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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6/03 11:59:36  이한규
恨의 가수 25년 무명 인생 진성(眞聲)의 소락빼기(?) 가수왕 진성
법명 大覺은 ‘큰 사람이 돼라’는 뜻

가창력이 소름이다


▲트로트 소리꾼으로 불리는 불자가수 대각(大覺) 진성 씨


진성의 노래를 듣고 수많은 관중들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가창력은 진성의 진성(眞聲), 즉 진짜 소리꾼을 탄생시켰고 이 시대 트로트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쓰게 만들었다.

마음만 불자입니다.”

 

부처님오신날며칠을 앞두고 어렵사리 만난 자리에서 부처님과의 인연을 이렇게 꺼냈다. 물론 겸손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릿고개 때 굶주리고 아팠던 어린 시절, 절을 찾아 끼니를 채우고 떡까지 얻어먹을 수 있었던 곳이 다름 아닌 절이었기에 불교는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고향에 있는 내소사와 은평구에 소재 진관사를 자주 찾는 연유도 이 인연과 무관치 않다.


 
▲진성 씨는 무대에 서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의 유명한 진성이라는 가수가 된 것도 부처님의 가피로 여기는 내면에 숨겨진 불심.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천수경등등을 특유의 목소리로 독송하는 불교방송 대담 프로그램을 보면 말 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참 불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큰 사람이 돼라대각(大覺)’이라는 법명을 주신 스님은 그를 향해 성불하십시오라며 발원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발원이 진성의 오늘을 있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꺼라 착각도 마라


 
▲미스터트롯 심사위원이었던 진성 씨와 톱7 임영웅,영탁,이찬원,김호중,정동원,장민호,김희재와 함께

 

그의 노래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 가사를 읽으면 진성의 내면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몹쓸 죽을 병에 시달리면서도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생각했고 그 분들에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불살랐으며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했다.

그런 가운데 생사를 앞둔 투병 중에도 가슴속에 응어리진 원망들을 떨쳐버리려 했다.

 

공연문화 판도 바꾼 코로나19’

<보릿고개> 등으로 트로트 역사 새로 써

지금 가요계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가수들이 위축돼 있고 공연문화 판도도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와중에 잔치 등 각종 행사, KBS 등 공중파와 종편 방송 출연, 유튜브 시대에 걸 맞는 활약 탓인가 가수 진성은 이 시대 트로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의 보이스 트로트계의 BTS’, <미스터트롯>과 함께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가수 진성에게 쏟아지는 환호와 호칭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8년에 안동 출신 김병걸씨가 작사한 <안동역에서>가 진성의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거두자 안동시는 역 광장에 안동역 앞에서노래비를 세우는가 하면 가수 진성을 안동시 명예시민과 함께 안동시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그 후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이 노래 하나로 영남과 호남이 하나 되는 동서 화해의 장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전라도 사투리 쓰면서 경상도서 수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누구보다 후배들을 아끼는 진성 씨, 인터뷰중 찾아온 후배가수 박혜신 양과 김수찬 군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뿐인가, 40년 전 조용필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 최고 히트곡으로 탄생됐다.

2015년에 본인이 직접 작사한 <보릿고개><안동역에서>와 나란히 금영 차트 베스트5 중 부동의 국민애창곡 1,2위를 차지하고 있고 전통가요보존회가 메들리 음반판매 100만장 판매가수에게 주는 트로트메들리 4대천왕에 선정돼 30년 무명생활을 벗어나게 만들었다. 타고난 창법의 가수로 우뚝 섰을 뿐만 아니라 입담 좋은 예능꾼이자 아는 것이 많아 척척 대답을 잘하는 진 박사진성은 그가 작사한 20여곡 노래들 모두 고금과 남녀, 노소를 초월해 인기를 치솟게 해 새로운 트로트 시대를 연 주역이 됐다.

열창, 열창, 열창, 장르 구분없이 한의 목소리로 사정없이 내지른(?) 소락빼기(소리), 이것이 바로 쾌속 질주하는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세 살 때부터 고아 아닌 고아

까만 밤 하얗게 새우며 배고픔 겪어


 

 

세 살 때 부모님이 가출해 고아와 다름없는 모진 고생을 했다는 진성의 과거사는 <보릿고개> <안동역에서>가 히트되면서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너무너무 잘 알려진 전설적인 이야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된다. 심청 얘기서나 나올법한 젖동냥으로 어린 생명을 부지하고 이 동네 저 동네, 이집 저집 다니며 눈칫밥 얻어먹고 자란 어린 시절의 수많은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유랑극단을 따라다녔는가 하면 중국집 배달도 했다는 그 어린 시절 특기할 것은 말 보다 노래를 먼저 배웠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가출로 인한 어렸을 때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외로움과의 사투였고 가수의 길에 들어선 30년 무명생활 또한 견디기 힘든 역경의 세월이었다.

오죽하면 반 지하, 옥탑방서 등을 눞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을까.

 

너무나 불우했던 고아 아닌 고아, ‘미스터트롯프로그램에서 손자뻘인 후배 정동원이 <보릿고개>를 부를 때 심사위원 위치도 잊은 채 눈물을 훔치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는 진성의 한 서린 과거사를 읽었다. 또한 가슴 깊이 새겨진 회한들이 내 일처럼 다가왔다.


▲텃밭에다 직접 채소를 길러 먹는다는 진성 씨
 

 

진성은 불과 4~5세 나이에 담벼락에 기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인가요에 귀를 기울여가며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 등 당시 유행가를 귀에 담았다. 그리고 금새 들은 노래들을 기억하고 흥얼대며 산과 들을 누볐다. 바야흐로 어둠의 시절이던 그 때가 이미 지금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지만 잊고 싶은 과거이기도 했다.

