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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7/28 16:05:41  이한규
불교는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사천 신해사에 오랜만에 여름 손님이 찾아왔다. 장맛비가 그친 도량 곳곳에 피어나는 꽃들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근심을 잊게 한다는 불자의 말에 그런 생각하기 전에 정성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을 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이 든다. 나 역시 꽃을 보는 것만으로 근심을 잊기 때문이다.


불자가 사찰에 와서 근심을 잊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좋은 일이리라. 왜냐하면 세속의 부침 속에서 살다가 부처님 품 안으로 들어왔으니, 어떤 때보다 행복하리라. 그러나 수행도량은 늘 치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부처님 품 안이 푸근하면서도 냉철한 것이 바로 진리를 알아가는 도량이기 때문이다. 행복하면서도 치열하게 진리의 세계로 정진하는 곳이 바로 부처님 도량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재가불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그 가운데 초기 가르침을 엮어 둔 경전이 아함부가 있다. 그 가운데 불교는 만인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말씀이 폭염을 씻기는 단비처럼 가슴에 내려 앉는다.

 

부처님이 사밧티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날 상가바라라는 바라문 청년이 부처님을 찾아와 인사하고 이렇게 물었다.

우리 바라문들은 자진해서 신에게 공물을 올립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합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제자들은 집을 나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마음을 조어하고, 번뇌를 끊는 수행을 합니다. 그것은 혼자만 괴로움을 멸진(滅盡)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혼자만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이지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처님은 대답 대신 그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날 이 세상에 정각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진리의 길이다. 이것이 실천의 길이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실천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러니 너희들도 또한 이 길을 걸으며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멸진시키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도 번뇌를 멸진시키고 마음의 평화로움을 얻었다. 그리하여 다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펴고,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해 가르침을 펴서 그 숫자가 수천 수만에 이르렀다. 나와 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은 길을 간다면 이를 혼자만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간다고 하겠느냐.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간다고 하겠느냐?”

질문을 받은 상가바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집을 나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결코 혼자만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기 위해 수행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아함 35143<상가라경> 중에서

 

이 세상에 진리가 넘쳐난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행복을 전하고 있는 전국 각 지역에 기독교의 교회와 불교의 사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성당과 무속 역시 고달픈 중생을 위로하고 있다. 종교시설이 많아도, 종교인이 많아도 우리사회는 행복하지 않다. 과도하게 경쟁을 부추키는 사회 풍토로 인해 사람들이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불가의 전국 각 선방에서는 수없는 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 개인의 수행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이 역시 만인의 행복을 위한 길을 가고 있는 보살이라 할 수 있다. 눈푸른 선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날이 그 어느때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리고 꽃이 핀다. 신해사 주변에 언제 어떻게 꽃을 피운 야생화가 지천이다. 예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생명의 오롯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인과(因果)의 지중한 소식으로 잠시 편안하게 생각하던 마음이 바로 선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아나고, ()에는 반드시 인()이 있기 마련이다. 한 생명의 자라고 피고 지는 그 모습이 그대로 설법이 되어 노승의 마음에 법문이 되어 피었다 진다. 어릴 적 들었던 노스님의 품안에서 옛날이야기처럼 들었던 가르침이 더욱 그리워진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만인을 위해 행복의 가르침을 설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중생의 구제하려는 보살심에 근원 한다.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부처님께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이 세상에 오셨다. 그 가르침을 펴시기 위해 길에서 태어났고 길에서 열반에 드셨다. 인류 최고의 스승이신 부처님의 행적에는 오늘 저렇게 피어오른 이름모를 야생화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불교는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을 인도하는 종교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정진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보살도를 꽃피우게 될 것이다. 중생이라는 마음 대신 미래세에는 부처가 된다는 생각으로 늘 자신을 관조하며 보시하고 최선을 다해 선행에 힘써자

      

신해사 회주 무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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