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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5/07/23 11:04:17  이한규
서동석 박사의 AI시대 생활불교수행(18)
수행의 시작이자 끝, 정견(正見)

지금까지 나는 AI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생활불교 차원에서 수행 시스템의 개선 방향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제안했다. 지금부터는 수행법에 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파한 불법이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는 과정에서, 불교의 수행체계는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다. 하지만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른 독특한 수행체계가 있다. 그것의 핵심은 사성제(四聖諦)와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法)이다.

37조도품은 완전한 깨달음을 돕는 37가지 수행의 방법과 과정으로,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勸), 사신족(四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그리고 팔정도(八正道)를 말한다. 사실 37조도품 속에는 현대적으로 통섭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37조도품의 수행체계를 구체적으로 성찰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선 칼럼에서 이미 설명한 사성제는 불교의 대의를 압축한 것이고, 37가지 조도품은 진리의 세계로 가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소승과 대승을 막론하고 이 수행체계를 기본으로 두고 있다. 불도를 닦는 견지(見地)가 바를 때, 진정한 수행이 가능하다. 현재 수많은 수행법이 있지만, 그 근원을 보면 37조도품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조도품 전체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고, 체계적인 수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사념처(四念處)를 보자. 사념처는 사념처관(四念處觀)의 준말로, 사념주(四念住)라고도 한다. 첫 번째는 신념처관(身念處觀)이다. “육신이 청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관한다(觀身不淨).” 우리의 육신은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요소가 결합하여 구성되었다. 문제는 그 결합이 완벽하지 않은 데 있다. 대자연에 비해 인간의 몸은 너무 비좁아서, 네 가지 요소가 조화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개인마다 몸의 업연이 달라서, 그 편차는 훨씬 크다. 몸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부정(不淨)을 관함으로써, 역으로 몸의 청정을 회복한다.

두 번째는 수념처관(受念處觀)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각들이 고통을 이룬다는 사실을 관한다(觀受是苦).” 우리의 오감각은 쾌락을 좇기 마련이다. 감각이 요구하는 것이 실상이 아닌 고통의 원인임을 파악하면, 감각에 이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심념처관(心念處觀)이다. “마음은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생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한다(觀心無常).” 특히 의식의 흐름은 폭류(瀑流)와 같아서, 그 흐름에 휘말리면 실상을 볼 수 없다. 마음의 허상을 체감하면, 심사의 동요를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념처관(法念處觀)이 있다. “현상계의 모든 물질적 대상과 의식의 대상은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관한다(觀法無我).” 무아(無我)를 생활화하는 수행이다.

사념처관은 단순히 명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언행과 심사를 성찰하고 단속함으로써, 몸과 마음과 일체 현상을 안과 밖에서 제대로 관(觀)할 수 있다. 우리의 업연이 복잡미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일상의 인연을 청정하게 닦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사정근(四正勸)이 필요하다. 첫째, ‘이미 생긴 악은 없애는(已生惡令滅)’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일어나지 않도록(未生惡令不生)’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아직 없는 선은 있도록(未生善令生)’ 선업(善業)을 꾸준히 쌓는다. 마지막으로 넷째, ‘이미 생긴 선을 늘리도록(已生善令增長)’ 정진한다.

일상에서 사정근(四正勸)이 원만해지면, 사신족(四神足)이 생긴다. 사신족은 수행력을 향상하기 위해 수행의 의지를 높이는 네 가지 방법이자 과정이다. 첫 번째, 욕신족(欲神足)은 선정을 얻고자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의욕정(意欲定)이라고도 부른다. 일단 수행의 마음을 바르게 내야, 진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욕이 더욱 커진다. 두 번째, 근신족(勤神足)은 쉬지 않고 한결같이 나아가는 용맹정진의 과정이다. 세 번째, 심신족(心神足)은 마음을 바르게 유지하는 수행이다. 지금 현재에 마음을 두고 흐트러지지 않는 수행의 과정이므로, 염여의족(念如意足)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네 번째, 관신족(觀神足)은 고요한 마음으로 일체를 직관하는 수행단계다. 지혜의 마음을 갖춰가는 과정이므로, 혜여의족(慧如意足)이라고도 한다.

사신족(四神足)이 성숙하면, 오근(五根)이 갖추어진다. 첫째, 신근(信根)이 싹트면 진리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고, 다시는 미혹되지 않는다. 둘째, 믿음에 확신이 생기면, 정진근(精進根)이 뿌리를 내린다. 셋째, 정진근을 통해 마음을 바르게 두는 염근(念根)이 생긴다. 넷째, 마음이 중심을 잡으면 의식이 산란하지 않고, 선정의 뿌리가 되는 정근(定根)이 생긴다. 마지막 다섯째, 정근을 갖추면 지혜의 근간인 혜근(慧根)이 생긴다.

