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2.3 비상계엄 1주년. 시민대행진에 동참한 1만여명의 시민들 |
국회에 다시 켜진 민주주의의 법등(法燈)
이제는 '제도적 정견'으로 지켜야
시스템 붕괴의 위험성 알린 '무서운 경고' 직시할 때
"강철로 된 총구도, 육중한 장갑차도 시민의 '맨몸'을 뚫지는 못했다."
1년 전 12월 3일의 밤, 국회 유리창이 깨지고 무장 계엄군이 난입하던 절체절명의 순간. 시민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서로 팔을 걸고 "비켜라"고 외치며 버텨냈다. 그들의 '맨몸'은 그 어떤 강철보다 단단한 민주주의의 방벽이었다. 2025년 12월 3일, 그날의 처절했던 저항은 이제 거룩한 승리의 역사가 되어 우리 앞길을 비추고 있다.
어제(3일) 국회 본청 앞 잔디광장에서 엄수된 '12.3 내란 1주년 기념식'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현장이었다. 불과 1년 전, 살기 등등한 공수부대의 장갑차와 차가운 바리케이드가 가로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오늘은 대통령을 비롯한 5부 요인과 시민, 그리고 여야 정치인들이 나란히 섰다. 영하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국회의사당 돔 위로 쏘아 올린 따스한 조명은 지난겨울 우리를 떨게 했던 '봉쇄의 밤'을 완전히 걷어내고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곳은 국민이 군대의 총구 앞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성지"라고 선언할 때, 참석자들은 함께 민주주의 수호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것은 단순한 기념 의식을 넘어, 헌정 파괴라는 씻을 수 없는 '악업(惡業)'을 시민의 위대한 힘으로 소멸시킨 역사적 순간에 올리는 '마음 깊은 합장(合掌)'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특별성명에서 지난 1년의 과정을 '빛의 혁명'이라 명명했다. 그는 이를 두고 "비무장 국민의 손으로 평화롭고 아름답게 쿠데타를 막아낸 세계사적 사건"이라 평가하며,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빛의 혁명'이라는 표현은 매우 상징적인 울림을 준다. 불교에서는 어리석음을 일러 '무명(無明)', 즉 빛이 차단된 캄캄한 상태라 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광명(光明)'이라 한다. 지난겨울 윤석열 정권이 선포한 비상계엄이 탐욕과 아집에 눈이 가려진 '무명의 극치'였다면, 이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저항은 그 무명을 깨뜨리는 '지혜의 광명' 그 자체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빛'은 곧 붓다가 설한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냄)'의 실천이었던 셈이다.
언론의 시선 또한 이 지점에 머물렀다. 1주년을 맞아 쏟아진 사설과 칼럼들은 하나같이 "시민의 힘이 위기의 헌정사를 지켜냈다"고 입을 모았고, 새롭게 공개된 당시의 영상들은 '위법망구(爲法忘軀·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음)'의 정신을 몸소 보여준 시민들의 용기를 생생히 증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찬란한 '빛'에 취해 발밑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념식장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성명에서 "내란 가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강조하며 인과응보의 원칙을 천명했다. 이는 마땅히 이행되어야 할 정의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권한다.
'빛의 혁명'이 진정한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그 어둠을 방조했던 '토대'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권력자의 그릇된 아집(我執)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 때,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 12.3 사태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 '무서운 경고'임을 직시해야 한다.
어제 국회 기념식에서 가장 빛났던 존재는 단상 위의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1년 전 그날 밤, 두려움을 떨치고 국회 담장을 넘었던 이름 없는 시민들,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밝혔던 촛불이 일시적인 저항의 불꽃으로 사그라들지 않으려면, 이제는 정치가 응답해야 할 차례다.
진정한 '빛의 혁명'은 제도의 개혁을 통해 권력의 오만을 영구히 차단하는 '정견(正見)'의 확립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자신들이 들어 올린 촛불이 권력의 향배를 가르는 횃불이 아니라, 국민의 발밑을 비추는 겸손한 등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명은 빛이 닿는 순간 사라진다. 1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국회에서 확인한 그 빛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법등(法燈)으로 타오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김종열 기자
http://www.bulgyonews.co.kr/news/39706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