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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2/03/21 12:15:41  이한규
꽃스님 紙花명인 정명(正明) 스님
불모지 ‘한국 지화’ 새 지평 연 ‘紙花박사’

▲'지화(紙花)스님’으로 불리고 있는 정명스님은 스님이 만드는 꽃들마다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소문날 정도로 지화 외길 한평생을 걸어왔다


불모지 한국 지화새 지평 연 紙花박사

부처님 가피로 蓮花滿開세상 활짝 열어 

 

지난 314일 정명스님(심갑식)을 만난 날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온 국민이 산불 사태로 망연자실할 무렵이라 그야말로 반가운 단비였고 꽃비였다.

비를 맞으며 스님의 작업실(공방)에 들어서자 정명 스님이 수십 년 공들여 만든 분홍빛 연꽃 과 수많은 꽃이 만발, 과연 여기가 바로 극락(極樂)이고 연화세계(蓮花世界)가 아닌가 착각할 만큼 눈길을 멈추게 했다.

일명 꽃스님’, ‘지화(紙花)스님으로 불리고 있는 정명스님은 스님이 만드는 꽃들마다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소문날 정도로 지화 외길 한평생을 걸어왔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꽃과 인연되어 지화를 통해 연꽃 만들기 외길 인생을 살아온 불교지화명인 정명 스님


지금 이 순간 온갖 꽃 소식이 남녘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스님에게는 호시절일 듯싶다.

불과 16세 나이에 서울 우이동 금강사 정태경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한 이후 동학사 강원에서 20세 나와 그 무렵이 마침 연등이 유행할 때라 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내린 눈썰미로 꽃꽂이와 지화를 배운 스님에 대해 사람들은 타고난 눈썰미에 놀라고 한 두 번 보면 교본 없이 정교한 예술품으로 탄생되는 것에 경탄했다.

섬세한 손끝 정성과 함께 생화, 조화, 지화, 그림, 사진만 봐도 스님의 손길이 가면 깜쪽같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1580년 감로탱화(甘露幁畵)의 지화장엄을 연구하고 제작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지난 전시는 정명스님의 불교 지화에 대한 오롯한 열정과 각고의 수행정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1610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감로탱화재현전을 앞두고 정명스님의 노고를 이렇게 치하했다.

정명스님은 지화는 종이로 만드는 꽃이 아니라 紙心으로 피우는 꽃이라고 정의하고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지화의 전통을 알 수 있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재현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나라는 불교 지화에 관한 한 교본이나 이론이 부재할 정도로 손에서 손으로 전승된 게 현실이고 수륙재, 영산재 등을 통해 겨우 명맥이 유지되어온 게 사실이다.

정명스님은 실물이 아닌 사진과 그림을 통해 시대상을 읽으며 재현한 감로탱화를 보고 만력(萬曆 85) 1580년에 제작된 것임을 확인했다. 가로 111Cm, 세로 128Cm 크기의 감로탱화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라쿠센사가 소장한 것보다 9년 빠르고 가장 오래됐다는 금산 보석사보다 60년이나 먼저 제작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일제 강점기에 법당에 놓여있는 사진을 보고 시대상을 읽고, 그림을 그려가며 재현해 지화 역사를 밝히는데 한 획을 그었다.

생화보다 더 은은한 아름다운 지화의 세계를 연 이 시대 최고의 명인 정명 스님은 지화가 조선 태조 때부터 기록에 나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려 때는 1년 중 생화가 없는 6개월은 비단으로 꽃을 만들어 귀족불교의 면모를 보였지만 조선 태조가 들어서면서 채화로 하지 말고 지화로 하라고 조선실록 조회에 기록되어 종이꽃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마음 세상 밝히는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장엄도감으로 소리없이 큰 역할 수행

 

▲2017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스님의 개인전에 감로도를 재현했다

▲조선시대(1580년) 가장 오래된 불화인 감로탱화를 재현했다

 

오는 202258일은 불기2566년 부처님오신날이다. 마음과 세상을 밝혀온 연등회는 문화적 다양성과 기쁨을 나누고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됐다.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중단됐지만 불기2566년 연등회가 다가오면서 정명스님의 역할이 또다시 주목되고 있다.

장엄도감으로서 봉축행사를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연등회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하고 아기부처님 모시고 나가는 위장행렬 등에 쓰일 80~100송이 연꽃을 지화로 준비하고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단비가 내리는 날 초파일을 앞두고 스님의 작품 연꽃을 만난다는 것은 흔히 접할 수 없는 행운. 물론 연등 하나하나 천연 염색으로 만들어진 연꽃등과 팔모등은 법륜, 불법승3, 매미, (), 주련 등등 부처님의 진리와 오묘한 삼라만상이 담겨 있어 한 점 그 자체가 연화세계이고 극락세계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스님은 2016년 대한명인회로부터 불교지화명인으로 지정받기까지 매우 학구적이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끝없이 연구하는 의식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학여불급(學如不及), 즉 항상 부족한 듯이 배움에 임하라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스님은 오로지 지화를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를 잊지 않았다.


