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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11/06/25 15:26:23 편집국

‘나’가 ‘허공’임일 알아야
⑪ 보림선원

故백봉 새말귀 화두 참구

38년째 토요일 철야 참선

연 2회 일주일 용맹정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18일 토요일 저녁 7시, 기자가 향한 곳은 종로구 부암동이었다. 구하림각 골목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아담한 주택 하나가 나온다.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는 주택이지만 이곳이 바로 20여 명의 수행자들이 매주 철야정진을 펼치고 있는 보림선원이다.

비탈길을 올라오느라 숨이 찼던 기자를 맞아준 이는 보림선원 선원장이자 길상사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는 전근홍 거사였다. 재가자로 40년 가까이 수행을 해오고 있는 그는 20세기 한국의 유마 거사로 추앙 받던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의 제자다. 85년 스승의 입적 이후 현재 26년째 도반들을 이끌어 서울 모임을 꾸려 오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백봉 거사 가르침 중 가장 큰 특징은 새말귀라는 화두법이다. 말귀는 화두(話頭)의 순수한 우리말이며 여기에 새롭다는 의미가 붙여 만들어 낸 말로 새말귀는 신화두라는 뜻이다. 이 수행법은 첫째, 설법을 통해 이론을 깨우치고 둘째는 반드시 무상법신이 유상색신을 굴린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파악한 다음 화두를 지니는 것이다.

전 선원장은 “일상 생활에서 보도 듣고 말하고 생각할 때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이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 듣고 입을 통해 말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것이 공부입니다. 결국 ‘허공으로서의 나’를 인식해야 하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보림선원의 주말 철야정진은 토요일 저녁 8시에 시작해 45분 좌선과 15분 행선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간에 백봉 거사의 육성 법문을 1시간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음날 4시 30분까지 이 참선이 이어진다. 그리고 아침 예불을 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 된다.

전 선원장은 “스승님께서는 방편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공부의 바탕을 마련하는 데 철야정진을 강조하셨습니다. 저와 도반들 역시 그 가르침을 받들어 수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를 매주 이렇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여지없이 하나둘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밝은 얼굴의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겪었던 수행의 기쁨을 펼쳐 놓는다.

남혜정 보살(50세)은 “다른 선원에서 5년을 참선 공부하다가 보림선원을 알게 됐습니다. 이곳에서의 공부는 지엽적인 수행에서 벗어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줬어요. 마음이 우주에서 어떤 이치고 마음이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로 움직여진다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됐어요. 또 정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11년 동안 정진을 해온 최은미 보살(48)은 “막연히 절이 좋았고 또 절에서 기도를 했지만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수행을 하기 전까지는 모든 게 물거품이고 이슬이라는 진리를 받아들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이 수행을 통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행복을 얻게 됐습니다”라고 전했다.

인터넷을 보고 보림선원을 찾아왔다는 이수향 보살(49)은 “철야를 경험해 보고 싶어 이곳을 찾아 왔어요. 백봉 선생님의 법문은 자신의 수행 체험담을 생생하게 설명해주니 제 공부에 많이 도움이 돼요. 자기 성찰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 좋습니다”라며 수행의 보람을 얘기한다.

보림선원의 가장 큰 특징은 여름과 겨울 각 1주일씩 이어지는 철야정진이다. 올 여름 75회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75회를 앞두고 있는 이 정진은 백봉 거사 생전인 1974년 여름 처음부터 시작됐다. 등을 바닥에 대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화두만을 참구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용맹정진을 통해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님도 아닌 재가자들이 1주일 철야가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 선원장은 “참가자 어느 누구도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정진을 마치고야 말죠. 아무리 망상이 많은 사람도 3일이 지나면 정신이 맑아지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런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자신을 이겨내는 공부의 힘을 얻게 되죠”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저녁 8시가 됐다. 회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기자와 함께 얘기를 나누었던 회원들과 전근홍 선원장 역시 가부좌를 틀었다. 한여름밤의 더위도 물리칠 법한 참선이 시작됐다. 수행자들을 보며 보림선원 거사풍 ‘보림삼관’을 떠올려 본다.

가고 옴이 없는 곳에 산자는 무엇이며 죽는 자는 무엇인고?/태산이 눈을 부릅떠서 오니 녹수는 귀를 가리고 가누나/마음 밖에 법 없는데 미한 자는 무엇이며 깨친 자는 무엇인가? /옛길에 풀은 스스로가 푸르르니 바름과 삿됨을 아울러 아니쓰네/너와 내가 비었는데 말하는 자는 무엇이며 듣는 자는 무엇인가?/만약 오늘 일을 논의하면 문득 옛 때 사람을 잊으리.

(010)6332-4096

정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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