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2.12.8 (목)
 http://www.bulgyonews.co.kr/news/37068
발행일시: 2022/08/19 12:15:04  이한규
김기원교수의 차시문학의 감상(19회)
4 차시문학의 감상 개념

8) 향음주례(鄕飮酒禮)에 육행(六行)을 통한 차시문학 감상 접근

지난 18호 설명처럼 향음주례(鄕飮酒禮)란 음식을 먹고 한 잔 마시는 모습을 보아야 하늘이 열리는 도()가 있다 하듯이 감로약수(甘露若水)의 세계가 최우선되어야 차시문학에 근접할 문턱이 마련되고 차시문학을 감상할 만큼 활량 없이 넓은 덕()을 설명했다.

이번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 가운데 육행(六行 여섯 가지 행실)을 통하여 차시문학의 감상 접근을 고찰하고자 한다. 소학집설(小學輯說)에 주희가 설명한 육행(六行)은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와 의미가 비슷하여 보살의 실천행이 포함된다.

 

우선 주희가 설명한 육행은 여섯 가지로 부모를 봉양을 잘하는 효()의 행위, ()을 공경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형제의 의리, 구족(九族)인 고조, 증조 부 나 자 손 증손 현손 간의 가족사랑, 혼인(婚姻)한 처가 인척과 외부 외부사람을 존대함, 친구 간에 의리와 믿음을 다할 것, 친척 간에 가난한 자를 돌봄이라 이다.

모든 내용이 행동미학이 아니라 추상미학으로 진행되어 활성화의 결과를 얻는 윤리 행위이다. 말로서 글로서 되는 것 아니라 자기중심의 생각으로 구성하고 주위마저 자기 울림관계가 매우 호의적으로 성립되어 상호 연계가 잘 인정된다. 그런 과정이 진행되는 감정을 일률적 행위로 결국 조건 없는 통일이다 어느 쪽이던 예술의 의미로 잔여 하여 결정된다.

그런 과정의 성립은 그냥 움직임()이 아니고 과정없는 움직임이 작용하는 과정이 성립되는 동안 차의 색향미(色香美)가 미학적 행()을 넓이고 매사에 추상적 가치로 접목함으로서 은은한 반야의 미소로 작품의 답이 성립된다. 담쟁이 덩굴처럼 인접의 여유 땅에 자리를 잡고 보탬 없이 가지를 뺏는 현상은 예술인만이 느끼는 미학이고 예술만의 강제 점유라 한다. 세상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 관계가 있는 사람끼리 모임은 비밀 없이 유지되고 정확한 형상이 노출되어 더 힘찬 행위예술을 성립시킨다, 글을 짓고 글을 쓰는 것은 혼자도 가능하다. 그러나 글 내용의 생각은 공동적 무리이고 목 씨이다, 떼의 혼자 형성은 불가능하다. 여러 방법으로 정확히 감상하여 새로운 침투가 필요하다. 차를 혼자 마시면 색향미를 못 느끼게 되어 독차(獨茶)라 한다. 두 사람 이상 모여 즐거워 마시면 합자(合茶). 여러 사람이 모여 마시면 연차(聯茶) 라 하듯이 차시문학의 이해와 감상, 언어의 변조. 감정의 감상은 혼자 가능한 행위라 하겠으나 자기발전에 불과하다. 사실 누구나 물을 끓어서 그냥 마시도 되는데 왜 좋은 물을 찾을 까? 좋은 물은 과연 무엇일까. 화두 같은 내용이다. 차는 물맛에 따라 좌우 된다, 삼천리강산에 물 찾았다는 기행문이 수십 편 전한다. 근래 모 차인은 가장을 버리고 물을 찾아갔는데 이직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이야기. 마치냐, “야바위 세상”, 차 맛은 물맛이다, 영양의 보고이다 면력성의 창고이다. 물은 끓어야 물속에 수십 여종의 촉진제 물질이 녹아 차와 더불어 신비로운 색향미가 풍부한 찻물이 된다. 차를 마시는 민족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우려 마신다. 우리는 짧은 이 공간을 김경희가 쓴 <작설차>를 읽고 차 한 잔 마셔야 마음도 몸도 여유를 가지고 차시문학을 만들어 봅시다.

 

들에도 나무에도 영 / 분열됨 없는 마음 / 방안 가득히 펼쳐 놓고 / 차를 마신다.