누구 노래든 한 번 들으면 바로 따라 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환경이 처절했던 아픈 시절이었지만 당시 유명가수들 노래를 한 번 들으면 바로 머릿속에 입력하는 천재성을 드러내 어느새 진성철(본명) 어린이의 이름은 전북 부안에서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불과 5~6세의 천재 어린이, 9만여 인구(지금은 4만여명)가 살았던 전북 부안에서 몇 십 곡을 서슴없이 불러 젖히는 진성의 노래솜씨가 알려지자 노래만으로도 군것질도 하고 끼니를 때울 수가 있게 됐다. 그에게는 퍽 다행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어른들의 사랑과 기대도 독차지했으니 천애 고아 그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실감하게 한 시기이기도 했다.

천재적 노래가사 입력은 일제 때 징용 당했다가 광복군에 입대했던 노래를 잘 불렀다는 부친의 타고난 유전자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안동역에서> 뜨면서 찾아온 혈액암

심장판막증과 겹쳐 생사 넘나들어

진성의 30년 무명생활은 한 마디로 슬픔과 아픔을 홀로 삼켜야 했던 애증의 세월이었다. <안동역에서>가 인기를 끌면서 좀 살만했는가 싶었는데 신의 저주였는지 림프형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이라는 병이 겹쳐 찾아오면서 부모가 원망스럽고 사회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솟구치기 일쑤였다.

팬들에게 잊혀지는 게 무척 겁이 났습니다.”

진성을 가리켜 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했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30년 무명가수 생활을 하며 맺혀진 아픔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

님의 옷깃 스칠라

서쪽에서 부는 바람

님의 살갗 스칠라

 

가요와 민요의 접목이랄까, 아니면 가슴의 응어리를 승화한 것일까, 1994년에 발표한 방송 데뷔곡 <님의 등불>은 원래 나훈아에게 갈 노래였음에도 진성 자신의 인생의 지침돌이라고 할 정도로 아끼는 노래가 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하심의 마음으로 흐느끼듯 부른 <님의 등불>은 불교적인 노래라서 지금도 산사의 스님들과 수많은 노보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어느 노보살은 쌍가락지까지 빼주었다니 진성에 대한 성원이 얼마나 컸던가 짐작이 간다.

2008년에 내놓아 2012년경 폭발적 인기를 몰고 온 진성의 인생곡 <안동역에서>2016년 발표한 <보릿고개> 등은 미스터트롯방송과 함께 새로운 트로트 역사를 써야할 대표곡으로 꼽힌다.


 

 

<보릿고개> 가사를 쓰면서 흘린 남모를 눈물, 예기(禮記)에도 보릿고개, 즉 맥춤(麥秋)라고 해서 보리를 거둬들이는 시절 이야기가 나오지만 진성에게 보릿고개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야 하는 굶주림의 어두운 시절이었기에 마음이 아파왔던 것 같다.

아마도 보릿고개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1960년 태어나 올해 환갑을 넘긴 진성으로서는 당시 굶주림의 대명사였던 보릿고개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는데 언덕은커녕 고립무원 망망대해에 한 잎 떠도는 외로운 신세가 바로 진성 어린이였고 배고품의 시절이었으니 관중을 향해 울부짖듯 터뜨리는 목소리는 한의 맺힘과 맺음일 수밖에 없다.

한에 대한 풀이를 찾아봤다. 맺힘은 타인의 것이고 맺음은 스르로에 의한 것, 풀림이라고 설명된다. 속담과 설화와 민요, 그리고 판소리는 처절한 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진성은 생사를 넘나들던 암 투병 중에도 가슴 속 원망을 떨쳐버리려 노력했고 가슴에 응어리를 노래로 승화시킬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에 흐느끼는 듯 터져 나오는 목소리, 이를 가리켜 진성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가요와 민요, 창의 접목에서 나오는 천상의 소리로 평가한다.

비록 낳아준 부모지만 오죽하면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을까. 그렇지만 공전의 히트곡 <보릿고개><울엄마> 가사에서 구구절절 긴 세월 초근목피로 살아온 어머니의 한숨과 애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을 볼 때 원망스러울 망정 부모님을 향한 효심을 은연 읽을 수가 있었다.

부모의 은혜는 한량없이 크고 깊다는 부처님의 설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 아니던가.

 

경기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대왕저수지부근 낯선 약속장소, 제법 비까지 내리는 날의 만남은 잘 아는 후배의 <보릿고개>라는 베이커리 커피점 개업행사와 겹친 탓에 현장은 분주했다. 그러나 무척이나 바쁠 터인이 시대 큰 가수답지 않게 시간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진성의 자비무적(慈悲無敵) 불심을 읽게 했다.

 

오늘도 내일 같이

고양시 덕양구서 텃밭을 일구고 술을 마셔도 혼자 마신다는 이 시대 참 소리꾼의 평생 좌우명은 단순 명쾌다. 별명 또한 얼굴이 직사각형인데다 순수하고 구수하다 해서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잘 생기지 않은 메주로 불린다고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일대기가 소설로 나오면 더 아픈 지나간 이야기를 들을 지도 모른다.

아프지 말고 늘 건강하세요.”

 

장소가 분주했던 탓에 헤어지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어수선한 만남, 그 와중에 진성에게 보낸 한 네티즌의 메시지가 우리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길주 전문위원 · 사진 이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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