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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시: 2015/09/07 19:10:57  한기선
삶의 자취를 발견하다_見跡견적
깨달음의 길 尋牛圖 (2)

경전에 의거하여 뜻을 헤아리고, 가르침을 배워서 그 자취를 안다.
모든 그릇들이 다 한가지로 금임을 밝혀내고,
우주만물이 곧 자기임을 체득한다.
바름과 삿됨을 가려내지 못한다면,
어찌 참됨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으리오.
아직 입문하진 않았으나, 임시방편으로 자취를 본다고 한다.

물가 나무아래 발자국 어지럽게 많으니,
방초를 헤치고서 그대는 보는가 못보는가?
가령 깊은 산 깊은 곳에 있다 해도
하늘 향한 들창코를 어찌 숨기랴!


  소를 찾아 막연히 쫓아왔는데, 이제는 소의 자취가 보이는 단계입니다. 즉 참생명자리를 찾으려니 막막했는데, 경전도 보고 우리보다 앞서서 공부하신 분들의 가르침도 배워서 구도(求道)의 방향을 어렴풋하게나마 잡아가게 된 것을 상징합니다.


  경전에 의거하여 뜻을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간혹,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으면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며 문자(文字)를 통한 공부를 무조건 우습게 여기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불립문자란, 문자를 통한 공부에만 빠져서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지 말라는 뜻이지, 문자를 통한 공부가 필요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불립문자는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동안은 뗏목에 목숨을 의지했지만, 강을 건너고 나서는 아무리 소중했던 뗏목이라 해도 뗏목을 버려야만 계속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때 뗏목을 버리는 것은 강을 다 건너고 난 후의 일이지, 강을 건너지도 않고서 뗏목을 버리겠다는 것은 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과 우리보다 앞서서 공부하신 분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불립문자를 운운하는 것은 참된 수행자세가 아닙니다. 부처님을 직접 뵙지 못하는 한,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금으로 된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들이 있다고 할 때, 그 그릇들은 각각 다양한 모양의 차별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금이라고 하는 본래의 바탕자리는 평등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가 드러나 있는 모습은 각각 다양하지만, 그 근원자리는 한가지로 모두 같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차별 속에서 평등을 본다면, 우리는 우주만물이 곧 자기임을 체득하게 됩니다.


  모든 존재가 근원자리에서 보면 절대평등의 한생명을 살고 있음에도 우리가 이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나’가 생기면 그와 동시에 ‘너’도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나’와 ‘너’가 서로 다르다는 차별상에 집착하면 절대평등의 참생명자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상대적 존재는 깨져줘야 합니다. 내 스스로는 결코 ‘나’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깨뜨리겠다고 덤비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식’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깨져진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른바 ‘자력신앙(自力信仰)’이라는 것의 허구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가 있는 한, 끊임없이 ‘나’를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가 기준이 되어 ‘나’에게 맞는 것을 ‘참됨’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짓’으로 매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름’과 ‘삿됨’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삿됨이란 다름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고 ‘내 식’의 무엇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식’의 바름이라면 그것은 바름이 아니라, 삿됨일 뿐입니다. ‘나’가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삿됨입니다.


  진정한 바름이란, ‘나’라고 하는 삿됨이 깨져지면 자연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가 있어서 ‘내 식’의 무엇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직 진정으로 부처님가르침에 입문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경전을 보고, 앞서 공부한 선지식의 흔적을 보는 것은 아직은 임시방편으로 자취를 보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공부하신 분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공부할 수 있기에 감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분들의 해답이지 나의 해답은 아닌 것입니다.

 

소를 찾아 막연히 쫓아 왔는데,

이제는 소의 자취가 보이는 단계이다.

경전도 배우고 가르침도 잘 배워서

구도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진리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진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예로부터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하여 자기의 다리 아래를 살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구해야 될 해답은 바로 내가 처해 있는 현실에 있음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송에서 묘사하고 있는 정황이 바로 이러한 정황입니다.


  ‘방초’는 앞에서 보았던 수풀처럼 번뇌를 뜻합니다. 방초를 헤치고 봤더니 소의 발자국이 있다는 것은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煩惱卽菩提]”는 것을 말합니다. 번뇌는 ‘나’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는 ‘나’를 포기한 그 자리입니다. 따라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는 번뇌를 통해 ‘나’를 보고, ‘나’를 포기하면 그 자리가 곧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소라는 참생명자리를 찾아나선 사람이 번뇌라는 방초를 헤치고 보면, 소발자국이라는 진리의 흔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절대무한생명이기에 애초에 잃은 적도 없고, 따라서 새삼스레 찾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고 밖으로 찾아나선 입장에서는 막막할 따름이지만, 이제 이 견적(見跡)의 단계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참생명자리를 찾을 수 있는 자취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자취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처한 현실 속에서 항상 찾을 수 있는 자취입니다. 소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해도 하늘을 향해 치켜든 들창코를 숨길 수 없듯이 우리가 제대로 눈을 뜨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은 결코 남이 구해줄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몫입니다. 그 해답은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서 내가 처한 현실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지금 접하고 있는 일이 나를 일깨워주는 선지식인 것입니다.

 

법문 여여 김태영(문사수법회 대표법사)

 

*바로잡습니다*
지난 1195호 6면 여여 김태영법사의 심우도<1> 기사에서 큰 제목 '호랑이 눈과 소걸음의 조화'-尋牛심우 에서 '尋牛심우'를 '尋于심우'로 잘못인쇄 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편집부>

 

* 본 강좌의 육성 법문을 팟캐스트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육성 법문 듣기]
팟캐스트 ‘여여법사의 불교와 삶’
-www.podbbang.com/ch/5845
-스마트폰 : play스토어> ‘팟빵’앱 설치>검색창에 ‘여여’ 입력>‘여여법사의 불교와 삶’ 선택
현재 심우도, 육조단경, 금강경, 반야심경 방송 중


문사수법회 www.munsasu.org  031-966-3581
문사수법회는 경전을 신앙하고 법회를 받들어 봉행합니다.
문사수(聞思修), 즉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 자기 삶을 수정함으로써 정토에 이르는 지혜의 길을 지향합니다.

*대중법회 _매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경전학당 _‘성불成佛의 삶, 행원行願의 힘’
           [중앙]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 저녁8시
           [대전] 매주 목요일 저녁8시
*정진원 專修念佛(전수염불) _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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