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제정한 본래 취지 ‘정법(正法)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한 것
‘불제불개변’의 원칙 고수하며 정법(淨法)을 통해 시대에 맞게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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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성 스님 |
계율 개정의 문제는 2500년의 불교사에서는 물론 현대 한국불교에서도 논쟁거리였다. 오늘날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부처님 시대의 규정을 시대에 맞게 개정할 것이냐, 절대 불변경이냐 하는 문제는 세간의 관심을 잔뜩 모은 뒤 결국엔 없었던 일로 마무리되곤 했다. 이에 대해 율장 및 불교교단사 전공자인 마성 스님의 견해를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들어봤다. <편집자 주>
붓다 입멸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논쟁
율장(Vinaya Piṭaka)의 제반 규정, 즉 ‘율(律)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이것은 ‘붓다께서 제정한 율(律, vinaya)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불제불개변(佛制不改變)의 원칙을 고수(固守)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대에 맞게 개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주제는 붓다의 입멸 직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교 승가(Buddhist Saṅgha)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으며, 아직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사안(事案)이다. 불교교단사(佛敎敎團史)는 ‘불제불개변’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보수파와 시대에 맞게 율(律)을 개정하려는 진보파의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여기서 다시 제기하는 까닭은, 현실적으로 실천 불가능한 율(律)을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초기 승가에서는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의 가르침에 따라 ‘네 가지 생활수단[四依法]’에 의지해 살았다. 그럼에도 승가에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칠불통계게란 법구경 제183게(偈)를 말한다. 즉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앞에서 언급한] 그런데 ‘네 가지 생활수단[四依法]’은 붓다가 제정한 것이 아니다. 붓다 시대의 유행자라면 누구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네 가지 생활수단에 의지해 살았다. 아지바까(Ājīvakā, 邪命外道)와 니간타(Nigaṇṭha, 자이나교) 보다 늦게 출범한 사문석자(沙門釋子, Sākyaputtīya Samaṇa)도 처음에는 유행자들의 관습에 따라 ‘네 가지 생활수단’에 의지해 살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네 가지 생활수단’은 불교에서 거의 사문화(死文化)되었다.
비난받는 행위 방지 위해 율(律) 제정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승가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붓다는 승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학처(學處, sikkhāpada), 즉 율(律)을 제정했다. 이것을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붓다는 학처를 제정한 이후에도 특별한 사정이 생기면 계속해서 학처를 수정해 나갔다. 이것을 ‘수결(隨結, anupaṭipāti)’이라고 한다. 이처럼 붓다가 제정한 율(律)도 절대적이지 않다.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해 나갔다. 수결의 대표적인 사례는 빨리율의 바라이법(波羅夷法) 제1조 음계(婬戒)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붓다가 율(律)을 제정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힐책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비구들이 사문답지 않은 행위로 인해 당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그때마다 율(律)을 제정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는 붓다께서 제정한 율(律)을 후대의 제자들이 마음대로 폐기하거나 개정할 수 없다. 만약 시대에 맞게 율(律)을 계속 수정해 나간다면 결국 원형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승가의 통제 수단인 율의 근간이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가 제정한 학처(學處, sikkhāpada)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가?
개정 여부 놓고, 보수파 진보파 정면충돌
불멸(佛滅) 후 100년경 베살리(Vesālī, 毘舍離)에서 ‘불제불개변’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보수파와 시대에 맞게 율(律)을 개정하려는 진보파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른바 ‘십사(十事, dasavatthūni)에 관한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십사 논쟁은 율(律)에서 금지하고 있는 열 가지 사항의 허용 범위를 확장하려는 비구들과 그것을 강력히 저지하고 기존의 율(律)을 고수하려는 비구들과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7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베살리 결집(혹은 ‘七百結集’이라고도 함)에서 열 가지 사항은 비법(非法)이라는 판정[十事非法]이 내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불교 승가는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와 대중부(大衆部, Mahāsāṃghika)로 분열하게 되었다.
