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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24/02/23 14:36:01  이한규
서동석 박사의 AI시대 생활불교수행(1)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자

진리에는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기 때문에 진리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평등하다. 불교의 이상세계인 화엄(華嚴)의 세계는 진선미(眞善美)가 하나로 융화된 진리의 세계다. 자유로움 속에 모든 것이 생명의 도리에 맞게 움직이므로 갈등이 없다. 생명의 다채로움이 오히려 진리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온전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고, 제약이 있다. 따라서 경계를 넘어가는 변화의 단계마다 고통스럽다. 특히 지금의 세상은 문명의 대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현재 지구촌에는 온갖 갈등과 마찰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마찰이 임계점을 넘어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피상적으로 보면 나라, 인종, 민족 간의 종교, 정치, 문화, 경제, 이념 등의 충돌에서 주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진리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신과 물질을 혼동하고 살아왔다. 다른 말로 하면 진리와 현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진리와 현상은 불이(不二), 즉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에, 현상 속에서 진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진리와 현상은 불일(不一), 즉 하나도 아니다. 때문에 진리와 현상이 작용하는 방식은 엄연히 다르다.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진리와 현상의 모순된 관계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서양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설적 관계다. 물질적 인식론에서 보면, 성립이 안 되는 명제다. 그러나 화엄의 세계에서는 모순이 하나로 융화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개체의 다양성이 생동하고 있다.


AI는 모든 물질적 세계관을 빠르게 연결하고 있다. 연결의 극점에 이르면 새로운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융합의 중심에는 모든 물질을 하나로 용해하는 원초적 정신이 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서양식의 관념화된, 즉 물질화된 정신이 아니다. 그 정신은 관념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부처님이 불성(佛性)이라고 한 그 어떤 것이다. 쉽게 영성(靈性)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표현의 감옥에 갇힐 필요는 없다. 유불도가 공통적으로 지칭하는 방식으로 말하면 도(道)의 본성(本性)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적 인식체계로는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노자가 “도를 도라고 하면 영원히 변함없는 도가 아니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양식 교육에 익숙해진 우리도 이제는 진리의 도를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별적 모순을 포용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동양의 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서양적 인식론에 익숙해진 우리는 서로를 분별하고 차별화된 개인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 다른 한 면인 전체를 아우르는 융합의 정신은 사라졌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을 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볼 수 있다. 손흥민 선수는 아버지 손정웅 감독의 동양적 교육을 잘 받고 자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개성도 서양적으로 분명하게 표현하면서도, 동양적 겸양과 융합의 정신이 뛰어나다.


반면 이강인은 철저하게 서양식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자란 선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개인의 잘못으로 매도하기보다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두 선수의 갈등은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의 결과이자 서양식 교육에 물든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중심적인 의식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입장을 먼저 내세우다 보면, 서로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입장 차이에서 오는 모순을 포용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못한 태도에서,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의 갈등의 원인을 엿볼 수 있다. 모든 갈등은 이분법적인 투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서양식 인식론에서 비롯되고 있다.


