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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4/27 17:51:50  이한규
고려 최고의 예술 사경(寫經) 맥 잇기 외길 45년 사경장 다길(多吉) 김경호 씨
사경 45년 다길 김경호 씨, 우리나라 최초 국가무형문화재 사경장 지정 예고

▲우리나라 최초 국가무형문화재 사경장으로 지정된 다길 김경호 원장


2020년으로 접어들자마자 문화재청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사경장(寫經匠)’ 지정이 예고됐다.

영광의 얼굴은 오로지 사경 외길 45년을 걸어온 한국전통사경연구원 다길(多吉) 김경호 원장이다.


▲20여 년 동안 준비했던 ‘다길 김경호 쓴 전통사경 華藏’ 5권 1질을 지리산 화엄사에서 발간했다.


사경 역사와 사경 관계자들에게는 고려시대 이후 700여년 만에 주어진 경사다. ‘코로나19’ 와중이지만 지리산 화엄사 주지 草岩 德門 스님은 700년 만에 단절된 사경원의 전통을 잇는 전통사경원을 개원하면서 다길을 원장으로 위촉했다. 위촉과 더불어 다길은 20여 년 동안 준비했던 다길 김경호 쓴 전통사경 華藏’ 51질을 5색의 비단 주머니에 싸서 사천왕과 백천의 천신과 함께 사경이 봉안된 화엄사에 공양했다. 2020년 들어 연이은 경사는 바로 700여년 만에 전통사경을 개척하고 부활하겠다는 서원의 결과이자 45년 사경으로 일관한 여러 겁 사경 공덕과 불보살의 크나큰 가피이기도 했다.


▲탑(법화경 견보탑품을 제작하는 장면


세존이시여, 제가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밝혀 설하겠사오며 제가 사경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경하기를 권하며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갖가지 향기로운 꽃과 도향가루향말향소향이며 꽃다발영락번기일산풍악 등으로 공양하겠습니다.”

다길은 華藏’ 5권을 내놓으며 아무쪼록 사경과 인연을 맺어 무량공덕을 쌓으시는 모든 사경수행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시방제불보살님의 무한 가피 속에 사경 정진할 수 있게 되길 일심으로 기원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국보235호 리메이크작품(세로18.4, 가로38.0cm)
 

 

사경(寫經)의 역사는 372년 소수림왕2년 전진의 제3대 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함께 불경을 보내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시작 된다. 이어 소수림왕은 초문사라는 절을 창건하고 순도로 하여금 관리하게 했는데 이것이 한국불교의 시작이자 사경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신라 경덕왕 때 만들어진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43.

사경은 고려시대 불교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는 큰 축의 하나였으나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으로 인해 700년의 아름다운 전통이 단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불모지에서 사경의 과학적 이론과 체계를 찾아 오늘에 이르렀다.


▲감지금니 반야심경 세로20.0cm 가로44.0.cm (변상도 20.0cm, 14.0.cm)


多吉(다길) 김경호, 그가 우리나라 전통유산 사경장(寫經匠)으로서 우뚝 선 배경에는 단절의 역사와 주위의 차가운 사시(斜視)와 그릇된 인식들을 끈질기게 참고 버텨온 결과물이기에 주목의 대상이 되고 더없이 값지게 평가된다.

사경은 지극한 불심과 정성의 예술입니다.”

1mm 공간에 5~10개의 선이 들어찬다고 상상해보자. 서예 중 가장 단정한 글씨라는 해서(楷書)를 붓으로 써내려간 글자 한 개의 크기가 2~3mm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인간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가늠이 안 된다. 과연 신의 솜씨고 불가사의다.


▲감지금니 화엄경 권제31 변상도 국보215호 리메이크작품(세로20.0cm, 가로35.7cm)


사경이 1700여년 이어온 우리나라 찬란한 문화유산일진대 이를 계승하려는 국가적인 지원은 소홀했다. ‘사경장지정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빙상계의 스타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경기에 나가 뛰는 시간은 평균 630초라고 한다.

다길이 사경 한 작품에 집중해 쏟아 붓는 시간은 줄잡아 평균 2000시간이 소요된다. 연습도 없고 그렇다고 수능시험도 없다. 비교될 수 없는 땀 범벅의 작업이 있을 뿐, 더구나 이 같은 과정을 이해하거나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항상 모든 과정이 외롭고 고독하다.

사경 600여년의 단절의 역사는 중국서도 높이 평가받았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했고 불모지로 만들었다. 누구에게 사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론도 황무지였지만 다길은 고려 사경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독자적 이론을 체계화, 과학화시켰다.

