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明)에 휩싸인 인간은 어떤 현상이나 사상을 신비화하고 맹종하는 습성이 있다. 어리석은 습성은 종종 상식 밖의 폭력성으로 비화한다. 폭력적인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합리적인 문화는 확산하고 있지만, 폭력성은 줄지 않고 있다. AI가 인류의 평화와 존엄한 삶을 지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이점 이후 본격적인 인공지능의 시대가 돼도, 인간은 우주의 4% 정도에 불과한 가시적인 현상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여전히 좁은 의식의 경계에 매몰된 채, 양극적 현상의 모순 속에 있게 된다. 사회가 정밀해질수록, 모순의 양상은 오히려 더욱 미세하고 복잡해질 수 있다.
보편적 생명의식이 깨이지 않는 이상, 인간의 존엄성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명제로 전락하기 쉽다.
물질세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서양과학은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첨단 물리학의 발전 과정에서, 서양은 동양의 정신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양자물리학의 영향으로 인간의 정신을 깨우는 정신문화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명상이다. 그러나 명상은 정신집중의 한 방법일 뿐이다. 앞선 칼럼에서 살펴보았듯이, 명상으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전체를 다 밝혀도 전도몽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양자물리학도 여전히 상대성의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리가 드러나지 않으면, 여전히 무명일 뿐이다.
명상으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인 안도감에 불과하다. 도(道)는 방석 위에 있지 않다. 방석 밖의 요동치는 현실에서 존엄성은 그저 상대적인 존중에 불과하다. 완전한 지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존재의 기쁨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환상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존엄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존엄성의 측면에서 성공적인 삶은 부, 권력, 명예 등의 피상적인 성취 여부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에 있다. 따라서 존엄성은 특정한 지위가 아닌 삶의 방식에 달려있다.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의 태도를 완전히 혁신해야 한다. 우리는 고정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명사적(名詞的) 존재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영원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영원성과 함께 하는 유일한 길은 생명의 율려작용(律呂作用)에 동참하는 동사적(動詞的) 삶이다.
삶의 방식에 관해 《법화경》은 많은 영감을 준다. 부처님은 일상과 열반을 분리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해 번뇌화택(煩惱火宅) 속에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음을 말씀했다. 불도에 관한 일체의 경계를 다 허묾으로써 대자유의 삶을 제시했다. 모든 삶의 형식과 방식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장 숭엄한 법열(法悅)을 누릴 수 있다. 걸림이 없는 자유를 누리되 바른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이 무아(無我)이자 진아(眞我)의 삶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현상과 본질을 잇는 도리 수행이다. 나는 생활불교수행에 관한 일련의 칼럼을 통해 삶의 도리를 완성하는 대표적인 수행법으로써 팔정도(八正道)를 여러 관점에서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존엄한 삶과 죽음의 측면에서 팔정도 수행을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정리하겠다.
존엄성은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품격에 있다. 팔정도는 인생의 품격을 완성하는 바른길이다.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그리고 정정이 삶 속에서 녹아서 하나로 체화될 때 팔정도는 완성된다. 8가지 바른길을 통해 수행과 수도, 소승과 대승은 하나로 연결된다.
우선 정견(正見)의 함양으로 수행에 들어간다. 일차적인 정견 확립은 부처님 말씀의 핵심 파악이 관건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각론보다는 개론서를 보면 좋다. 내 경우에는 좀 특수하게도 구마라집이 한역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번역하면서, 이 경을 해석한 용수보살의 《대지도론》을 동시에 참고했다. 불교백과사전이라고 평가되는 《대지도론》을 통해서 나는 중도의 이치를 이해했다.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그리고 정명(正命)은 일상에서 바른 생각, 바른말, 바른 행동, 그리고 바른 생계 활동을 하는 일이다. 현실의 삶을 사는 우리는 현상적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고 체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도리에 맞게 하면, 업을 정화할 수 있다. 삼업이 청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계 활동을 하면, 정명의 단계에서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정명은 정견에 기초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밝지 않으면, 시류에 휩쓸려 직업을 선택하기 쉽다. 일시적으로 돈과 권세가 몰리는 직업에서는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자신의 개성과 시대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무엇보다 인격을 함양할 수 있는 직업의 선택이 중요하다. 한편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기술의 발전이 급변하는 시대이므로, 생애주기별로 직업의 관점을 달리할 필요도 있다.
