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20일, 간화선 정로정진회상 개산
切切孜孜하라면 요즘사람 아무도 수행안해
간절히 힘써 하는 수행 현대인에게 안맞아
조계종 참선전문도량 원명선원, 활인선원 선원장 대효스님은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에 걸쳐 간화선의 복원을 위한 ‘간화선 정로 정진회상’을 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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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인선원 대효스님 |
대효스님은 22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간화선을 최상승이라고 하지만 활구참구의 진의를 모르고 관법이나 위빠사나 등을 배회하는 선객을 골라내 바르게 인도하는 장치가 없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실정이며, 간화선 수행의 위기라는 말을 감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진단하고, “해답은 부처님의 혜명을 고스란히 이어 달마스님을 거쳐 내려온 조사선의 수행방법인 화두참구에서 찾는다면 종지에 따라 본분에 입각하여 기초부터 다지며 새롭게 출발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며 스님을 위한 간화선 정로정진회상의 개산취지를 설명했다.
스님은 “간화선은 최상승 법문이다. 그러나 간화선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불교를 망쳤다. 이번 간화선 정로 정진회상은 ‘제2의 선의 길을 나선다’는 부제로 진행한다”며 “스님들이 선방에서 제대로된 화두를 참구해야만 하며, 그 길을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간화선의 복원이라 할 수있다”고 피력했다.
간화선의 복원이란 현재 많은 수선납자들이 화두참선의 길로 바로 가고 있는지 거슬러 가고 있는지 모르고 방석만 지키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릇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화두를 들어 단박에 문제를 해결하는 활구참구의 진의를 모르고 관법이나 위빠사나 등으로 배회하는 선객들을 바르게 인도하고자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간화선의 복원이 필요한 이유는 “전국에는 백여개의 선원과 2천여명의 납자들이 세계유일의 무형문화유산인 안거를 나고 있기 때문이다”며 이들을 물질문화의 미망에서 올바른 정신문화를 갖출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로정진회상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하안거와 동안거 중간에 2회씩 일년에 4회에 걸쳐 납자 스님들을 대상으로 활구참구를 지도하는 자리이다. 이번에는 1일 3~4회에 걸쳐 선원장 대효스님의 위없는 법문과 소참법문, 가행정진, 개별탁마로 진행된다. 외견상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지만 간과할 수 없는 두가지 큰 특징이 있다.
하나는 화두참구방법이다. 그릇알고 헤매는 화두간택 화두참구방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가듯 자세하게 풀어나가는 방법이다.
둘째는 개별독참이다. 간화선 수행납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진 기간동안 매일 개별독참을 통해 올곧은 간화선 수행점검을 하게 된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점검이다. 이러한 독참의 전통은 스승으로부터의 개인지도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점검이 사라졌다.
간화선은 바로 깨치는 것이네 이것이 안되니 염불이니 업장소멸이니 하며 잡스러운 것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을 점검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작금의 불교에서 간화선이 지적받고 있는 것은 점검없는 간화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스님은 “불가의 ‘절절자자(切切孜孜)’ 가르침이 간화선 망쳤다 ”고 말했다. 간절한 마음을 갖고 부단한 노력하기를 강조하는 ‘절절자자(切切孜孜)’ 수행풍토는 참선을 시작도 하기전에 질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효스님은 “수행은 슬금슬금 노는듯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화두를 들면 대부분 잡념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없애려 하기 때문에 힘들다. 참선 이야기를 듣고 1~2분만 화두를 들어도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간화선이기 때문에 화두참구에 드는 것이 중요하지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비유들어 말한기를 “땅을 팠는데 금싸라기가 나왔다면 언젠가 금덩이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꾸준히 금을 찾는 것이 중요한것 아니냐”는 말로 비유했다.
이번정진회상은 10일을 3기로 나누어 3일까지는 법문, 6일까지는 법문 및 점검, 10일까지는 정진 및 점검으로 스스로 화두참구를 해나갈 수있도록 구성됐다. 대상은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총 40명이며, 동참금은 5만원이다.
정진회상을 지도할 대효스님은 1966년 문경 김룡사에서 출가해 제방 선원에서 안거했다. 당대 선지식인 서옹,서암,성철,향곡,경봉 스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1976년 제주 원명선원을 시작으로 안성 활인선원 등을 열어 재가자 중심으로 30여년간 간화선 지도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