Condensation)과 발현(發顯; Representation)의 양상을 띤다고 설명하였다. 부연 설명하면, 초기불교의 교설은 간단 명료한 압축적 양상을 띤 반면에 부파불교는 번쇄하고 복잡한 교리체계로서, 대승불교는 중관과 유식 등의 교리와 더불어 여러 불보살과 불국토가 출현하는 방다한 체계로서 발현의 양상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대별로 압축과 발현의 특성을 띠는 교설의 양상으로 인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불교적 교육자인 출가승들의 교육 내용과 교육방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불교 교설이 나타내고 있는 압축과 발현의 특성은 시대별로 수행과 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시대별로 수행을 위해 의존하는 교설의 내용에서 차이가 나므로 수행하는 방법이 다를 수 밖에 없었고,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방법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즉 텍스트가 초기불교 경전인지, 아니면 대승불교 경전인지, 둘 다 아니고 선어록(禪語錄)인지에 따라서 각각 수행방법에서 차이가 났으며, 또한 이들 각각은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에서 다르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처럼 시대별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이 달라졌다는 점은 시대별로 커리큘럼의 구성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교육과정의 체계가 시대별로 차이가 났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교설에 대해 순서를 정해서 체계적 이해와 더불어 효율적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영어와 수학을 공부할 때 기본적으로 기본영어와 수을 배운 후 종합영어와 수를 배웠듯이, 불교에서도 교육과정시 먼저 순차적으로 불교의 기초교리를 학습한 후 차제적으로 주요 개념과 구체적 내용을 학습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즉 불교적 교사가 불교적 학생을 대상으로 이와 같이 교육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이때 불교적 교사는 불교적 학생의 근기, 즉 학습능력과 주변 학습환경 등을 고려해서 교육해야 한다.

 

순차적 교육과정을 세워 실천가능한 것은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온(; 5) ·(; 12(; 18(; 5또는 22(; 四聖諦(; 12緣起)등의 용어와 그 개념이 부파불교 논서와 대승불교 경전등에 계승되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 경전들에 대해 설명하면, 대승불교 경전들에는 수많은 부처님[多佛]과 수많은 보살[多菩薩]의 등장과 함께 그 당시 환경에 영향을 받은 요소와 용어의 변천 등이 다수 있어서 복잡해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는 초기불교 경전에서 인용하고 있는 온(((((()등의 용어와 개념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저학년에서 배운 수학의 기본개념 또는 영어의 기본 단어와 문법 등이 고학년의 수학과 영어 과목에서 그 기본개념으로서 이어지고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

서구 교육학자인 제롬 브루너(J. Bruner)구조의 중요성(The imporance of structure)’이라는 글에서 학습내용의 기본 구조를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일반적인 요구사항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Jerome S. Bruner, In Search of Pedagogy Volume , p.43에서 인용> 첫째, 기본적인 것, 즉 기본원칙들에 대한 이해는 학습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은 수학과 물리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문학 등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인간의 기억과 관련하여 내용이 구조화된 형태로 되어 있지 않으면 빠르게 기억이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서 과학자들은 쉽게 기억이 가능한 공식에 기반으로 두고 자세한 내용들을 재생하게 되는데, 비록 여러 가지 내용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공식의 기본원리를 학습함으로써 필요시 자세한 내용들을 다시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기본적인 원리들과 개념에 대한 이해는 이후 전개되는 훈련의 전이를 위해서 주요한 길이라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해보겠다. 공식 s=1/2 gt2은 매우 짧막한 공식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공식은 압축과 발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든 기술들을 갈무리한 정수(精髓)로서 나타나고 있다. 즉 간단하게는 공식으로 표현되지만 이 공식에는 여러 가지 상황과 장면들이 함축된 생생하게 자세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초기불교와 이후 전개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관계 등도 이와 같은 모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번쇄한 교설이라고 할 수 있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가운데에서 부처님 당시의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는 핵심교설을 추려내어 교육한다면 불교가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이해되는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지난 호에서 다룬 사성제는 초기불교의 중심교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사성제뿐만 아니라 이글에서 이미 다룬 연기설도 중요한 교설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사성제의 교설이 연기설을 비롯한 중요 교설들을 갈무리한 종합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중심교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매우 중요한 불교교육의 철학적 기초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성제가 됐든, 연기설이 됐든 이들 교설은 부처님 입멸후 변천을 겪게 된다. 사성제는 부파불교의 대표논서인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보면 사성제의 교설이 중심이 되는 사제16행상(四諦十六行相)의 교설로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은 중론(中論)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을 보면 중도적(中道的) 의미의 연기(緣起) ()의 교설로 전개되고 있으며,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아뢰야연기설(阿賴耶緣起說)로서 전개되고 있다. 이들 사성제와 십이연기 교설의 시대적 전개가 초기불교와 비교할 때 교학적으로 서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시대적 교설의 전개로 나타난 사성제와 십이인연설의 원천(源泉)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설의 압축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발현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알면 불교교육의 현장에서 불교교육의 철학적 토대에 바탕을 두고 교육실천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나아가 비록 초기불교와 부파불교, 그리고 대승불교 사이의 시대적 간격과 차이점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측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에 주목하고 비교 연구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고 연속적 불교교육의 방향을 지향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14. 역사적 변천에 따른 불교교육과정의 전개 : 1) 부파불교의 교육과정 : 3(三賢)