사회생활은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거친 현실에서 비상식적인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존엄성을 유지하는 길은 온갖 업의 습기(習氣)에 물들지 않는 노력에 있다. 깨끗하지 않은 습기가 가득한 환경에서 생계 활동을 지속하면, 사회의 탁한 흐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굳어지기 쉬운 습기를 제거하는 집중수행이 필요하다.
수행을 전문적으로 할 수 없는 일반인은 간헐적 집중수행을 통해 업을 청정히 하고 수행력을 높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때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그리고 정정(正定)의 집중수행을 한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특별한 수행처에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본원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 집중수행의 기간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알맞게 정하면 된다. 직장인이라면, 주말을 이용한 주기적인 집중수행으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사업자는 여유가 있는 날을 집중수행일로 정해두고, 상황에 맞게 일정을 짜면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전원 지역에 수행공간을 마련해두고 도농융합형 생활을 누리면서 수행하면 최상이다.
팔정도는 보살행으로 최종 완성된다. 팔정도의 삶이 사회로 확대되어 생명공동체를 이루면, 현실 차원의 화엄 세계는 이루어진다. 일상에서 팔정도의 실천이 바로 보살행이다. 보살행을 지속하면, 시나브로 우리의 삶은 진리의 삶으로 전환된다. 도리에 맞게 산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숭고하고 존엄하다.
삶의 존엄성은 직업의 귀천, 지위의 고하 등과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평생 부, 권력, 명예 등을 추구한 사람일수록, 노후에 존엄성이 급속도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경우든 팔정도의 수행을 통해 자의식을 조화롭게 소통할 때,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된다.
한편 한 인간의 임종과 장례를 보면, 그 사람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상갓집에 가면, 슬픔의 눈물이 가득하다. 망자를 애도하는 마음도 크지만, 고인의 죽음 속에 투영된 자신의 삶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팔정도의 도리에 맞게 산 사람의 임종은 슬프지 않다. 임종을 맞이하는 가족도 슬픔보다는 존경심이 더 크게 우러나오게 된다.
죽음학의 측면에서 보면,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임종 시에 슬픔의 울음소리보다는 존경의 마음이나 바른 도리를 일깨우는 추도사가 고인을 편안하게 한다. 슬픔은 영혼의 새 여정을 힘들게 한다. 슬픔은 업의 습기를 더욱 가중할 뿐이다.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자. 고인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애도의 예식보다는 존엄한 삶의 의욕을 북돋우는 말씀이 바람직하다. 깨달음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낭독하면 가장 좋다.
고인을 위한 최고의 보상은 남겨진 사람들이 도리에 맞게 잘 사는 일이다. 따라서 고인의 새로운 출발에 장애가 되는 슬픈 마음을 버리고, 각자 삶의 각오를 다지는 방향으로 장례문화를 개선하자. 존엄하게 죽기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아야 한다. 일상에서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으로 심신의 모든 행위에 앞서 “도리에 맞는가?”를 화두로 추천하고 싶다.
한편 건강은 존엄한 삶의 기본요건이다. 건강을 잃으면, 생명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생명의 활기가 없는 존엄성은 죽은 나무와 같다. 이 점에서, 나는 건강을 수행의 핵심 기준으로 본다. 특별한 사고나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면, 수행을 제대로 한 사람은 건강하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수행 과정에서 뭔가 균형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와 정신 중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수행을 완성할 수 없다. 일상에서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 일생을 도리에 맞게 산다면, 건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수행자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고 힘든 과정이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고 바른 도리의 삶을 살려고 해도, 요동치는 현실에 직면하면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불도를 닦는 방법과 내용은 큰 변화가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직면한 현실의 경계를 소통하는 삶이 연기적 수행이다.
이제는 AI 시대의 변화에 맞는 수행체계가 필요하다. 모든 정보가 연결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체 수행의 도리를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보편 도리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팔정도의 도리로 모든 종교사상을 통섭하는 수행 시스템을 만든 연후에, 맞춤형 수행법을 개인의 변화에 맞게 적용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된다. 오프라인의 소규모 수행공간과 온라인의 대규모 수행콘텐츠 보급을 통해 수행문화를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생활불교수행에 관한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여기서 밝힌 내용을 엮어서 책으로 내고, 뜻 있는 분들과 함께 실천에 옮길 예정이다.
*수행문화, 인간교육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