처음 보는 강물 / 따라가며 / 마음 속 아우성 가라앉고 / 눈물마다 / 푸름푸름한 실레임

무거운 치장 / 먼지 묻은 일상은 / 문밖에 걸어 두고

맑은 솔바람 소리에 / 몸을 기대어 / 한 모금 머금으면 / ! 저 만큼 치 / 극락정토가 보일 듯싶다

 

일반문학은 감정만으로 시. 시조, 수필, 소설 과목을 지혜의 연상이 성립시키는 에너지가 있다지만 차시문학은 차를 마셔 보아야 얻는 영통 성 에너지가 필요하다. 맛 향색의 융합으로 얻는 변화가 감상의 영혼을 발생시키고 새로운 과정으로 접근하는 형상이 모두 불가사의한 개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차향에 취해 허공을 잡는 듯. 자연의 색깔에 취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곧 차색의 난타라 한다. 속 깊은 맑은 샘을 혼자 다 마시고 싶은 자신감의 감정이 차시 문학적 감정이고 순식에 자신을 바뀐다.

약은 먹으면 20~30분 후에 반응하지만 차는 마시는 순간에 첫맛을 느끼는 순간이 일반 문학이 아니고 차시문학이다, 여러분이 금방 마시고 읽은 작설차 시에서 방안을 가득히 펼쳐 놓은 삶의 과정이나 자연 속에서 그대로 느끼는 감동과 생각을 드러낼 것으로 믿는다.

맑은 솔바람 소리를 감상하는 일은 차를 머금고 감상하는 행위가 된다. 일반적 문학과 차시문학 간에 차이의 돌출이 아니 되어도 차를 마시거나 차로 인하여 생기는 감정에 취하고 멋에 취하고 향에 취했던 머리, 마음, 눈이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차의 음미를 통하여 행위 예술은 모두가 스스로 소생하고 성립된다. 주례, 다례가 행위 예술이라면 차시문학은 배격할 수 없는 뿌리가 잔재하여 육행 전체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음 를 감상해 봅시다. 궁궐의 부용정에 황제(黃帝), 광직(廣織), 김노(金輅) 세분이 부용꽃이 핀 곳을 찾아 찻자리를 마련하고 차를 끓이면서 연못에 걸려있는 달을 보면서 감탄하여 세분이 차례로 중얼거린 내용을 기록한 차시 내용이라 하겠다.

 

황제 : 청풍은 물위에 도착하고 / 비가 그친 후 달빛이 동림 위에 걸려있네

광직 : 석상 위에 풀 그림자 누각 밑에 걸려 있고 / 연꽃 향기 약하고 강하게 피어지네.

 

김노 : 희미한 병 빛은 창 위에 걸려 있고 / 화촉의 빛은 연꽃 가운데 비치고 있네.

 

황제 : 이 밤의 학 울음소리에 잠을 깨었구나.

 

흔히 차의 예술, 차시문학을 선반 위에 올려놓은 맛있는 과실이라 했다. 감정적 반응은 다르다. 먹는 맛, 맛의 감응이 자율신경을 자극함으로 먹어야 되겠다는 선입 감정의 집합체가 곧 차의 예술이고 차시문학이라 하겠다. 황제, 광작, 감노 세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부용꽃을 보는 느낌은 다르게 표현했지만 부용꽃이라는 이미지는 그대로 잘 융합되어 이어짐은 사폭을 좀 넓게 좀 가까워 행해지는 행위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감정의 차이는 없었다.

<소학집설>을 통하여 좀 더 넓게 표시하였으나 차시문학은 마시는 행위의 표현이 감동을 일으키는 생각이 음률이고 그대로 언어로 표기하는 것이 차시문학의 감동 접근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가르침이고 배움이다. 가르침 배움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워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시킨다.

 

금호스님 방에 전하는 <차를 달이다> 차시를 감상해 봅니다.

 

솔바람 솔솔 불어 치달리는 연기 몰라 / 하늘하늘 가로 풍겨 시냇가에 멀어지네

/ 동창에 달 떠오래도 잠 아직 못 이루고 /수병을 들고 돌아가서 찬 샘에 물 깃네.


▲녹동 김기원교수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l   신문사 소개   l   연혁   l   조직구성   l   본사 및 지사 연락처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copyrightⓒ2001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21, 1415호(낙원동, 종로오피스텔)
편집국·업무국 02)734-0777 Fax : 02)734-0779
주간불교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