 

교육과정(Curriculum)은 교육현장에서의 교육에 관한 계획과 구체적 전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교육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을 준비 또는 계획하고, 실제 교육현장에서 교육을 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를 평가하며, 앞으로의 교육에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이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불교교육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를 비롯한 역사적으로 전개된 교설을 대상으로 교육목적의 설정과 교육내용의 선정, 교육현장에서의 교육결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래 교육과정의 수립 등을 하는 것이 불교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육과정의 계획과 전개에 따라 교육실천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불교교육에서의 교육과정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열반후 교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현대사회에서 불교교육에 관한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시대에 맞게 전개된 교설(여기서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교설 등을 말한다)에서 무엇을 핵심교설로 했는가를 안다면 당시 교육목적과 교육내용 등이 무엇이었으며, 교육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호부터 불교교설의 역사적 변천에 따라 불교교육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개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부처님의 열반후 100년경 교단이 상좌부와 대중부 등 둘로 나뉘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시대상 때문인지 부처님 열반후 200년경 아쇼카왕의 시대에 이르러 교단은 교설에 대한 결집을 세 번째로 하게 된다. 이 결집은 제3결집이라고 부르는데 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다. 왜냐하면 이 아쇼카왕대에 이루어진 제3결집 이후 스리랑카의 경우 마하위하라(大寺派)는 부처님의 교설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아바야기리파와의 경쟁속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한 이후 현재 스리랑카 불교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반면에 인도대륙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게 됨에 따라 20부파로 나뉜 부파불교시대가 전개되었고, 뒤를 이어 대승불교 시대가 열리고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찌보면 아쇼카왕 시대의 제3결집은 교설의 분수령인 셈이다.

 

이번 호에서는 스리랑카의 남방불교와 다른 모습으로 인도대륙에서 전개된 부파불교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특히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이하 구사론)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초기불교의 핵심 교설인 사성제가 구사론에서는 부파적 발현(發顯)16행상(十六行相)의 현관(現觀) 수행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에는 범부(凡夫)에서 성인(聖人)으로 되는 인간형성의 교육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사론은 전체적으로 고()-()-()-() 사성제(四聖諦)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사론은 깨닫지 못한 미혹(迷惑)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든 유정 존재는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고통은 번뇌(煩惱)를 끊지 못한 데에서 비롯한다. 번뇌는 부파불교의 용어로 수면혹(隨眠惑)이라고 불리우는데, 98개의 수면혹, 즉 번뇌가 있다고 한다. 욕계 32, 색계 31, 무색계 31. 도합(都合)해서 총 98개의 번뇌가 이들 3(三界)의 중생에게 있으므로 미혹의 상태에 있는 중생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볼 때 수면혹(隨眠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괴로움의 상태가 욕계, 색계, 무색계 중생의 인간형성의 모습이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98개의 隨眠惑, 98개의 번뇌를 모두 끊을 때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는데, 구사론의 현성품(賢聖品)3(三賢)·4선근(四善根)과 견도(見道수도(修道무학도(無學道)의 수행과정에서 사제16행상(四諦十六行相)의 현관(現觀)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구사론은 부처님의 교설을 정통적으로 계승했다고 하는청정도론(淸淨道論)이 계() · () · () 삼학(三學)의 교학체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여 사성제의 교학체계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각 간의 유기적 연결이 긴밀하게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이 짙다. 비록 현성품의 뒤에 정품(定品)과 지품(智品)이 있기는 하지만 계()에 관한 설명도 청정도론보다 짧게 되어 있어서 이와 같은 인상을 받게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사론의 사성제의 구조는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도달하는 교육목적은 현성품에서의 무학도, 즉 성자위(聖者位)인 아라한의 경지이다. 그리고 교육내용은 구사론 전체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구사론의 교육과정은 이와 같다. 세친이 당시 전해 내려오는 부파불교의 교설을 구사론에서 집대성했기 때문에 구사론은 부파불교의 교육과정을 담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세친은 주지하다시피 경량부의 견지에서 구사론을 저술했는데 그런 점에서 설일체유부의 교설과의 차이점도 구사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어찌보면 구사론은 부파불교의 교육과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인간형성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호는 범부에서 성자가 되기까지의 인간형성의 과정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구사론의 내용 가운데 현성품(賢聖品)이 이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성품을 중심으로 범부에서 성자에 이르기까지 어떤 모습으로 인간형성을 했는가 살펴보기로 한다.

 

그 첫 번째로 성자위(聖者位)에 도달하지 전() 범부가 닦는 수행위인 3(三賢)에 대해서 알아본다. 3현은 5정심(五停心) ·별상염주(別相念住) · 총상염주(總相念住)의 세 가지 선정수행법으로서 사성제의 관법(觀法) 수행 이전에 닦는 지계(持戒)에 의해 계를 닦는 수행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장스님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사성제의 진리를 보는 도[見諦道]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로서 계에 머물러[住戒] 계를 실천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유정이 발심하여 장차 사성제의 진리를 보는 데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계[淸淨尸羅]에 안주한 연후에 문소성등(聞所成等)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봐도 모든 수행의 출발은 계를 지키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방호(防護)되어 도덕적으로 흠결(欠缺)이 없는 인간으로 형성된 다음에 불교수행의 핵심인 [사마타; ][위빠사나; ]의 수행이 뒤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비달마구사론은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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