▲고려불화 관경십육관변상도 재현


스님에게는 처음과 최초와 일화가 많다.

현대 와서 지화에 자연(천연) 염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20214월부터 후진양성을 위해 온라인 줌을 개설해 지금 운영 중에 있다. 첫 주에는 재단, 염색 둘째 주에는 살잡기, 셋째 주에 작봉, 넷째 주엔 난등 등 코로나19’를 의식한 월간 프로그램에 전국 스님과 보살들의 참여도가 높다.

매주 일요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한 달에 한 송이 지화를 만들어야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초급 1, 중급 1, 고급13년을 거쳐야만 지화장패가 주어진다. 지금까지 여기서 25명의 지화장이 탄생됐는데 스님은 이들에게서 미래의 지화의 꽃이 피어지리라 크게 기대하고 있다.

지화마다 꽃 본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정명스님이다.

5년여 연구 끝에 오래 돼도 변하거나 바래지 않는 연꽃과, 연꽃등을 개발했다.

스님 곁에는 지화의 체계와 과학화와 후진을 위해 사진 찍고 기록하고 만들어진 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여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책자로 발간되면 훌륭한 중요 교재가 될 것들이다.

육법공양 중 으뜸은 꽃 장엄입니다. 그러나 자료가 없어 지화와 연관된 스님을 찾고, 지화에 대한 역사를 찾고, 지화에 대한 기록을 찾다 보니 12시 안에 잠잔 적이 없습니다.”

2020한국지화장엄의 특징과 전승에 대한 연구로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로부터 박사학위 논문을 취득한 스님은 지화에 대한 흐름은 어느 정도 잡았다며, 그러나 더 깊이 연구하고 할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스님은 같은 해 아시아명인 지화장엄부문 제5호로도 지정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꽃만 만들었으면

지화 만들다 보면 무념 속에 삼매경 빠져


▲정재(呈才)를 장식하는 의장화(義仗花) 지당판(池搪板)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꽃만 만들고 싶어...,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장 정명스님의 지금 이 순간 가장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다른 스님은 신도 포교와 불사가 목적인데 밥 먹고 눈 뜨면 꽃 속에 빠져 지화연구가 일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화 만들기를 시작하면 만사 고민과 생각이 사라집니다. 잡념이 어느새 사라지면 무념 속에 삼매경에 빠져들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꽃만 만들고 싶습니다.”

스님을 보니 악자무적(樂者無敵)이라는 말이 연상됐다.

두 손 모두 지문이 다 닳도록 평생 꽃만 만졌다는 스님은 쪽물에 갈라지다 못해 지문 조차 없는 손이 되고 한때 입 안이 허는 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설 때도 있었다.


▲스님은 평생 꽃만 만져서 이제는 두 손 모두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다고 했다


40대 초반 격무 탓인가 2~3년만 살다가 죽을 것 같은 힘든 적이 있었는데, 다음 생에는 뭐가 될 것인가 생각하다 남자로 태어나려면 꽃과 향을 올리면 된다는 생각에 본견 천에 염색 입히고 매일 연꽃 한 송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와서 복 지은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두 시간 걸려 한 작품 나올 때마다 번호를 붙였습니다. 우선 1번에 전기스탠드를 만들어 마음에 뒀던 사람에게 선물했습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100일 기도 회향 전에 병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향기 따라 와 보니 스님의 지화 전시회장이더군요.”

어느 보살이 털어놓은 실제 상황이다. 어느 경우에는 나비와 벌이 날아온 적도 있었다. 시금치 즙과 포도 염액 향 등 천연 재료로 색깔을 만들다 보니 꽃마다 향기가 배어나고 자극해서 절로 일어난 일화 중 하나일 터이지만 이것이 자연재료로 만든 지화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명스님의 일을 늘 가까이서 보필하고 있는 박계영(法王子) 사무총장


너무너무 대단한 스님이십니다. 지화를 배우는 즐거움, 완성될 때마다 행복하고 성취감으로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시종 스님과 자리를 함께 한 박계영(法王子) 보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지화 만들기에 빠져들면 향기에 취하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몰아지경이 되는 게 이 세계다.

 

시연, 전시 통해 육법공양 공식화

부처님 가피로 蓮花滿開세상 활짝 열어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꽃과 인연되어 지화를 통해 연꽃 만들기 외길 인생을 살아온 불교지화명인 정명 스님
 

 

1997년 문화체육관서 개최된 만등만화육법공양대법회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정명스님이 육법공양(香燈茶花果米)을 현대 감각에 맞게 시연함으로써 대중들의 이해를 돕는 대법회였다.

당시 염려했던 불자들의 호응과 반응이 예상보다 컸다. 하루 행사인데도 1000석 좌석이 모자랐다.

이어 2년 후 장충체육관서 이어진 행사도 정명스님의 결단과 결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5000석 좌석이지만 3000명의 불자가 참가해 예상 밖의 성황을 이루어냈다.

