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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2/11/17 15:23:43  편집국
김홍배 박사의 만다라 이야기(24)
금강계만다라의 이취회(理趣會)

금강계만다라의 이취회(理趣會)


이취회(理趣會)는 금강계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 가운데 오른쪽에서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던 일인회(一印會)의 오른쪽에 해당한다.

중앙의 갈마회(羯磨身會)에서부터 시작된 금강계의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는 삼매야회, 미세회, 공양회에 이르는 동안 37존이 배치되지만 사인회(四印회)에 이르러서는 13존으로 축약되고, 또 그 다음 일인회(一印會)에서는 1존으로 단일화된다. 그 일존(一尊)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며, 이를 대신하여 경전에서는 금강살타가 모셔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배대 속에서 이취회(理趣會)에 이르게 되면, 전혀 다른 구조를 띠게 된다. 이전까지는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사방(四方)의 사불(四佛), 사보살(四菩薩)과 각각의 친근 보살들이 원륜(圓輪)을 이루며 사방 팔방에 중층적으로 배치된 구조를 띠었지만, 이취회에서는 기존의 존상(尊像)들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존상(尊像)으로, 중앙에 비로자나불 대신에 금강살타를 주존(主尊)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 기존의 원륜(圓輪) 대신에 사각의 방단(方壇)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즉 원륜(圓輪) 대신에 사각의 방단(方壇)으로 이루어지고, 방단 또한 안쪽과 바깥쪽으로 구분된다. 안쪽의 방단은 가로세로로 모두 9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9개의 방단 속에 9분의 보살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바깥쪽의 방단(方壇)에는 모두 8분의 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사방(四方)과 네 모퉁이에 각각 4분의 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이취회는 총 17분의 보살이 모셔진다.

이러한 배치는『금강정경』에 따른 배치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경전인『이취경』에 따라 배치된 것이다.『이취경』은 흔히『반야이취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두 갖추어서 부르면『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는 금강계만다라가 이취회(理趣會)인데, 이취회는 기존의 만다라가『금강정경』에 의해 그져진 것과 달리『이취경』에 근거하여 그려져 있다. 그래서 경전이름에 따라 이취회(理趣會)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취경』의 주된 내용은 인간의 본질적인 생(生)의 에너지가 금강살타의 보리심으로 표현되고, 보리심의 증득을 위하여 그 에너지가 여러 가지 방편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이 바로 4보살녀(菩薩女)의 등장이며, 그 보살녀와의 관계에서 대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대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곧 비로자나불이 된다는 것으로, 금강살타와 사보살녀(四菩薩女)의 합일(合一)이 완성됨으로써 비로자나불의 경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지혜는 금강살타와 사보살녀(四菩薩女)의 교합으로써 얻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보리심의 증득, 깨달음의 경지가 남녀의 성교(性交)에 의한 즐거움으로 비유된 것이다. 즉 성불(成佛)의 경지를 성적인 대락(大樂)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대락사상(大樂思想)이라 한다.『이취경』의 주된 사상이다.

또『이취경』은 대승불교의 전통에 따라 미혹된 자의 깊은 곳에 부처가 내재(內在)되어 있다는 사고에 따라 중생의 보리심을 발현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부처 또는 보리심의 내재는 대승불교의 여래장사상에 기인하고,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유식사상(唯識思想)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대승불교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사고를『이취경』이 철저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취경』은 중생의 번뇌가 다하는 곳에서 부처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 방편이 사보살녀(四菩薩女)의 배치다. 여기에서 금강살타와 사보살녀의 관계가 핵심이 되는데, 이취회는 중생의 번뇌와 애욕의 에너지를 성불과 보리심의 기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취회에서 사보살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취회의 구조를 살펴보면, 중앙의 금강살타를 중심으로 안쪽의 사각 방단(方壇)에 8보살이 에워싸 있고, 바깥쪽 방단(方壇)에는 사방(四方)과 사선(斜線)에 8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안쪽의 8보살은 동서남북 사방(四方)의 욕금강보살(慾金剛菩薩), 애금강보살(愛金剛菩薩), 촉금강보살(觸金剛菩薩), 만금강보살(慢金剛菩薩)의 사보살녀(四菩薩女)와 대각선 방향의 4사선(斜線)에 있는 금강소향보살(金剛燒香菩薩), 금강화보살(金剛華菩薩), 금강등보살(金剛燈菩薩), 금강도향보살(金剛塗香菩薩)의 내사공양보살(內四供養菩薩)이다. 성신회나 기타 구회만다라에서는 이들이 외사공양보살(外四供養菩薩)로 등장하지만, 이취회에서는 반대로 내사공양보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취회가 보리심을 얻기 위한 방편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깥 쪽의 사각 방단(方壇)에는 사방(四方)으로 금강구보살(金剛鉤菩薩), 금강삭보살(金剛索菩薩), 금강쇄보살(金剛鎖菩薩), 금강령보살(金剛鈴菩薩)의 사섭보살(四攝菩薩)이 배치되고, 대각선 방향에는 금강희보살(金剛嬉菩薩), 금강만보살(金剛鬘菩薩), 금강가보살(金剛歌菩薩), 금강무보살(金剛舞菩薩)의 외사공양보살(外四供養菩薩)이 배치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도 원래는 내사공양보살인데 이취회에서는 외사공양보살로 등장하고 있다. 중앙의 금강살타는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주존(主尊)으로 모셔지고 있다. 이는 금강살타와 비로자나불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비로자나가 되었든 금강살타가 되었든 중생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비로자나불의 별문별덕(別門別德)으로 나툰 것이 금강살타보살이며, 이 보살이 결국 비로자나불의 또다른 모습이므로, 이들은 동체(同體)이자 별덕(別德)인 동시에 또한 이체(異體)이면서 동덕(同德)이기 때문이다. 즉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므로 금강살타가 곧 비로자나불이며, 비로자나불이 금강살타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살타와 비로자나불이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금강살타의 공능(功能)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금강살타는 보리심을 일으켜 지혜를 증득케 하는 보살이며, 그 지혜는 대지혜(大智慧)로서 비로자나불을 가리키며, 비로자나불의 지혜를 일러 일체지(一切智), 금강지(金剛智)라 표현하는데, 보리심을 일으켜 대지혜를 얻는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공능을 지녔고 그 역할 또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금강살타가 주존(主尊)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살타를 중심으로 사방에는 욕금강보살(慾金剛菩薩), 애금강보살(愛金剛菩薩), 촉금강보살(觸金剛菩薩), 만금강보살(慢金剛菩薩)이 배치된다. 이들은 보리심을 일으켜 지혜를 증득케 하는 금강살타의 보좌역을 하는 여존(女尊)들이다.
이러한 사보살녀(四菩薩女)의 배대는 남녀의 애욕(愛慾)에서 신체적인 접촉과 구체적인 행위로서 충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밀교의 비밀성과 상징성의 의미에서 중생이 보리심을 일으켜 깨달음, 지혜를 얻는 것으로 설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이취회(理趣會)는 구조적인면에서 파격적이며, 역할과 공능에서도 다른 구회만다라와 다르다. 비로자나불 대신 금강살타가 주존인 점, 17존의 상호관계가 성욕(性慾)을 성불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점이다. 세간적인 측면에서 중생이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고, 출세간적인 측면에서는 대승보살도로서 보리심과 자비심의 발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고 있는 중생들이 서로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마음으로 감싸 안아야 하는지를 이취회가 보여주고 있다.

<다음호에서 ‘항삼세회’에 대해서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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