전생이 사경승(寫經僧) 아닐까

다길을 대하면서 스스로 이런 생각까지 했다.


▲옴마니반메훔만다라-- 33.9cm,33.9cm 2018년작


우리나라 사경은 김경호

일찌기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이 예고


▲한자 한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경을 하는 다길 김경호 원장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은 바로 다길 김경호 원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지금 있는 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깨달았고 실천했으며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경은 김경호다. 글씨는 김경호 처럼 써야 된다.”


1997년 서예계의 최고 위치에 계셨던 여초 김응현 선생과 꽃뜰 이미경 선생은 다길을 제 자식으로 거둬주고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정상의 두 서예가를 통해 어른은 역시 어른이라는 사실과 맨 꼭대기에 올라가면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를 배웠다. 사경의 일인자 위치에 선 지금, 매사 일거일동에서 실천하고 하심으로 일관하는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 싶다.

남자 서예가 중 김 선생처럼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틀림없이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금산사 개산 1400주년 기념으로 열린 외길 김경호 사경전에서 꽃뜰 이미경 선생은 외길을 이렇게 극찬했다. 여초, 꽃들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부터 타고난 예술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사경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한 장충식 교수와 권희경 교수 등 사계의 권위자들 역시 사경에 관한 유물을 찾아다니며 개척 발전시켜온 다길의 예술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난 해 중국서 개최한 <김경호 사경예술>서도 한국 사경의 예술성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김경호 선생 만큼 쓸 사람은 14억 인구 중 다섯 명도 안 될 겁니다.”

어렵사리 공개된 국보급 소식 소동파 작품과 나란히 전시된 다길의 작품을 보고 중국 통역사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나라 때 세워진 상해의 대표적인 사찰 정안사 방장 스님은 다길의 작품집을 보고 중국 대륙에 사경붐을 일으키겠다며 중국어 출판을 약속했다. 나아가 그의 작품을 돌에 새겨 사찰 경내에 세우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잇몸 뼈도 녹아든 필사의 예술

1mm 우주에 옮기는 작업에 세계인 모두 경탄


▲감지금니7층보탑 (법화경 견보탑품) 제작장면
 

 
▲감지금니7층보탑 법화경견보탑품
 

▲감지금니7층보탑(법화경 견보탑품)을 설명하는 다길 김경호 원장


중국, 미국 등 가는 곳, 머무는 곳마다 뭇 사람들은 한 입으로 다길의 사경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한다.

우리의 삶은 두 번은 없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사경에 관한 한 다길의 작품은 혼신의 힘의 결정체이고 그 밀도가 금강석(金剛石)과 비견된다. 1mm 우주에 옮기는 예술이라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신문 방송 등 매스컴으로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신문(당시 매일신문)에서 인터뷰기사가 나온 2004년 이후다. 곧 이어 KBS 1TV를 통해 얼굴이 알려지면서 사경계의 주목의 대상이 됐다.

20025월호 <월간 서예문화>외길 경호 전통사경 사진전 관세음보살 42를 모두 게재했고 2017년 서예전문지 <월간 서예>는 다길을 표지로 내놨다. 서예잡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90년대 초반 <월간 서예문화> 발행인은 10여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훗날 전설로 남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경은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700년의 단절을 다길은 그 두터운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문을 열었다.

고행도 익숙해지니 견딜만 합니다.”

20m가 넘는 감지금니일불일자화엄경약한게’, 7.5X663Cm에 불과한 감지금니칠층보탑법화경견포탑품등 작품마다 소요되는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다길은 10년 전 어금니를 모두 뽑았다. 작업실 온도는 금분, 은분, 아교 등 연유로 섭씨 35도이어야 하고 습도는 90을 유지해야만 하니 절로 잇몸 뼈가 녹아내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 작품에 임하면 9개월, 하루 10시간여에 걸친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요구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땀 씻고 붓을 빨아야 된다. 0.1mm에 집중한 힘겹고 고된 작업을 상상해보라. 오죽하면 필사의 예술이라고 일컫겠는가. 그래서인가 외길의 사경 예술이 알려지면서 매스컴마다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신라 명필 김생, 고려 탄현 사경 뛰어나

좌우명 매 순간 최선을 다 하자

 

▲감지금니 일불일자(화엄경약찬게)


1990년 미술협회가 주관한 대한민국서예대전서 입선작으로 뽑혔다. 그러나 다길은 실망했다. 서단에 대한 부정적 회의감이 이때부터 싹텄다.

세월이 흘러 19971회불교사경대회에서 현장 사경으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그의 예술성이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조계종총무원·동방연서회가 공동 주최한 이 대회에서 여초 김응현 선생은 다길의 작품을 딱 찍어 대상으로 선정했다.

