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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4/24 12:44:45  편집부장
법경정사의 만다라
일체의 존재 법칙

일체의 존재 법칙

 

법경 정사(총지종 밀교연구소장/철학박사/동국대 강사)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어떠한 법칙으로 존재하는가? 즉 일체는 어떤 법칙으로 존재하는가? 일체는 바로 연기(緣起)로써 존재한다. 연기법은 불교 교설의 핵심이자 기본사상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바로 일체 존재의 법칙성이다.

그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인과(因果)의 법칙이다. 모든 존재는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원인에 의해서 생멸변화(生滅變化)한다는 얘기다. 즉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미운 감정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며,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다 원인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으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인()과 연()의 화합(和合)이라 하며, 이러한 인과관계를 인연생기(因緣生起)라 한다. 줄여서 연기(緣起)라 한다. 세상의 변화현상은 인과 연이 화합하여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서 생멸변화하는 사물에 있어서 그 변화라는 현상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이를 게송으로 읊으셨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내 마음에 미운 감정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미운 것이고, 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내게 있으므로 저 사람이 좋은 것이다. 내 마음이 인()이고 미운 저 사람이 과()이다.

그래서 나와 저 사람은 인과관계로서 존재한다. 이를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라 한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또 부처님은 이를 법주법계(法住法界)라 하였다. 생멸 변화의 무상함 속에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하여 있으므로 모두가 무상하며 생멸 변화하는데 이러한 무상함 속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하고, 사물의 생멸 변화는 인연화합(因緣和合)에 의한 것이며,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정한 법칙의 존재를 일러서 법주(法住)’라고 한다. 무상한 것 속에 일정한 법칙이 상주(常住)하고 있어 각 존재에는 위와 같은 법칙이 항상 머물러 있다. 법주(法住)의 자구(字句)를 그대로 풀이하면, ‘은 존재를 말하고, ‘는 법칙이 상주하고 있다는 말이다.

, 이러한 모든 존재는 일정한 법칙을 요소로 해서 성립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를 일러 경전에서는 법계(法界)’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계()는 구성요소(構成要素)나 층()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법주법계라고 하면, 무상한 존재의 일정한 법칙과 구성요소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일정한 법칙을 갖는 모든 존재를 불교에서는 ()’이라 한다. 즉 모든 존재는 일정한 법칙의 성질, 법성(法性)을 지니므로 ()’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를 ()’ 또는 일체(一切)’라 한다. 그래서 모든 존재와 일체를 일러 제법(諸法)’이라고 한다.

인간의 괴로움과 번뇌의 원인은 바로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 무명으로 인하여 번뇌 망상과 괴로움의 고통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열두 가지로 설명한 것이 십이연기(十二緣起)’이다. 즉 사견(邪見)사사유(邪思惟)사어(邪語)사업(邪業)사명(邪命)사정진(邪精進)사념(邪念)사정(邪正)이 연()하여서 일어나게 된다. 그 설명이 바로 12연기이다.

이에 반해서, ()이 있는 곳에는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팔정도(八正道)이다. 무명을 비롯한 12연기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를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지혜 있는 삶이 곧 팔정도요, 무명 속에 사는 삶을 열두 가지로 시설(施說)한 것이다.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그 전개 과정에 대한 설명이 바로 십이연기이다. 십이연기는 무명(無明), (), (), 명색(名色), 육처(六處), (), (), (), )), (), (), 노사(老死)이다.

무명(無明)은 어리석다, 지혜가 없는 것이다. 실재가 아닌 것과 실재성이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 망상(妄想)이다. 즉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이다. ()은 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 하는 그릇된 작용이다. 이를 업()이라고 한다. ()으로 인하여 식()이 일어난다. ()은 식별, 분별한다는 뜻이다. 분별로 인하여 명색(名色), 육처(六處), (), ()가 일어나고, (), (), (), (), 노사(老死)가 일어난다. 즉 그릇된 생각으로 인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는 과정속에서 우비고뇌(憂悲苦惱)의 고통과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십이연기의 가르침이다. 십이연기를 설하는 목적은 무명 속에 빠져 살지 말고 팔정도(八正道)를 행하여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다.

일체 존재의 법칙은 연기에 있고, 연기는 무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자각이 올바른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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