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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06/10/23 13:20:32  신중일
일생 허허롭게 수행정진한 구도자
‘수행·포교는 ‘不二’… 몸소 실천

10월 15일 원적에 든 조계종원로위원 정천대종사.


정천대종사 임종게
歷歷孤明勿形者 뚜렷이 홀로 밝아 모양이 없는 자여
本無生死最堂堂 본래 생사가 없이 가장 당당하도다.
幻化三界任去來 환화의 삼계에 임의로 오고가니
天上天下誰能當 천상천하에 누가 능히 당하리오.


‘개미떼 피해 30리 길’ 일화 유명

지난 15일 원적에 든 휴암당 정천스님은 너무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정천스님이 현 조계종종정 법전스님과 수행할 당시 일로 걸망을 지고 산을 넘던 두 스님 앞에 개미떼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도착하고자 하던 곳이 코앞이건만, 스님은 뒤돌아서 30리 길을 되돌아갔다. 그냥 지나가면 개미가 밟혀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화가 말해주듯 정천스님은 단 한 마리의 벌레에게도 자비심을 베풀고 생명을 아끼는 율사였다.

정찬스님은 1930년 3월 부산시 동래구에서 태어나 1946년 17살 되는 해에 합천 해인사로 출가해 1947년 청담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문경 봉암사에서 청담·성철·향곡 등 당대 내로라는 하는 선지식 밑에서 법전·지관스님과 함께 수행에 힘썼다. 1950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스님은 전국 각지 제방선원에서 20안거를 성만했다.

정천스님은 또한, 은사인 청담스님에 대한 효상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제13교구본사 쌍계사·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등 종단 대소사직을 맡다가도 항상 경남 고성 수태산 문수암으로 돌아온 것도 모두 청담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정천스님은 수행과 포교와 불사가 다르지 않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했다. 수행정진에 매진한 가운데서도 은사인 청담스님이 주석했던 고성 문수암을 지키며 50년 간 대작불사를 진행해 왔다. 1973년 청담스님 사리탑을 봉안하고 약사전을 건립했으며, 지난 2004년에는 일흔을 훌쩍 넘긴 세수에도 불구하고 약사전 약사대불을 조성하기도 했다.

지역 제일을 넘어 한국불교 제일의 수행도량으로 가꿔 나간다는 원대한 서원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지역 노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양미를 보시한 모습도 중생구제에 힘쓴 스님의 원력을 느낄 수 있는 한 단면이다.

한국불교 근대화에 앞장 선 청담스님과의 인연을 지키며 살아온 정천스님. 일평생 허허로운 수행자였던 스님은 사바세계의 번잡한 인연을 끊어 버리고 적멸(寂滅)에 들었다. 세수77세 법랍 60세.
신중일 기자 bono98@jub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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