당대 최고 서예가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사경만으로 전업을 결심했으니까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말았다.

다길의 학창 생활은 다양, 자유분방 그 말대로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다길의 서예는 네 살 때 부친의 영향을 받아 한문공부와 한글쓰기로 시작됐다. 월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당대 해서의 명필 저수량체와 구양순체를 서도대자전한 권만으로 배움의 길을 열었다. 마땅한 선생도 없이 독학으로 서예를 시작했지만 전국, 지역에서 주관한 서예전서 거의 입상을 차지했다. 당시 독학으로 배운 저수량체와 구양순체가 오늘의 사경장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도 감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제북중학교 다닐 때, 국한문 서예와 목탄을 통한 기본 뎃상 등을 배웠다. 물론 전국대회 출전해 입상한 것도 예외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배운 사경은 불교의식을 베껴쓰는 의식이다. 이리 남성고에 입학해서 룸비니불교학생회에 가입, 불교에 심취한 것과, 선승이 되겠다며 부모 몰래 야간열차 타고 해남 대흥사로 가 세속을 초월한 2년의 세월을 토굴 속에서 보냈다. 방방곡곡 아들 찾아 헤매시던 아버지 손에 잡혀 집으로 돌아온 것도 세 차례나 된다. 용담(龍潭), 원조(圓照)라는 법명은 이 때 얻었고 그 인연이 사경과 연관이 깊다.

비석 글씨를 쓸 만큼 서예 솜씨가 출중했던 것도 2학년 때였다.

전북대학교 국문과 재학 시절에 그는 도 쓰고 서예도 계속했다. 동아일보가 주관한 전국학생휘호대회서 공동 우승과 시 부문 공모에 우수상을 차지했다. 당시 모든 공모에서 1등 아니면 거부할 정도의 자신감이 충만하던 시절, 글씨 잘 쓰고 한문 잘 알아서 족히 200만자를 썼던 군대생활도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호국문예와 장병문예로 국방부장관상을 받았던 것도 군대생활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제대 후 신문기자를 꿈꿨지만 인연이 닿지 않는다. 오늘의 사경장 탄생을 생각한다면 다행 중 다행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부처님과의 인연이고 가피가 아닌가 싶다.

호암미술관 등 사경 작품이 있다면 어디든 찾고 또 찾아다니며 배운 것은 사경의 연대와 구성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베껴 쓰는 것이지 예술이냐

이제 사경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사경을 빼고 서예사를 쓸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 앞에 한 점, 한 획 혼신을 쏟아야하는 사경에 대한 위상이 높아가고 있다.

신라 명필 김생은 사경을 많이 쓴 인물이었다. 고려시대 명필 탄현스님, 팔만대장경의 최우, 조선 명필 안평대군 등도 사경으로 이름을 널리 알려졌다.

1999년 가을학기부터 시작한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서 서예지도자과정 지도교수 등 후진양성과 방송강의, 개인전, 단체전 등 헤아릴 수 없는 다길의 면면에서 700년 만의 사경 번창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사경예술세계에 매우 소중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과연 위대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자리를 빌어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로 일자, 일획 몰입하고 있을 서기 372년에 전해진 사경 역사와 다길 선생을 떠올려본다

  

다길(多吉) 김경호 원장은?

대한민국 정통사경 기능전승자(고용노동부장관, 2010-5)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한국전통사경연구원 원장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전통사경원 원장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사경전공, 문학석사)

·예총회장상(1984), 국방부장관상(1988), 교육부장관상(1996)

·1회 불교사경대회 대상(조계종 총무원·동방연서회 공동주최)

·전통사경 개인전 및 초대개인전(서울, 해인사,LA,NY,중국상해 등) 21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사경전 케미셔너, 초대작가 역임

·연세대·동국대 사회교육원, 원광대 서예학과 등 사경 강사 역임

·불교TV 사경수행법 강의 <또다른 수행, 사경> 25

·CA클레어몬트 링컨대학교 불상 복장에 전통사경 봉안 등 다수

·전통사경특강 및 금니사경제작시연(LA카운티미술관 등) 60여회

·NY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통사경 작품 보관 등 다수

·뉴욕 귄즈 자치구 의장 “20121012, 외길 김경호의 날선포

·국가지정문화재 조사, 연구, 자문, 동영상 출연 다수(문화재청 등)

·각종 공모전 사경부문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역임 약 30

·저서 한국의 사경18, 공저 수행법 연구3

 

글 모악재(茅岳齋) · 사진 이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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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국가무형문화재 사경장 지정된 다길 김경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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