그후 부파불교 시대의 각 부파에서는 정법((淨法, kappa)을 통해 제반 규정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조정해 나갔다. 십사 논쟁은 열 가지 사항이 각각 율(律)에 비추어 정(淨)한가, 부정(不淨)한가를 판정하기 위한 것이다. 즉 율(律)에 비추어 적당한가를 논의한 결과, 모두 부적당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정법(淨法)은 ‘적당함’ ‘문제 없음’ 의미
그런데 정법(淨法, kappa)은 ‘법과 율에 비추어 상응한다’라고 할 때의 상응(相應, kappiya)에 해당하는 용어로 ‘적당함’을 의미한다. ‘이 정도는 인정해도 좋다’라는 의미에서 ‘이와 같이 행하면 범계(犯戒)는 안 된다’라는 의미로까지 사용되어 ‘이와 같이 행하면 문제없다’라는 행동 방법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 용어는 ‘죄가 되는 행동을 어떤 특수한 조작으로 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빨리율 사타법(捨墮法) 제18조의 ‘수축금은전계(受畜金銀錢戒)’에 따르면, 비구는 금(金)・은(銀)・전(錢)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금전을 보시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은 금전을 직접 받는 것은 율(律)에 어긋나므로, 물을 넣은 항아리에 금전을 넣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그러면 율(律)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편법인 셈이다.
다시 말해 정법이란 율(律)에 위반되는 행위를 어떤 특수한 조작으로 합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법은 새로운 규정의 승인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이미 제정된 율(律)에 비추어서 합법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다. 십사 논쟁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율의 추가를 요청하는 주장이 아니라, 기존의 율(律)에 약간의 융통성을 부여하여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요구였다.
한편, 현존하는 빨리율의 「부수(附隨, parivāra)」도 정법(淨法)의 방식에 따라 후대의 제자들이 추가한 것이다. 이처럼 정법(淨法)의 방식은 지금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예를 들면, 미합중국 헌법(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은 1788년 6월 21일 제정된 이후, 원문은 그대로 둔 채 계속 수정해 나간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수정 헌법이다. 유대교의 종교적 법규 모음집인 탈무드(Talmud)는 미쉬나(Mishna, 가르침)와 게마라(Gemara, 보충) 둘로 이루어져 있다. 유대교의 율법 학자 랍비(Rabbi)들은 미쉬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시대와 장소에 맞게 적용할지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는데, 이것을 ‘게마라’라고 한다. 또한 빨리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에서 발행한 정전(正典)과 주석서(註釋書)는 물론 번역서도 나중에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원문은 그대로 두고, 정정(corrections), 부록(appendix), 보충(supplement) 등으로 개정해 나간다.
학처(學處), 즉 율(律)은 절대적인 것 아냐
율장에 나타난 바라제목차의 학처를 제정한 목적이나 취지는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함으로써 율장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미래 세대에까지 전할 수 있다. 붓다가 율장을 제정한 본래 취지는 ‘정법이 오래 머물도록[正法久住]’ 하기 위함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율장은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불제불개변’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정법(淨法)을 통해 시대에 맞게 수정해 나간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생활수단’, 즉 사의법(四依法)도 오늘날에는 거의 사문화(死文化)되었다. 그럼에도 구족계를 수여할 때 반드시 일러준다. 비록 현재에는 지킬 수 없는 것일지라도 출가자의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 생활수단’이 갖고 있는 본래의 취지와 의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붓다께서 직접 제정한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학처(學處, sikkhāpada)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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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성 스님 저술 '빨리율장' 표지 |
■ 마성 스님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철학석사(M.Phil.). 태국 마하출라롱콘라자위댜라야대학교 박사과정 수학.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철학박사(Ph.D) 2021년 불교평론 뇌허불교학술상을 수상.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현재는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저서로 『사캬무니 붓다』(대숲바람, 2010), 『왕초보 초기불교 박사되다』(민족사, 2012), 『잡아함경 강의』(인북스, 2019), 초기불교사상(팔리문헌연구소, 2021), 불교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민족사, 2022: 제20회 불교출판문화상 우수상 수상), 『빨리율장』(팔리문헌연구소, 2025)등이 있고,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