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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5/11/20 12:05:07  이한규
서동석 박사의 AI시대 생활불교수행(22)
마음집중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장애요소 제거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서 마음을 닦자면, 경율론 삼장에서 말하는 ‘마음(心)’에 관한 바른 견해가 필요하다. 불교 수행이 어려운 요소 중의 하나가 마음에 대한 오해다. 중생의 마음은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 즉 반연심(攀緣心)으로서 무명(無明)이다. 반면 마음의 본체는 보리 열반의 청정한 본심으로서 밝은 광명(光明)이다. 중생의 혼탁한 무명심(無明心)과 부처님의 청정한 광명심(光明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한문 경율론에는 반연심도 마음(心)으로, 생명 본래의 마음도 마음(心)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에 관한 오해가 더욱 증폭되었다. 육조 혜능 이후, 특히 대혜고선사의 간화선이 등장한 이후에 정견(正見)이 많이 혼탁해졌다. 선종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다(心卽是佛).”라고 하여, 마음을 바로 관하면 성불에 이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행의 결과로써 얻는 본래면목이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 그 반작용으로 수행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수증(修證)과 행원(行願)이 상당히 경시되었다.


심지어 분별심 그대로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해석하고, 함부로 경거망동하는 사례도 많이 일어났다. 조사와 대선사의 원래 의도는 본성에 이르는 직접적인 방편으로써 마음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사견(邪見)에 빠진 후학들은 본래의 마음과 현상의 마음을 혼동하고, 도리에 벗어난 행위를 일삼았다. 부처님의 성취를 자신들의 경지로 전도몽상한 결과다.


《화엄경》에 “법계의 본성을 본다면 일체가 마음이 만든 것이다(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불교의 기본 정률(定律)이 나온다. 물론 여기서 마음은 주관과 객관을 모두 아우르고 일체에서 걸림이 없는 상태인 본심이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 오온을 단계별로 점차 청정하게 변화시켜 생로병사의 환상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심을 찾음으로써 이 몸 이대로 열반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분별 망상을 그대로 유지하고는 본심을 회복할 수 없다. 다행히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과 선지식들은 본심에 이르는 여러 방편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과 선지식의 법문이 모두 방편의 법문이다. 묘한 것은 분별심을 활용한 방편들을 통해 본심을 회복한다는 점이다. 분별심이 본심과 연결되는 방편이 되어, 우리를 고해의 바다에서 열반으로 인도하는 지혜의 배가 된다.


수행의 핵심은 현상에 집중해서 그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다. 현상 속에 본질에 이르는 수행의 도리가 숨어있다. 그것은 매개 의식을 통해 현상의 마음 흐름을 집중적으로 관찰하여 본심에 이르는 이치다. 물론 매개 의식은 육식(六識)에 속한다. 만약 이것을 마음의 본질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현상에 집중하는 의식은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비추어 보는 작용인 ‘조견(照見)’을 이루기 위한 전(前) 단계 의식작용이다.


관자재보살의 관(觀)은 모든 의식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직관이지만, 육식 경계의 알아차림에서도 ‘비추어 보는’ 의식행위는 필요하다. 마음 수행의 첫 단계는 관찰하는 의식을 느끼는 일이다. 감정과 사고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람은 처음에는 이 의식을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관찰력이 세밀하고 깊어지면, 생각이 이어지는 매듭의 시작과 끝을 느낄 수 있다. 조견의 의식방식을 통해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비추어 보는 일이 마음 수행의 기본 원리다.


지(知)를 느꼈다면, 이제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한다. 집중대상은 의도적으로 만든 매개 의식으로써 대상이다. 이를테면, 염불, 화두, 호흡, 소리, 만트라(주문) 등이다. 혹은 마음의 흐름 자체를 집중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육식의 의식이 집중대상에 집중해서 비추어 보면서 일념(一念)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과 삶이 천지인 삼재와 합일되는 과정이 수행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체중생과의 화합은 무아(無我)의 상태로 몰입한 결과다.


하지만 의식집중에 방해되는 요소는 너무도 많다. 의식집중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마음이 고요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곧바로 불청객이 찾아온다. 제일 먼저 오는 손님이 바로 망념(妄念)이다. 망념(妄念)은 의식을 혼탁하게 하는 가장 흔하고 강력한 적이다. 적을 제대로 알아야 적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점에서, 망념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망념은 헛된 생각이다. 이 망상은 본래 외부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망상 속에서 인연의 성이 세워진다(於妄想中, 立因緣性).”라고 했다. 유식에서는 망상의 인연법을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고 한다. 망상이 외계(外界)의 인연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도 외계라는 사실이다. 제육식(第六識)의 관점에서 보면 전오식(前五識), 즉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그리고 신식(身識)이 바로 바깥 경계다. 말하자면, 망념이란 외계인 전오식의 변화로부터 야기된 의식의 반응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사대(四大)와 분별의식 자체가 외계다. 따라서 마음(생각)이란 곧 오음(五陰)이고, 확장하면 팔식(八識)이 된다.


