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여러 영역에서, 첨단 과학기술로 인간의 정신을 깨우는 방법이 발전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수행도 다양해지고, 전문화되고 있다. 그러나 수행법의 발전에 비해 완전한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것은 세속적인 목적으로 수행이 관념화되거나 대상화돼 있어서, 일체에 매임이 없는 깨달음과는 시작부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명상이 깊어질수록 일시적인 신통에 불과한 신비체험에 빠지는 일이 많다.
순수한 상태에서 온전한 깨달음을 지향하지 않으면, 수행 중에 물질과 관념의 허상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이 점에 관해 참고할 사항은, 앞선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부처님이 《능엄경》에서 밝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청정하게 전화시키는 과정에서 단계마다 나타나는 10가지 마경(魔境)이다. 일반적인 현상은 밝은 빛, 거룩한 모습, 음성 등을 의식하는 경우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업연으로 청정하지 못한 자의식이 만든 허상이다.
토양과 심는 종자(種子)가 다르면, 그 결과도 다르게 나오는 법이다. 따라서 수행의 시작부터 기본을 바르게 세워야, 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수행에는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 수행의 기본에 관해서 우리가 눈여겨볼 내용은 《증일아함경》에서 부처님이 아들 라훌라에게 한 정좌 수행의 기초에 관한 말씀이다. 앞서 〈수행과 건강〉에 관한 칼럼에서, 이 부분에 관한 전체적인 의미를 설명했다. 여기서는 정신(正身)과 정의(正意)에 관해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부처님 말씀은 다양하게 곱씹어볼수록 새로운 의미가 샘솟는 특징이 있다.
먼저 수행의 기본 토양은 몸의 바른 상태다. ‘몸의 바름(正身)’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몸의 일차적 상태는 오온(五蘊)에서 색(色)이다. 그러나 몸은 감정과 느낌의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수(受)의 경계이기도 하다. 더욱 세밀히 확대하면, 상행식(想行識)과도 관계가 있다. 심신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핵심은 균형이다. 수행의 측면에서, 심신 균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답게 사는 법》,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 《어둠을 밝히는 지혜》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생활 측면에서, 정신(正身)을 이루는 방법에 관해 중점을 두고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삶의 환경과 그에 대처하는 자세가 몸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태도의 성실성은 심신을 청정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출가 수행자는 행자 시절에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가장 낮은 자세로 생활에 임함으로써, 세속의 욕망과 집착을 제거하고 순수하고 성실한 태도를 몸에 익히게 된다. 계(戒)를 지키는 상황은 재가자와 출가자가 다르지만, 계율의 근본 목적은 같다. 그것은 도(道)를 닦을 수 있는 청정한 심신의 상태를 이루기 위함이다. 계율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은 앞서 〈수행은 계정혜(戒定慧)의 단계적 상승작용〉 칼럼을 참조하기 바란다.
진리를 향한 지극한 마음과 성실한 삶의 습관이 초기 수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두 가지 요소가 상승작용을 하면서 청정한 심신을 만든다. 기본 토대를 제대로 마련한 이후에, 본격적인 수행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예전에 도제 기간에 성실성을 확인받은 이후에 전문적인 도공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도공의 경우와 같다.
심신이 지극히 순수하고 성실한 상태에서, ‘바른 뜻(正意)’을 세울 수 있다. 이때부터 바른 믿음과 정견의 기틀이 마련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실이 있다. 수행법도 하나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깨달음의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지극히 진실한 마음이 본질이고, 그 외 수행법, 공간, 시설 등은 수행 요건에서 부차적인 문제다.
진실한 마음은 삶의 환경과 인연을 대하는 태도에 그대로 반영된다. 일체의 경계와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선악이 뒤바뀔 수 있다. 악(惡)도 쓰는 마음에 따라 선(善)이 된다. ‘마음의 바름(正意)’은 중도의 이치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뜻(意)’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수행 차원에서 한문 경전을 중시한다. 유교와 도교뿐만 아니라 선도(仙道)의 수행 정신이 불교 경전 속에 하나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의(意) 자가 주는 의미를 깊이 성찰해보겠다.
의(意)는 소리 음(音)과 마음 심(心)이 결합한 단어다. 소리는 물리적인 소리와 마음의 근원에서 나오는 본성의 울림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인 소리는 물리적 상호 작용에 그치지만, 본성 저 밑바닥에서 우러나와 순수한 울림을 주는 소리는 그 파장이 다르다. 바른 뜻을 내는 소리는 가아(假我)의 마음과 본심(本心)을 연결하는 인연의 줄이 된다. 물리학의 ‘초끈이론’으로 비유하면, 의식의 근본에서 나오는 소리는 입자와 파동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며 온 우주를 하나로 연결한다. 관세음보살이 진리의 세계에서 일체중생을 구하는 이치이기도 하다.
