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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2/12/29 15:43:58  이한규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

이 말은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여여부동이라는 말은 알 것도 같은데, ()이란 무엇일까?

불가에서 말하는 상에는 크게 여섯 가지가 있다. 눈과 귀, , 혀와 몸과 내 뜻을 통해서 모습, 특징, 특성을 느낄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상()이라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의 상들은 각각의 특성과 특징이 서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함에 있어서 상()을 취하지 말고 여여(如如)히 움직이지 마라고 하셨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지혜자량(智慧資糧)과 공덕 자량(功德資糧)이 있어야 하는데 지혜자량은 공성의 닦음을 통해 얻고, 공덕자량은 남을 돕는 보살행을 통해 얻는다

공덕자량을 닦을 때, 즉 남에게 자비를 베풀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상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상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취해야 할 상은 그 상에 실체가 없음을 깨닫고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을 취하지 않으면, 즉 지혜자량(智慧資糧)으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없다.

마음이 여여하여 부동하다면....즉 마음이 일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비를 베풀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부동한데 어찌 자비가 나오겠는가?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비가 어찌 나오겠는가?

마음이 동해야 자비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지혜자량과 공덕자량을 닦을 때는 수행방법이 다르다.

깨달은 성인들의 자비 베품과 중생들의 자비 베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깨달은 성인들께서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는......상을 취하되 그 상에 실체가 없음을 아시고 집착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모든 것을 꿈속에서 이루어진 베품으로 여기신다.

그러므로 성인들께서는 남을 그 아무리 크게 돕더라도 교만함이 없다.

이와는 반대로 중생들은 상을 취하고 그 상에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채로 자비를 베푼다. 자비를 베푼 후 스스로 도취 되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비심의 크기에 만족하고, 공덕을 받은 자가 드리는 기도에 감읍하며, 베품의 상대방이 보내는 기도나 감사의 양이 모자라면 크게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깨달은 성인들의 공덕과 중생들이 쌓는 공덕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부처님과 보살님, 사부대중들은 중생을 버리지 않으신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모든 중생들이 실체가 없는 허상임을 아시면서도, 그 허상들이 끝없는 윤회의 고통을 당하므로 중생을 버리지 않으시고 제도하면서 자비심을 베푸신다.

연말 연시가 다가온다.

온 세상은 때 맞추어 극한의 추위와 어려움을 눈 폭탄에 실어 내리 쏟는다.

안 그래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은 겨울을 앞두고, 이 모진 겨울을 어떻게 이겨낼까 걱정하고 있는데 3년 째 이어지는 코로나 사태와 그에 덧대어 금년 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끝 갈데 없는 수렁으로 빠지고 말았다.

온 세계가 불황의 늪을 헤매면서 어려운 이웃이나 나라들은 남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국가는 전쟁과 코로나라는 여건하에서 언제 이 상황이 타개될는지 알 수 없으므로 알뜰하게 쌓아둔 곳간을 조금씩 헐어 세계경제가 풀리는 그날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여유가 있는 국가는 그렇게라도 이 엄동을 견뎌 낼 수 있는데 절대 빈곤국에서는 누구로부터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

 

나라 안으로 눈으로 돌려 보자.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권으로 대변되는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그동안 알뜰하게 쌓아 둔 곳간을 마구잡이로 퍼낸 결과 여기 저기 곳간이 비어 버렸다.

나라의 곳간이 비면 서민, 대중의 곳간도 비게 마련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

그런데 내 곳간이 비었으니 옆집의 굶주린 아이에게 밥 한 그릇 보시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한다고, 옆집 아이의 굶주림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눈을 감아 버리기에는 이 겨울이 너무 혹독할 것이다.

일단은 옆 집 아이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여 놓고 난 다음에 털어먹고 마구 내지른 도적놈들을 잡아다 주리를 털어야 할 것이다.

 

밥을 하려고 뒤주를 뒤적일 때 쌀 한 바가지 더 퍼서 봉지에 담아 옆집 아이 현관 앞에 살그머니 놓고 돌아오세요.

그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덕자량입니다.

지하철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떨고 있는 걸인에게, ‘게을러 터진 놈이라고 비난만 하지 말고 1,000원짜리 종이 돈 한 장 살그머니 놓고 내려오세요. 만원 짜리를 놓고 오지 못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는 당신은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그 걸인이 부처님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다, 따로 부처를 찾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나를 부처의 길로 인도하고, 나를 깨달음에 이르게 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022년을 보내고 2023년 새해를 맞으면서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여러 불자님들!

새해는 부디 뜻하신바 소원성취하시고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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