오근(五根)으로 수행의 기본 토대가 완성되면, 수행의 각종 장애를 극복하는 힘인 오력(五力)이 나온다. 첫째, 신근(信根)이 확고해지면, 어떤 미신에도 현혹되지 않는 신력(信力)을 갖춘다. 둘째, 정진근(精進根)이 자리 잡으면, 불굴의 의지로 수행을 이끌어나가는 정진력(精進力)이 발휘된다. 셋째, 염근(念根)이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을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장애를 극복하는 염력(念力)이 생긴다. 넷째, 정근(定根)이 반석같이 튼튼해지면, 선정의 힘으로 온갖 삿된 장애를 이기는 정력(定力)이 나온다. 마지막 다섯째, 혜근(慧根)이 자라나면, 일체 번뇌를 끊을 수 있는 혜력(慧力)이 발휘된다. 오근과 오력은 상호 작용하며 상승한다.

칠각지(七覺支)는 마음의 산란을 조절하는 7가지 수행법을 말한다. 첫째는 택법각지(擇法覺支)다. 바른 불법으로 진위를 분별하고 삿된 길로 빠지지 않는 수행을 말한다. 둘째는 정진각지(精進覺支)다. 용맹정진으로 진리의 길에서 후퇴하지 않는 수행이다. 셋째는 희각지(喜覺支)다. 바른 법에 머무는 기쁨을 관하는 수행이다. 넷째는 경안각지(輕安覺支)다. 수행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심신이 가벼워져 상쾌해진다. 이 상태를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다섯째는 염각지(念覺支)다. 심신이 편안해지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데, 이 상태를 관하는 수행이다. 여섯째는 정각지(定覺支)다. 선정에 들어 일체의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수행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사각지(捨覺支)다.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수행이다. 여기까지의 모든 수행법은 단계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통시성(通時性)을 지니고 있다.

37조도품은 팔정도(八正道)로 완결된다. 앞의 29조도품의 수행이 성숙해지면, 그 결과로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그리고 정정(正定)에 이를 수 있다. 팔정도는 수행을 완성하는 단계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소승과 대승의 견지에서 보면, 앞의 29조도품은 소승의 수행(修行)에 해당하고, 뒤의 팔정도는 대승의 보살도(菩薩道)로서 수도(修道)에 해당한다.

한편 팔정도는 앞의 모든 수행법을 하나로 압축하는 역할을 한다. 팔정도 속에 다른 모든 수행법이 수렴한다. 따라서 팔정도에만 집중해도, 나머지 수행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팔정도는 수행과 수도를 하나로 융합하는 수행 도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정견을 갖추고 수행을 시작해서, 단계별로 차원을 높이면서 위 없는 완전한 정견을 갖춰나가는 일이다. 결국, 시작과 끝이 하나로 연결된다.

앞선 칼럼에서 밝혔듯이, 나는 팔정도가 AI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팔정도는 소승과 대승의 경계가 사라지는 융합문명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통섭적인 수행법이다. 또한, 팔정도는 첨단과학의 성과를 적용해서 인간의 의식을 상승하고, 깨달음의 수준을 체계적으로 높이기에 적당하다.

이 칼럼에서는 생활수행의 차원에서 팔정도를 얘기하고 있다. 먼저 정견(正見)은 사성제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37조도품의 수행체계에 관한 바른 식견을 갖추는 일이다. 이를 통해 중도의 수행 이치를 알게 된다. 정사(正思)는 불법의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일이다. 정어(正語)는 구업(口業)을 청정히 하는 일이다. 정업(正業)은 일체의 삿된 행동을 삼가고 청정한 신업(身業)에 머무는 일이다. 정명(正命)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청정한 상태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정업까지는 일상에서 악업(惡業)을 멀리하고 선업(善業)을 쌓는 생활수행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사념처에서 칠각지에 이르는 수행법이 모두 동원된다.

정정진(正精進)은 앞의 다섯 가지 바른 수행을 중단 없이 지속하는 일이다. 집중수행 단계를 거쳐야, 수행의 수준은 더욱 높은 단계로 상승할 수 있다. 수행의 능력은 직선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지루한 과정을 반복한 후에 수행의 인연이 성숙해야만, 더욱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법이다. 따라서 인내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념(正念)은 일체의 삿된 마음이 일지 않는 상태에 머무는 일이다. 이 점에서, 흐트러짐이 없는 마음으로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수행법이다. 정정(正定)은 선정의 상태에서 일체 현상과 함께하며, 걸림 없이 사는 삶을 의미한다.

단계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순환 상승하는 팔정도의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의 경지는 연기성공(緣起性空)과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증득(證得)이다. 일체 모든 것은 연기하고 있지만, 그 성품은 공(空)하다. 이 진리를 증득하면, 역으로 공에서 중도실상을 끌어낼 수 있다. 수행은 생명의 실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정견은 수행의 시작이자, 수도의 끝이 된다. 완전한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과 더불어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을 내는 초발심이 바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요즘 불교 수행은 의외로 근본 수행체계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나치게 수행의 효율을 추구한 결과이지만,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비효율과 사이비 수행자를 양산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사성제의 기본 정신을 유지하고, 수행의 기본 체계 안에서 자신의 인연에 맞게 수행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바른 뜻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수행문화, 인간교육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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