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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6/01/23 15:21:23  이한규
세월과 죽음의 무게

세월은 참으로 쉴 틈을 주지 않고 빨리도 흐릅니다. 벌써 병오년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차곡차곡 채우며 지나고 있습니다. 뭘 하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매달 돌아오는 ‘세간·출세간’의 원고를 작성하는 1월 20일이라는 시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촌각을 내달리는 시계추는 점점 2027년이라는 시간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월은 나이가 먹은 데로 흐른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가 싶습니다. 노승의 세납이 70을 넘겨 중반에 이르자, 시속 70킬로 이상으로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어릴 적은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고, 청년기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세월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다가올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느꼈던 죽음의 무게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지혜가 나도 모르게 자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이가 드니 죽음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단절의 두려움과 알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 이후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리 염려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잠이 들면 내일 아침이면 다시 깨어나듯,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탄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불교 수행자는 어제보다 오늘 더 열심히 살았고, 오늘 열심히 살았기에 미래세에는 멋진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보시를 행하고 선업을 쌓은 분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말법악세의 이 세상을 벗어나면 또 다른 육신을 받아 부처님의 지견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자들의 죽음은 오히려 축제이며 그저 한 여름날의 꿈처럼 짧게 여겨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 철저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로 남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내일이 그리고 또 다른 내일이 한없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 생각들이 철없어 보였지만, 그 당시는 내일은 무한정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장년이 되고 다시 노승이라 불리면서, 내일이라는 가치는 점점 삶의 테두리에서 뒤로 돌릴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 느끼곤 합니다. 우리들에게 내일이라는 것이 오기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대로 오지 않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철이 든다는 것이 쉽고도 어려운 일인가 싶습니다.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면 우리에게 남은 수명이 얼마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님들을 뵙고 짧은 법문이라도 할 자리가 되면, “방일하지 말고 다투지 말라. 탐욕의 즐거움을 길들이지 말라. 고요히 생각하고 방일하지 않으면 큰 즐거움을 얻을수 있다.”는 <법구경>의 가르침을 전하곤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처음에도 중간에도 끝에도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진리의 향기를 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부처님께서 설한 진리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향한 자신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우리에게 한없이 많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원히 살 것이라 생각도 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믿으면서, 그 현상이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죽음 역시 나와는 별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우리 곁에서 항시 있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지인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셨지만 급하게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에는 무서운 것도 없고, 넘쳐나는 것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이 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마음이 바쁘지기 시작합니다. 수행하기 바쁘기 때문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틈조차 없습니다. 더욱이 중생들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입니다. 고집멸도에서 벗어나기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라는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나’라는 집착에서 시기와 질투가 생기고 그로 인한 과보가 다시 괴로움으로 돌아옵니다.

 

그토록 집착하는 ‘나’는 무엇일까요? ‘나’라는 이 육신을 가진 존재는 지수화풍 4대(地水火風 四大)가 잠시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결과물일 뿐입니다. 4대로 이루어진 ‘나’를 낱낱이 분석해 보면 그 무엇을 ‘나’라 이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곧 허물어질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 4대는 인연이 다하면 다시 본래대로 흩어지니 참으로 무상한 것이 ‘나’입니다. 모이고 흩어지는 인연의 이치를 깨달으면 무엇을 집착하고 괴로워할 것인가요? 이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 불교가 제시하는 참 진리 안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라는 상을 조금씩 내려놓고, 주변을 살피면서 살아가는 불자들이 되도록 더욱 정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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