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연구원(이사장 김종화, 원장 리영자)은 11월 2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광주 유마정사에서 불연 이기영 박사 18주기 추모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이기영 박사가 설립한 전국 구도회 회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추모법회에 이어 오후 1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자유인과 한용운’을 주제로 강연했다.
불연 이기영 박사(1922~1996)는 독일 루벵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불교학을 현대화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그의 역작인 〈원효사상〉은 원효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국불교연구원과 구도회를 창립 재가불교을 펼치고 보살정신으로 살아온 실천적 종교인이기도 했다.
〈편집자 주〉
불교가 할 일은 불경을 내려놓는 일 뿐이다
불교신봉자들은 근대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부처님 정신으로 무장한 각계의 인재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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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직 서울대명예교수 |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조선불교유신론〉은 전근대적인 조선불교를 근대 자유주의로 해석한 책이다. 당시 학문적 연구가 미약한 상황에서 한용운 처럼 전근대적인 학문을 근대적인 자유주의와 결합시켜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책은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만해의 비범함이다.”
안병직 명예교수(서울대)는 한국불교연구원이 경기도 광주 유마정사에서 개최한 ‘불연 이기영 박사 제18주기 추모법회 및 특별대강연회’에서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만해의 자유주의를 평했다.
안교수는 ‘대자유인과 한용운’을 주제로한 강연에서 만해의 삶속에서 근대 자유주의 사상을 어떻게 습득하고 〈조선불교유신론〉 저술에 반영했는지를 설명했다.
안교수는 한국의 근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만해 한용운과 단재 신채호를 꼽았다. 이 가운데 단재 신채호의 명망이 월등히 높았다고 했다. 하지만 안교수는 단재 신채호 보다는 만해 한용운에 끌려 빠져들었다고 회고했다.
“만해 스님의 사상은 바다에 떠 있는 항공모함 같아서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큰 힘 갖고 있다고 느꼈다. 반면 단재 신채호는 초음속 제트기와 같이 화려하며 시대를 앞서나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었다. 우리 머리 위에 떠서 회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안 교수는 “일본강점기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만해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아닌 자유주의자였다. 〈조선불교유신론〉이 만해스님의 이런 자유주의사상 담고 있다”고 했다.
만해의 사상을 알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 3가지인데 〈조선불교유신론〉과 〈조선독립의 서〉, 〈님의 침묵〉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은 자신의 자유주의 사상을 전개하였고 이를 실천한 것이 3.1운동의 참여이다. 3.1운동은 사실 만해가 조도한 운동이었다.
〈조선독립의 서〉는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을 적은 것인데 그는 이 책에서 “국민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식민지는 한국민에게 모욕이다. 조금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잘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소용없는 짓이다. 빼앗아간 주권을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님의 침묵〉에도 이러한 그의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여기에 나타난 만해의 기본사상이 바로 자유주의 사상이다.
만해는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7세에 한학지도를 할 정도로 한학에 밝았다. 결혼 후 인생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서울로 올라오던 길에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백담사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만해는 오세암에서 부목처사로 살면서 불교와 김시습의 사상을 공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03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들이 태어나던 날, 다시 오세암으로 갔다. 가던 중 세계 역사지리에 관한 책을 구해 읽었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세계일주를 결심하고 블라디보스톡을 갔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1908년 일본 유학을 떠나, 조동종에 몸담으며 서양사상을 수용한 근대화된 일본 불교를 배웠다. 일본 유학 2년 후인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 저술했다한 것으로 볼 때 그의 근대사상 습득은 일본을 통해서 였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저술된 〈조선불교유신론〉은 당시의 불교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일본과 같은 대처를 주장하는 등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불교 책인지 자유주의사상으로 불교를 해석한 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구의 근대 사상, 자유주의사상, 경제·사회학 이론 등을 가득 담고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윤리에 구속됐던 인간을 자연으로 환원시켰고, 인간세상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스포츠와 섹스는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을 해방시키는 것이 자유이다. 미국이 위대하다는 것은 그것을 꿰뚫어보고 자유를 발전시키고 인간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불교에는 자유의 개념이 있는가가 의문이다. 안 교수는 “불교에도 자유의 개념이 있다. 진여가 자유이다. 진여에는 색과 공이 다있으며, 양쪽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본래의 자유개념이다. 진실로 좋은데 쓰는 것이 선불교이다. 아쇼카왕처럼 권력을 가지고 백성을 위해 좋은데 쓰는 것이 진여의 개념이다. 21세기 윤리는 이러한 자유의 본성대로 살아갈 때 인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안 명예교수는 〈조선불교유신론〉에 담긴 만해의 사상을 근대적 시민의식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만해는 스님들이 인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스스로 생산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산물에 기생하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무수히 많은 부동산을 가진 불교가 왜 그것을 이용해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당시는 사회주의가 득세해서 자본주의를 악으로 매도하던 때였다. 만해는 가난에 찌들어 먹고 살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경영의 필요성 주장한 것이다.
안교수는 마지막으로 자문자답했다.
“어떤 사회가 근대화된 사회고, 어떤 사회가 전근대 사회인가?”
“길거리에 환자가 쓰러져 있을 때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른체 하고 지나가는 사회는 전근대 사회이다. 사람들이 나서서 아픈사람을 돌보고 보살피는 사회가 근대사회이고 인간사회이다.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자유주의가 그런 사회를 실현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면 불교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불경은 이제 소용이 없다. 근대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불교 신봉자들이 정치학을 하고, 경제학을 하고, 사회학을 하고, 철학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만해는 근대학문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인 자유인이었다.”
정리=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