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28 (수)
 http://www.bulgyonews.co.kr/news/30602
발행일시: 2015/08/25 09:03:31  한기선
호랑이 눈과 소걸음의 조화-尋牛심우
여여법사의 경전강좌-깨달음의 길 尋牛圖 (1)

심우도(尋牛圖)란?

 

수행의 단계를 잃어버린 소(牛)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열(十) 개의 그림으로 묘사한 것을 심우도(尋牛圖) 또는 시우도(十牛圖)라고도 합니다.


시우도는 본래 도교의 팔우도(八牛圖)에서 유래된 것으로, 12세기 중엽 중국 송(宋)나라 때 곽암(廓庵)스님이 도교의 팔우도는 진정한 진리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보아 여기에 2장면을 추가하여 시우도(十牛圖)를 그렸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송(宋)나라 때 제작된 곽암본(本)과 보명(普明:11세기)본이 전해져 2가지가 조선시대까지 함께 그려졌는데, 현재는 보명본보다 곽암본이 널리 그려집니다. 시우도는 대부분의 모든 법당의 외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곽암본과 보명본은 화면 형식이 달라서, 곽암본은 처음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원상(圓相) 안에 그림을 그리는데, 보명본은 10번째 그림에만 원상을 그립니다. 또한 곽암본은 목판화임에 비해 보명본은 채색화이며, 보명본에서 10개의 단계가 진행될 수록 소는 점점 흰색으로 묘사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두 본(本)이 10개의 장면은 서로 비슷하지만, 각 장면에 대한 제목과 내용은 서로 다른데, 본 강좌에서는 보명본의 그림도 함께 기대하되, 곽암본의 제목과 내용을 기준으로 합니다.


또한 시우도의 각 장면에는 소를 찾아 나선 아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게송이 덧붙여 있는데, 각 그림에 따른 원문과 게송을 통해 소로 상징되는 참생명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짚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잃지 않았는데 어찌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깨침을 등진 결과 멀어졌고, 세간을 향하다가 길을 잃었다.
고향집에서 점차 멀어져 갈림길에서 어긋난다.
얻고 잃음의 불이 타오르고,
옳고 그름의 분별이 날카롭게 일어나네.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 찾아 나서는데,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힘은 빠지고 피로해서 소 찾을 길이 없는데,
오직 저녁에 나뭇가지에서 우는 매미 울음만 들리네.


  심우도(尋牛圖)의 첫 번째 그림은 소를 찾아 나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소(牛)로 상징되는 참생명 자리를 찾아가고자 구도심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심우도의 열 개의 그림이 수행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상태는 하루에도 수없이 첫 번째 그림부터 열 번째 그림까지 왔다 갔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찾고 나서 돌아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절대무한생명이기에 잃을 것도 없고 새삼스레 찾을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원적 자리에서는 애초에 잃은 적이 없기에 찾을 것도 없지만, 이를 모르기에 밖으로 찾아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나 왜 살지? 이렇게 사는 것이 전부일까?’


  이러한 삶의 근원적 물음이 절실한 사람은 그냥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진정 자기 삶의 주인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몸짓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길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자기 삶에 대해 방기하고 있는 사람은 애초에 찾아나서려는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 있어서 방관자에게는 ‘다 그런 거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이러한 태도는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깨쳐서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오늘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하고자 하는 깨침이 ‘특별한 무엇’일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진정한 깨침을 등진 것입니다.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자기 식’의 추구를 앞세우는 한, 그 결과는 필경 괴로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단단히 굳어진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이 숨 쉴 수가 없습니다.


  ‘나’가 있는 한, 이러한 ‘나’를 강화하고 확장하기 위해 상대적 조건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간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향집’은 본래부터 깨달아 있는 참생명 자리를 의미합니다. 스스로 깨침을 등지고 ‘나’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건을 추구하는 한, 삶의 여정에 있어서 고향집에서는 자꾸 멀어지고 결국은 길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며 사는 사람의 특징은 누구보다도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식’대로의 삶을 결코 양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 기준을 양보하지 않기에, 내 기준에 따라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의 분별을 일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내 식’에 맞기만을 기대하며 요행수(僥倖數)나 바라는 삶을 살게 될 따름입니다.


  이는 스스로의 진정한 생명가치를 믿지 못하고 외면한 결과입니다. 오직 ‘나’만을 고집하고 인과법(因果法)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결국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송에 묘사된 수풀은 나의 입장에서 생기는 번뇌망상을 뜻합니다. 수풀 속에서 헤매게 된 이유가 스스로 수풀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듯이, 나의 번뇌망상은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크기는 자신이 선택한 만큼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수풀 속으로 들어갔기에, 수풀 속에서 나오는 것도 자신의 몫입니다. 그래서 비록 불안하기는 하지만, 헤치고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를 찾아 헤매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소는 보이지 않은데 물은 넓고 산은 멀고 길은 더욱 깊어지는 상황에서 ‘이쪽으로 가면 과연 소가 있을까? 소 찾는 것 포기할까?’ 이러한 불안감이 수없이 교차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힘이 빠지고 피로해진 나머지 이러한 상황을 외면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급기야는 소를 찾고자 하는 본분을 잊어버리고 매미울음에 정신이 팔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牛)로 상징되는 참생명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서 항상 잊지 않고 점검해야 될 것은 발심(發心)의 문제입니다.


  참생명자리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켰다는 것[發心]은 익숙했던 자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정된 ‘나’의 입장에서 보면, 안정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산물인 ‘나’의 입장에서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불안정함 속으로 스스로를 던져 넣는 모험을 감히 감행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을 일으킨다’고 했을 때, 정확히 말한다면 ‘일으켜진다’고 하는 피동형이 맞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건강, 돈, 지위, 주변 사람들… 이러한 것들로부터 배반을 당했을 때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것들에 있어서 당장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은 항상 할 수 없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배반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발심(發心)하게 됩니다. 따라서 ‘나’가 깨져져야만 발심할 수 있는 것이지 내 힘으로 발심할 수 없습니다.

 

  구도심(求道心)은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일어나야 됩니다. 믿고 의지하던 바가 허물어져 버릴 때 삶이 절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렇게 ‘나’가 깨져질 때 진정으로 살아날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피(加被)입니다.

 

* 위 지상강좌의 육성 법문을 팟캐스트 ‘여여법사의 불교와 삶’에서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팟빵에서 육성 법문 듣기]
팟캐스트 ‘여여법사의 불교와 삶’
-www.podbbang.com/ch/5845
-스마트폰 : play스토어> ‘팟빵’앱 설치>검색창에 ‘여여’ 입력>‘여여법사의 불교와 삶’ 선택
현재 심우도, 금강경, 반야심경 방송중

 

문사수법회 www.munsasu.org  031-966-3581
문사수법회는 경전을 신앙하고 법회를 받들어 봉행합니다.
문사수(聞思修), 즉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 자기 삶을 수정함으로써 정토에 이르는 지혜의 길을 지향합니다.

*대중법회 _매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경전학당 _‘성불成佛의 삶, 행원行願의 힘’
           [중앙]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 저녁8시
           [대전] 매주 목요일 저녁8시
*정진원 專修念佛(전수염불) _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2시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l   신문사 소개   l   연혁   l   조직구성   l   본사 및 지사 연락처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copyrightⓒ2001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21, 1415호(낙원동, 종로오피스텔)
편집국·업무국 02)734-0777 Fax : 02)734-0779
주간불교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