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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0/06/28 13:26:01  편집부장
법경정사의 만다라
일체 존재에 대한 이해와 자각, 그리고 고(苦) ②

일체 존재에 대한 이해와 자각, 그리고 고()

 

법경 정사(총지종 밀교연구소장/철학박사/동국대 강사)

 

부처님께서는 세상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하셨다. (), 즉 괴로움에 대한 분석으로써 지난 호에서는 고()란 무엇인가 하는 내용에 대해 소개했다. 삼고(三苦), 사고(四苦), 팔고(八苦)를 들어 고()를 알아보았다. 이러한 고()는 어디에서 오는가? 즉 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원인을 알아야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은 무명(無明)갈애[욕망]에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즉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괴로움이 발생하고,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한 애착[애탐, 애욕, 욕망]에 의해 괴로움이 발생한다. 일종의 집착과 고집이다. 그리고 일체가 영원하지 않는 데에서도 괴로움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괴로움은 무명(無明), 갈애(渴愛), 무상(無常)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생사의 괴로움은 무명, 갈애에서 벗어남으로써 소멸된다. 즉 생사의 괴로움이 무명과 갈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무명과 갈애의 소멸(消滅)을 통해 우리는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괴로움을 멸할 수 있을까? 진리를 깨닫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서 고()를 소멸할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하기 위한 수행에 대한 진리로서 부처님은 멸성제(滅聖諦)와 도성제(道聖諦)로써 설하셨다. ()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이다. 그 길이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데서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멸할 수 있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정견(正見)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다. 즉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지혜라 한다. 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이다. 즉 바른 마음가짐이다. 악을 행하지 않고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며, 나쁜 생각과 나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며,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갖는 것이다. 정어(正語)바른 말하는 것이다. 즉 망어, 기어, 양설, 악구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정업(正業)바른 행동, 바른 몸가짐이다. 즉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이다. 정명(正命)바른 삶, 바른 생활하는 것이다. 또한 바른 일을 하고, 바른 생계수단,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포함된다.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정정진(正精進)바른 정진, 바른 노력이다. 즉 끊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이다. 정념(正念)바른 관찰, 바른 알아차림, 바른 마음챙김이다. 나 자신과 바깥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함으로써 내 마음을 조복할 수 있고, 부정(不淨)하고 불선(不善)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자연히 고()가 소멸된다. 정정(正定)바른 선정, 바른 삼매이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앞의 7가지를 지속적으로 행하였을 때 정정(正定)은 가능해진다. 이 여덟 가지를 길을 통해서 고를 소멸할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설파하셨다.


이 팔정도 외에 부처님께서는 열 가지의 업을 잘 닦는 것도 고()를 소멸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십선업(十善業)이다. 업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인간의 행위와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몸과 입과 뜻[마음]의 행위와 활동이다. 이를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이라 하고, 삼업(三業)이라 통칭한다.


업은 항상 그 행위에 따른 결과를 초래한다. 즉 인과(因果)의 관계에 있다. 마땅히 좋은 인()을 지어야 한다. 이 십업 가운데 근본이 되는 것이 의업(意業)의 세 가지이다. 업이 본래 의지(意志)에서 발생하여 언어로, 또는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생각[]이 먼저 일어나고 그다음에 말과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에 앞서 생각[]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므로 불교에서는 의업(意業)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십업설은 괴로움을 소멸하고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열 가지의 수행교설이다.

악업을 짓지 않으면, 그로 인한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팔정도와 십선업을 열심히 닦아서 생사 가운데 일어나는 괴로움을 소멸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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