나는 수행을 연구하면서 동서양의 모든 성인(聖人)들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내세우기보다는 비우는 자세를 취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적인 예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많은 설법에도 불구하고 설한 바 없다고 말씀했다. 물질이든 이론이든 진리를 얻는 수단으로 내세울 뿐이고, 언제든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의 말씀에 근거한 종교가 현재 지나치게 표현과 형식에 치우쳐서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 종교가 본질을 상실하면, 존재의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인공지능시대에는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표현과 형식에 있어서는 앞으로 인간은 AI를 상대할 수 없다. 이미 여러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이 AI로 제작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등에서도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일이 지금도 특정 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앞으로는 일반화될 것이다. 지금처럼 종교가 본질을 망각한다면, 궁극적으로 AI가 종교를 대신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시대에 종교가 살길은 표현과 형식을 넘어 성인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밖에 없다. 이 점은 인류의 존엄한 생존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성인이 제시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인간은 AI의 지시에 따라 피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창의적 생기를 잃어버린 인간은 노예나 다름이 없다. 현재 인공지능기술을 이용해 가장 큰 돈을 버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일런 머스크(Elon Musk)도 인공지능사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윤리의식이 없는 AI가 단순히 효율 중심으로 작동한다면, 인간이 가장 비효율적인 존재가 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일런 머스크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많은 미래학자들과 인공지능기술자들이 AI에게 부여할 보편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런 머스크를 비롯해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도 AI와 맞서서 인간의 역할을 찾는 데 있어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2018년에 이미 인공지능에 부여할 보편윤리의식을 《공자 노자 석가 예수를 관통하는 진리》란 책에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이번에 출간한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에서도 AI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을 깨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성인들의 말씀과 정신 속에 이미 AI를 상대할 해답이 있다. 그 답은 종교의 본질과 일치한다. 인류가 앞으로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그 본질은 관념적인 정신이 아닌 본원적인 정신에 있다.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본성을 회복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특히 부처님의 말씀 속에 무의식을 깨우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면 종교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선 각자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런 의식이 경계가 없고 평등한 으뜸의 가르침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된다.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관문이 법(法)에 대한 집착이다. 종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오히려 종교의 본질을 가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한다.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바라볼 때, 불교의 핵심에 들어갈 수 있다. 만법(萬法)이 불법이다.


나는 초(超)종교적인 입장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있지만, 불교가 인공지능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가장 미래지향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형식화되어 있는 부분을 어떻게 소통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불교 방식으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 현시대를 말법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말법의 시대가 지나면 새로운 진리의 시대가 온다는 사실이다.


원시반본(原始反本)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은 부처님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런 연후에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표현과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자면 사부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인구감소 추세로 보면, 앞으로 20년 내에 불교 종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승려를 확보하는 일도 힘들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출가와 재가의 경계를 허물고, 진리의 불법으로 사부대중이 하나가 되는 길밖에 없다.


불교의 삼보(三寶)를 말할 때, 우리는 불보(佛寶), 법보(法寶), 그리고 승보(僧寶)를 일반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승보에 대한 해석은 출가 승려로 제한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경계를 나누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다. 본래 그 의미는 승려가 아닌 승가(僧迦)다. 불법을 실천하는 사부대중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의미가 축소되어 있다. 이제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사부대중의 경계를 소통해도, 법도는 살아있어야 한다. 불법을 높이 선양하는 분은 누구든 승가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귀의할 만하다. 반면 불법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승가에 포함될 자격이 부족하다. 나는 불교가 승가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기를 바란다. 이 점에서, 나는 AI시대 생활불교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탄허 스님은 유불도를 통달하고, 기독교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시몽 스님은 서옹 스님의 상좌로 있었지만, 탄허 스님의 문하에서도 5년간 수학한 적이 있다. 그런 영향이 있어선지 시몽 스님도 종교의 편견을 깨신 분으로, 특히 공자의 학문에 조예가 깊으셨다. 다만 탄허 스님처럼 역(易)에 정통하지는 못했다. 생전에 주역을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인공지능시대의 종교인은 모든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지혜를 겸비하는 것이 좋다. 이 점에서, 불교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고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다. 동서의 문명이 융합되는 인공지능시대에는 경계를 허물고 본질로 현상을 꿰뚫어 보는 종교가 경쟁력이 있다.


나 또한 모든 종교를 아우르겠다는 자세로 역(易)을 공부하고, 역술이 아닌 수행의 관점에서 정리해서, 《주역 인생전략》이란 책을 쓴 적이 있다. 시대의 흐름으로 볼 때, 모든 종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위기는, 역의 이치로 보면, 반대로 기회이기도 하다. 어쩌면 2000년 만에 오는 대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어떤 특정한 종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소통해서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종교가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점에서, 생활불교수행은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생활불교수행의 일반화를 위해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생활불교수행을 실험할 수 있는 곳을 정해서,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생활수행법을 실천하면 좋겠다. 실험을 통해 입증된 수행법을 사회에 보급하는 것이 보편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불교의 강점은 적극적인 운명개선에 있다.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도량’이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주체적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서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가르침은 신도가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 점이다. 인류가 AI에 맞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모든 성인이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지만, 불교가 가장 분명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부처님이 제시한 수행의 길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된다.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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