대우주는 바른 섭리의 뜻으로 운행되고 있다. 삼신불에 비유하면, 보신불(報身佛), 즉 불법의 기운이 시방세계를 융합하는 작용과 같다. 진리의 법신과 그 작용인 보신과 화신은 서로 통한다. 바른 ‘뜻(意)’은 법신과 화신을 연결하는 보신의 작용이다. 바른 뜻은 진리의 완전한 지혜를 성취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을 내는 마음이다. 바른 지혜와 자비심이 하나 된 마음이 깨달음의 근본 종자(種子)다. 이 종자가 없다면,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결코 위 없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 오히려 정의(正意)가 없는 명상은 부처의 탈을 쓴 악마와 같은 존재를 만들 수도 있다.
수행의 중점은 진실한 삶의 도리로 온전한 깨달음으로 가는 일이다. 수많은 수행법은 진실한 삶을 보조할 뿐이다. 공자가 일상에서 걸림 없는 도(道)를 체득한 비결도 변화의 도리에 맞는 진실한 삶이었다. 삶이 진실하면, 심행(心行)이 고요해지고 아집이 사라진다. 그 결과, 무아(無我)의 삶으로 공성(空性)을 원만히 체득하고, 일체중생을 품는 자비심이 일어난다. 또한, 대자대비의 마음에서 편견 없는 지혜가 발현된다. 진실한 삶이 진리로 들어가는 영원불변의 요건이다.
세상에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가 없는 이유는 바른 뜻을 끝까지 유지하며 사는 자가 매우 드물고, 그 뜻을 대우주의 모든 존재로 확장한 자는 더욱이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기본이 바르지 않으면, 시작은 비슷하나 끝은 천문학적인 차이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초발심(初發心)이 정등각(正等覺)이라는 말씀의 이치이기도 하다.
한편, 바른 수행에는 천지인(天地人)의 삼재가 모두 작용한다. 현재 AI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세상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모두 변할 수밖에 없는 문명사적 대전환의 흐름 속에 있다. 이 와중에서도, 인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현재 세상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시대변화의 혼란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남는 가장 안전한 길은 동서통합의 수행원리를 알고 일상의 삶 자체를 수행으로 삼는 일이다.
동서융합시대에는 삶의 도리에 관해서 모든 성인(聖人)의 말씀을 함께 성찰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문(聖文)을 늘 가까이함으로써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경책하고, 일체 경계를 넘는 중도의 지혜를 함양하자. 동서의 문화가 중도의 보편 도리로 서로 통할 때, 진정한 신문명사회는 도래하게 된다. 이 점에서, 미국의 공자라는 에머슨의 사례를 참고해보겠다.
이번에 전자책으로 나온 《미국의 정신 에머슨》은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하나로 수용한 에머슨의 초절주의 사상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통섭적 수행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물질세계에서 사는 우리가 정신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이 필요하다. 에머슨의 중도적 실용주의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 에머슨은 융합문명의 설계도를 제시했지만, 현재 미국은 그 꿈을 미쳐 다 이루지 못하고 혼란 속에 있다. 우리가 수행문화를 통해 전 세계의 평화를 선도할 보편적 정신문화를 확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을 냈다.
에머슨은 평생 바른 도리를 추구했다. 비록 그가 전문적인 수행을 한 사람은 아니지만, 진리를 향한 진실한 마음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선승(禪僧)의 용맹심과 다르지 않았다. 의식과 표현의 한계를 깨부수고 끊임없이 진리로 전진하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진실한 도리였다. 진실한 마음과 보편 도리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면, 점차 모든 한계를 넘어 ‘해방의 신’으로 상승하고, 마침내는 스스로 ‘하나님’이 된다고, 그는 보았다. 그에게 하나님은 부처님과 다르지 않았다.
에머슨의 사상 속에는 모든 종교의 본질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그에게 표현은 진리를 가리키는 단지 일시적인 수단일 뿐이었다. 그의 정신에 감화된 당대의 젊은이들이 힘을 모아 종교의 경계와 한계를 깨부수고,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종교혁명 못지않은 종교개혁을 이루었다. 종교의 형식을 넘어 진리를 추구한 점에서, 에머슨의 정신은 불교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 진실은 진실로 통하는 법이다. 한편 《미국의 정신 에머슨》은 에머슨에서 비롯된 내 수행의 인연을 동서 융합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내 수행의 차원을 한층 높이도록 노력하겠다. 이 칼럼을 읽는 사부대중과 함께 AI시대 생활불교수행의 길을 열고자 한다.
*수행문화, 인간교육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