망념을 제거하는 일 자체가 중요한 수행이다. 하지만 망념은 아무리 쫓으려 해도 결코 쫓을 수 없다. 《원각경》은 망념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준다. “어느 때든 망념을 일으키지 말며, 망상이 일어나도 없애려 하지 말며, 망상의 경계에 머물러도 뚜렷이 알려고 하지 말며, 뚜렷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실을 판단하려 하지 말라(居一切時, 不起妄念, 於諸妄心, 亦不息滅, 住妄想境, 不可了知, 於無了知, 不辨眞實).” 가장 범하기 쉬운 착오는 망상의 경계를 만나면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인데, 뚜렷이 아는 것 역시 망상이다. 일체의 망념은 모두 환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는데, “환상임을 알면 떠나야 하며, 임시방편적 방법을 쓰지 마라(知幻卽離, 不作方便).”는 가르침이다. 망념이 환상임을 알면 환상은 곧 사라져 버리므로, 다른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 만약 인위적으로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망상에 또 다른 망상을 추가하는 꼴이 된다. 위에서 망상을 손님에 비유했는데, 이 말 속에 비결이 있다. 객진번뇌(客塵煩惱)인 망상을 손님을 대하듯 하면 된다. 망상에 끌려다니지 않게 신중하게 마음 챙김을 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놔두면, 잡념은 점차 잦아든다.


마음집중이 어려운 원인은 몸에도 있다. 초보자는 망상과 더불어 곧바로 찾아오는 불청객이 바로 몸의 이러저러한 반응이나 고통이다. 몸속의 여러 가지 변화나 고통을 느끼고 집착하는 신견(身見) 때문에, 마음집중이 어렵다. 예를 들어, 다리를 틀고 앉아 정좌 수행에 들어갈 때, 처음에는 몸이 편안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저리기 시작한다. 한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이것은 엉덩이에서 다리까지 기(氣)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무리하게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지 말고, 양반다리를 해도 좋다. 그것도 힘들면, 의자에 앉거나 똑바로 서서 마음집중을 해도 무방하다. 다만 일체 행위에서 바른 자세는 신견을 없애는 토대가 된다. 물론 염식(念息)을 통해 몸의 기운을 조절할 수 있지만, 호흡법은 별도의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더불어 눈 밝은 지도자의 지도가 필요하다.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겠다. 중요한 것은 마음집중의 목적이고, 그 과정의 수행법은 수단에 불과하다.


마음 수행에 장애가 되는 또 다른 원인 중에 음욕(淫慾)과 음식이 있다. 음욕이 일어나면 화기(火氣)와 수기(水氣)가 발동해서 정기(精氣)를 흩어지게 한다. 그 결과, 심신의 조화가 파괴된다. 더불어 음식은 기(氣) 순환에 절대적인 작용을 미친다. 과식을 금하고, 자신의 체질에 맞게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중수행의 시기에는 가능한 채식하는 것이 좋다. 채식은 위(胃)의 활동과 기(氣)의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이 오후 불식(不食)과 더불어 철저한 금욕 생활인 두타행(頭陀行)을 강조한 것은 심신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바른 선정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금욕적 두타행 자체는 진리에 이르는 일시적 수단일 뿐, 수행의 영원한 목적은 아니다.


위(胃)는 사대(四大) 중 토(土)에 해당하며, 몸의 근간이 된다. 위를 깨끗이 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주일에 한 번씩 금식하면서 물만 마시는 것도 좋다. 평소에는 소식하되 영양분은 충분히 섭취한다. 인체의 균형작용을 무시한 섭생은 심신의 조화를 해친다. 수행과정 중에서 음식 조절은 생리(生理)와 심리(心理)를 조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선정을 얻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도리에 맞지 않는 삶에 있다. 평소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선정과 직결된다. 이것은 소승의 측면에선 계(戒), 대승의 측면에선 행원(行願)과 관련이 있다.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의 몸으로 짓는 죄,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의 입으로 짓는 죄, 그리고 탐애(貪愛), 진에(瞋恚), 치암(痴暗)의 생각으로 짓는 죄 등 십악(十惡)을 다스리지 않고는 선정에 들어갈 수 없다. 계(戒)를 좀 더 승화시키면, 일상의 선행과 자비행으로 연결된다. 자비의 마음으로 선행을 실천하면, 마음이 순화되어 선정을 얻기가 쉽다. 예를 들어, 머무르는 바 없는 보시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심리와 생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으로 보면, 업인(業因)의 종자가 수행과 관계가 깊다. 불도를 닦기 위해서는 지혜와 복덕이 필요하다. 수행의 자량(資糧)이 없으면, 수행의 집중력을 얻기 힘들다. 인연 공덕이 부족하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발생하여 수행을 방해한다. 이런 경우에는 일상에서 좋은 업을 많이 짓고 공덕을 쌓는 수밖에 없다. 지혜와 복덕을 키우는 씨앗이 되는 선행은 선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같은 차원에서, 일상의 마음집중은 원만하고 걸림 없이 인연을 상대하는 힘을 제공한다. 

*수행문화, 인간교육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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