행사 당일 톱밥 위에 만다라를 크게 그려 관람객을 놀라게 한 이야기는 지금도 일화로 남아 있다.

두 행사 모두 무모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의외의 성황을 이루고 크게 성공했다. 물론 행사에 앞서 서울 시내 사찰이면 모두 찾아 자료를 수집하는 등 사전 준비가 치밀해서 가능했던 것이긴 하지만 더 큰 수확은 TV를 통해 방송되면서 불교계가 큰 행사 때마다 육법공양을 먼저 올리는 것이 공식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스님의 특유의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돋보인 행사들은 이 밖에도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시작이 절반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온 몸을 던진 결과였다.

2015년 당시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는정명스님의 지화장엄전에서 불교의식에서 꽃 공양을 올리는 것을 큰 공덕으로 생각해 왔다며 꽃을 접는 일이나 각종 염료를 개발하는 일 등은 고도의 정성과 기술을 필요로 하며 오랜 시일에 걸친 전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심의 소녀, 꽃만 보면 눈이 반짝

紙花와 외길 한평생은 필연(必然)


▲대한명인 제16-464호 불교지화명인 정명스님(심갑식)


꽃 중의 꽃, 그중에서 으뜸은 과연 연꽃이다. 순결 청순 신성 청정으로 일컬어지는 연꽃은 부처의 자비와 지혜와 진리를 상징한다.

연꽃 공양이 최고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금까지 정명스님의 연꽃 공양은 헤일 수가 없이 차고 넘친다.

정명스님은 소녀시절에도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릴 때 기억이지만 꽃만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고 한다. 꽃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남달랐다. 마음이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들어도 안 들린다고 했는데 어린 소녀에 비친 수많은 꽃들은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화를 통해 연꽃 만들기에 외길 인생을 살아온 스님과 아름다운 꽃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명스님은 13세 때 고향 문경에 있는 어머니 따라 다니던 성불암과 인연을 맺었다.

머리 깎고 중이나 돼라

새벽 3시부터 밤10시까지 사분정근(四分定根) 예불을 할라치면 입에 단내가 무럭무럭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3, 이러다 속절없이 스님도 되지 못하고 세월만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 천일기도 회향 끝내고 서울 우이동 금강사를 찾아 태경스님을 만났습니다.”

계민문중(戒珉門中)으로 출가한 스님의 불가와 인연은 이렇게 출발됐다.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스님은 이숙진 꽃꽂이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어 1988불교연화꽃꽂이회를 창립하면서 처음으로 작품전을 열었다.

스님의 추진력은 못 말려

리베라호텔서 열린 작품전은 첫날 1000여명이 몰려와 700명분 뷔페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뤘고 비구니꽃꽂이회의 모태가 됐다.

지화의 색상은 삼매의 광명을 뜻한다는 구결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불가의 꽃은 관조의 견지를 상징하기도 하며 오로지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정성을 피워내는 내면의 꽃이기에 공()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스님은 2020년 제6회 한국전통지화 개인전에서 지화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특질에서 덕성을 키우는 훌륭한 방편이라고 말하고 불교의 경전과 사문의 전통에서 유래한 이 전통이 후속 세대에게 원활히 제작 기법과 장인정신의 전승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의 박사 논문에 인용된 연등회보존위원 실태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본격적으로 계민 문중의 지화장엄 전통을 전승하고 있는 것은 정명스님이다. 1966년 출가한 정명스님은 1970년대부터 꽃일에 관심을 두어 1985년부터 서울 청룡사 진우스님에게서 연등회에 필요한 장엄을 전수 받고 이후 1986년부터 2005년까지 전주 천고사의 보운스님에게 수륙재 및 초파일 관불에 필요한 각조 지화장엄을 전수받았다.”고 계민 문중과 정명스님과의 세계(世系)를 정리하고 있다.

법당에 장엄은 어떻게 했는가

그러다보니 밥 먹고 눈 뜨면 꽃 속에 빠져 연구하는게 일상이 됐다. 스님에게는 부처님의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있다지만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극락세계이고 화장장엄세계이자 연화장 세계라고 했다.

연꽃 속에 살아가는 응암동 법성사(法成寺) 정명스님, 꽃이 좋아 꽃을 사랑하고 절집에서 올리는 지화를 보고 꽃 만드는 것을 배웠고 동심의 해 맑은 초심의 마음으로 외길 평생 연화세계에 살고 있다.

스님 방에 걸린 연화만개(蓮花滿開)’ 그리고 소욕자족(小欲自足)’ 두 액자가 뜻도 그렇지만 이 글들이 스님이 만든 지화(紙花)들과 너무 잘 어울렸다.

임인년 가을이 오면 지화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또 인연이 닿으면 해외 전시도 갖겠다고 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색을 입히고 꽃을 피우며 지화세계의 새 지평을 여는 새 역사를 쓰고 있을 것이다.

()한국전통지화보존회(02)735-5109

 

= 길주 전문위원

사진 = 이한규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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